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ian 손주부 Aug 16. 2020

쓰레기 버리기  

살림 살면서 느낀 건데 우리나라에서 쓰레기 처리하는 것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더 어려운 거 같다. 우리 집에는 쓰레기 통이 6개나 된다. 폐지 전용, 우유팩 전용, 플라스틱, 플라스틱 생수병, 기타 재활용 쓰레기, 진짜 쓰레기통..... 아 맞다. 음식물 쓰레기통까지 총 7개다. 러시아에서 살 때는 정말 편했다. 검은색 두툼한 비닐봉지에 모든 것을 다 때려 넣었다. 심지어 음식물 쓰레기까지 함께 넣었다. 그리고 각 층마다 있는 쓰레기통 문을 열고 투척하면, 내가 살던 19층에서부터 1층 쓰레기장까지 쓰레기는 자유 낙하한다. 이게 정말 편하다. 추운 겨울에 쓰레기 버리려고 옷을 껴입고 뒤뚱뒤뚱 거리며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음식물 쓰레기는 싱크대에 있는 분쇄기(Kitchen Disposal)에 그냥 갈아서 흘러 보냈고 나머지는 모조리 검은색 비닐봉지에 넣어서 한꺼번에 버렸다. 미국이나 러시아 같이 나라들은 워낙 영토가 넓다 보니 '님비' (Not in my backyard) 걱정 없이 아무 곳에나 쓰레기 처리장을 만들 수 있어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 것인가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간편하게 쓰레기를 버리면서 살다가 한국에서 7개 쓰레기통을 집에 놓고 또 쓰레기를 각각의 통에 맞춰 분류해서 살라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쓰레기 처리 때문에 식성도 바뀌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수박인데, 살림을 살면서 알게 되었다. 이 수박이란 놈이 음식물 쓰레기를 어마 무시하게 생산해 낸다는 것을 말이다. 아내가 살림을 살 때는 수박을 마음대로 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음식물 쓰레기도 잘 안 치워 주면서 여름에 음식물 쓰레기 엄청 나오는 수박을 그렇게 먹어대었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것 같다. 아내가 이 글을 볼 일은 없겠지만 아내에게 심심한 사과를 표한다.


게다가 여름에는 그때 그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음식물 쓰레기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으면 새로운 생명체들이 하루 만에 탄생해서 집안 구석구석을 날아다닌다. 그러면 잠시 뒤 집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 '아, 딸내미들이 벌레를 극도로 무서워한다는 것을 깜빡했다.' 초파리가 거실을 점령할 때면 아이들을 안방으로 피신시키고 나는 초파리 잡는다는 핑계하에 컴퓨터를 켜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아무튼 수박 킬러였던 내가 살림을 살게 되자 음식물 쓰레기 치우기 귀찮아서 안 먹게 되었다.


살림 살면서 안 먹게 된 음식이 생각해보니 또 있다. 금요일 저녁이면 항상 치킨에 맥주를 시켜서 먹곤 했다. 그런데, 닭뼈가 일반쓰레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치킨도 안 먹게 되었다. 다른 쓰레기와 달리 닭뼈를 일반 쓰레기통에 버리면 며칠 뒤 쓰레기통에서 골 때리는 냄새와 함께 새로운 생명체들이 태어 난다. 그럼 순살 치킨을 시켜먹으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치킨은 역시 닭다리 뼈 잡고 뜯어먹어야 제맛이다. 게다가 순살 치킨은 대개 국내산이 아니라 브라질산인 경우가 흔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점은 순살 치킨이 2천 원이나 비싸다. 아이들은 순살 치킨이 먹기 좋다고 순살 사달라고 농성이지만, 닭뼈 발라내기만 하면 2천 원이 절약되는데 쉽게 양보할 리 없다. "땅을 파봐라 2천 원이 나오냐"라고 아이들에게 다그친다. (아, 나도 꼰대가 되어간다.) 어찌 되었건 어느 날 갑자기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 집 쓰레기를 복도에 놓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네?' 다행히 우리 집이 복도 맨 끝 집이라서 다른 집에 민폐 끼칠 일도 없었고 게다가 우리 아파트는 40년 넘은 아파트라서 복도가 밖과 바로 맞닿아 있는 개방형 복도인지라 냄새가 복도를 채울 일도 없었다. 어느 날 밤 그렇게 닭뼈를 넣은 쓰레기를 현관문 바로 앞에 놓고 나는 자러 갔다.


그런데 다음날 현관문을 열고 외출하러 갈 때 쓰레기봉투를 보고 경악했다. 쓰레기봉투는 누군가가 칼로 찌른 것처럼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닭뼈들이 흩어져 있었다. 밤새 동네 도둑고양이들이 우리 집 앞에 모여 오래간만에 잔치를 한 모양이다. '악!!!!!!!! 이거 언제 다 치워!'


그날 이후로 난 순살치킨을 먹게 되었고 수박이 정말 먹고 싶을 때면 음식물 쓰레기 없는 수박 주스를 사 마시게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27 퇴사할까요 그냥 회사 다닐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