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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주부 May 12. 2021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하는 "쓸모"에 대해

영화"미나리"를 보고나서

얼마 전 영화 미나리를 보다 마음이 불편해졌다.


극중 주인공 부부는 병아리 감별사인데, 태어난 지 하루정도 된 병아리들의 암수를 구별하는 일을 한다. 주인공의 아들 데이빗이 어느 날 아버지를 따라 병아리 감별 공장에 갔다. 데이빗은 검은 연기를 내뿜는 병아리 공장 굴뚝을 바라보면서 저건 뭐냐고 아빠에게 묻는다.


아빠 : 저거! 수놈들을 저기서 폐기하는 거야!

아들 : 폐기가 뭐야?

아빠 : 말이 좀 어렵지 음... 수놈은 맛이 없어. 알도 못 낳고 아무 쓸모가 없어. 그래서 폐기하는 거야. 그러니까 우리는 꼭 "쓸모"가 있어야 되는 거야 알았지?


이 대사를 듣는 순간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띵 했다. 그리고 갑자기 수평아리가 된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돈을 벌지 못하고 있어서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일까? 집안에서 아이들도 돌보고 가사일도 하고 이렇게 브런치에 쉽게 경제를 알려주는 글도 쓰고 있는데 말이다.


40년 넘게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내다 보니, 돈 못 버는 일들의 가치를 은연중 폄하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가사노동과 육아는 가치 있는 일이지만, 돈을 벌어주진 않는다. 경제학에서도 국내총생산을 계산할 때 주부의 가사노동과 육아는 포함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못 버는 일들은 종종 그 가치가 폄하되는 것 같다.   



친구들은 종종 악의는 없지만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


"퇴사하고 집에서 살림 사니깐 좋지?"   


이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친구는 은연중에 돈을 버는 직장생활이 더 힘들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친구에게 뭐라고 말할 처지도 아니었다. 나 역시 직장 생활하던 시절, 집에서 살림 사는 아내를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종 이런 망언을 했다.


"아, 나도 자기처럼 집에서 편하게 살림 살면 좋겠다!"


소원대로 지금은 내가 살림과 육아를 맡아서 하고 아내가 밖에 나가 돈을 벌어온다. 그리고 뒤늦게 살림 살면서 깨닫게 되었다. 우리 집이 항상 깨끗이 유지되고 저녁마다 맛있는 집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희생 덕분이라는 것을 말이다.


빨래는 세탁기에 넣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건조하고 개는 게 훨씬 힘들다는 사실을 몰랐다.


음식이 하기 싫으면 밀키트나 배달 음식 시켜 먹으면 될 줄 알았는데, 배달 음식을 먹어도 설거지와 각종 쓰레기 처리가 힘들다는 사실을 몰랐다.


아이들은 학교만 보내면 알아서 클 줄 알았는데, 온라인 수업도 도와줘야 하고 숙제와 준비물이 빠지지는 않았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24년 전 미국에서 죽음을 앞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생활하는 호스피스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죽음이 얼마 남지 않은 그들과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면서, 죽기 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죽음이 아직 가깝게 느껴지지 않던 이십 대 초반의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죽기 전에 좋은 차를 타거나, 좋은 집에 살고 싶어 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죽기 전 하고 싶은 일은 소박했다.


"죽기 전에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세상을 떠나고 싶어. 나, 집으로 좀 보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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