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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Aug 29. 2020

남자 혼자 마트 보내면 벌어지는 일

아무리 먹어도 살이 안 찌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물만 마셔도 살이 찐다.) 치킨 시키면 한 마리 혼자서 다 먹고 뭔가 아쉬워서 남은 양념을 숟가락으로 긁어먹다가 결국 입가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라면을 먹고 남은 국물엔 식은 밥을 말아먹었다. 그리고 콜라 한잔! 아, 상상만으로도 너무너무 행복하다. 그렇게 먹고 자도 얼굴 하나 안 부었고 몸무게도 늘지 않았다.


세월 앞에 장사없다는 말처럼 아무리 먹어도 찌지 않던 몸이 20대 후반이 되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취업 후 앉아 있는 시간이 늘다보니 섭취한 에너지를 사용할 시간이 없었다. 몸에 있던 근육들은 풀어져 순두부마냥 흐물흐물 해졌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침대와 일체가 되어 회사에서 방전된 몸을 충전시켰다. 운동도 하지 않았다. 출퇴근 때 지하철 타러 10분 동안 걷는 것이 유일한 운동이었으며, 지하철 안에서는 서있기 싫어서 자리가 나면 빛의 속도로 달려가 빈 자리에 앉았다.


머리에서라도 에너지를 많이 쓰면 좋았을 텐데 신입사원에게 주어진 일은 '뇌'를 전혀 쓰지 않아도 되는 일 밖에 없었다. 그렇게 절약된 에너지들은 살들로 전환되었고 30살이 되던 해 내 모습은 아래 분과 흡사해져버렸다.

 

친애하는 김정은 동무/ 출처 : 나무위키

한창 토실 토실 해진 어느 겨울날 소개팅을 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아내는 뚱뚱한 남자를 좋아했고 아내의 콩깍지가 벗겨지기 전에 서둘러 청혼을 했다. 그렇게 그해 봄 우린 만난 지 4개월 만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결혼을 했다.


결혼하고 첫날밤, 만삭에 가까운 배를 처음 보게 된 아내는 입을 떡 벌리더니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앞으로 야식은 먹지 마세요. 그리고 라면도 일주일에 한 번만 드세요."


그간 먹는 낙으로 살았던지라 당장 먹는 것을 줄이는 것은 힘들었지만 건강을 위해 아내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앞으로 태어나게 될 딸아이를 위해서라도 건강한 몸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했다.   


벌써 결혼한 지 15년째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총각시절 패스트 푸드로 점철되었던 식단은 어느덧 야채와 신선한 고기 위주의 건강식으로 바뀌었다.


아내가 만들어준 콥 샐러드 (야채 투성이다.)


코로나가 창궐한 이후 집에만 있으려니 너무 답답하여 그간 봉인되어 있던 '초딩 입맛’을 다시 해제했다. 아내 때문에 몇년간 과자와 담을 쌓고 살았는데 마트에 가보니 새롭게 출시된 과자가 정말 많다. 세상은 넓고 맛있는 과자도 많다. 맨날 야채 많이 먹으라고 잔소리 하던 아빠가 요즘 마트만 가면 잔뜩 과자를 사오니 딸아이들도 싫지 않은 모양이다. “얘들아 그런데 오늘 과자 먹은거 엄마 한테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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