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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Jan 09. 2021

바리깡 든 아내

아내가 바리깡을 들고 씩 웃었다.

"내가 머리 깎아줄까?"

코로나 때문에 요즘 머리 못 깎아서 답답하다고 말했더니 아내가 갑자기 바리깡을 들고 왔다.


아내는 내 머리를 깎는 것을 좋아한다. 아내의 미용 기술이 절대 절대로 좋아서가 아니다. 아내가 바리깡을 들고 있는 순간만큼은 남편이 순한 양이 된다. 바리깡을 드는 순간 아내는 권력을 쥔 자가 되고 아내는 이러한 느낌을 즐기는 것 같았다.

"자기야, 내가 멋들어지게 깎아줄 테니깐 빨리 이리 와서 앉아봐."

아내가 저리도 내 머리를 깎고 싶어 하는데, 내 머리카락쯤이야 뭐 그냥 줘버리지란 생각으로 머리를 들이댔다. 게다가 코로나 때문에 가족들 말고는 다른 사람을 만날 일도 없기에 아내에게 머리를 맡겼다.


"윙~~~~~~~~~~~~~~~~~~~~"

러시아제 바리깡의 전원을 올리자, 무서운 굉음을 내며 칼날이 움직인다.

"자, 이제 깎을 테니 움직이지 마세요!"

바짝 긴장하고 있는데, 아내는 신이 나서 내 머리 위에서 칼춤을 춘다. 뒷머리를 깎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드르륵"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시커먼 머리카락들이 쌓이기 시작한다. 갑자기 불안해지게 아내가 혼잣말을 한다.

"어라, 이쪽이 좀 더 높은 것 같네~"

아내는 이발하는 내내 신이 나서 바리깡 춤을 추더니, 5분 만에 말을 꺼냈다.

"자기야, 끝! 너무 잘 자른 것 같아! 거울 봐봐"

오, 생각보다 마음에 든다. 사진 찍어서 브런치에 올리고 싶지만 구독자님의 정신 건강을 위해 꾹 참아본다.


예전에 러시아와 프랑스에서 살 때도 아내는 내 머리를 잘라주곤 했다. 현지 미용사들의 실력이 한국 미용사보다 영 못한 것도 이유였지만, 사실 의사소통에 대한 어려움이 더 컸다. 아내는 내 머리를 잘라 주었고, 나는 아내의 머리를 염색해 주었다. 서로 머리 해주는 게 보기 좋다고요?


서로 머리를 해주게 된 이유는 서로의 머리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이다. 아내가 내 머리를 망치면, 나도 아내의 머리를 망치면 된다. 반대로 내가 아내의 머리를 얼룩덜룩하게 염색하면 아내가 내 머리를 쥐 파먹은 머리로 만들 수 있다. 이렇게 서로의 머리를 망칠 수 있기에, 우리는 서로의 머리를 해줄 때면 최선을 다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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