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ian 손주부 Nov 03. 2020

아내의 우선순위에서 밀린 나

아직도 결혼을 안 한 친구 3명이 있다. 고등학교 친구, 대학교 친구, 회사 친구 이렇게 총 3명이다. 3명의 공통점은 집안이 빵빵하다. 강남에 집이 있거나, 부모님이 회사를 운영하고 계신다. 그렇다고 이 친구들의 외모가 심각한 하자가 있다거나 키가 작은 것도 아니다. 키는 모두 175가 넘고 (마흔 넘는 사람치곤 큰 편이다.) 패션 감각이 있어서 옷을 깔끔하게 잘 입고 다닌다. 주변에 이성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결혼을 안(?)하고 있었다. 그랬던 친구 중 한 명이 지난 일요일에 장가를 갔다.


마흔이 넘어가면서 결혼식보다는 부모님 장례식이 많았기에 정말 오랜만에 결혼식에 갔다. 코로나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결혼식에 참가했다. 결혼하는 친구 놈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시종일관 웃고 있다. 아내와 결혼하는 것이 너무 나도 행복한가 보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한 친구를 보니 옛날 생각이 났다.


2008년 1월에 아내를 만났다. 지인의 소개를 통해서 만났다. 처음 만나던 날 혜화역 1번 출구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약속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내는 약속 장소에 안 나타났다. 옛날 20살 때 강남역 타워레코드 앞에서 여자분에게 바람을 맞은 경험이 있어서 그때 트라우마가 다시 살아났다.

'아, 오늘도 이렇게 바람을 맞는 것인가?'

구질 구질하게 왜 이렇게 안 나오시는 거냐며, 전화할 용기도 없었다. 날도 추운데 밖에서 30분 정도 서 있었더니 너무 추웠다. 근처 순대국밥 집에서 새어 나오는 국밥 냄새가 내 몸과 마음을 스르르 녹이며, 나도 모르게 국밥집으로 걸어가려던 순간,

"안녕하세요, 손주부 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K라고 합니다."

평소 약속 시간에 늦는 사람들을 정말 싫어하는 사람인데, 동그랗고 큰 눈을 가지고 해맑은 미소를 지으면서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는데, 화를 낼 수 없었다. 짜증 났던 마음은 어느새 사르륵 녹았다.

"날도 추운데, 제가 예약한 레스토랑으로 먼저 가시죠"

 아내와 대화를 하면서, 그 사람의 인품이 느껴졌다. 정말 마음이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은 사람임이 느껴졌다. 이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졌다. 그렇게 해서 아내와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한 달 정도 만남을 이어가던 어느 날 당시 여자 친구인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손주부 님 안녕하세요. 제가 지금 직장 동료분들과 회식 중에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아내의 전화기를 뺏어 들었다.) 안녕하세요, 손주부 님. 저희 지금 노원구에 있는 한 호프집에서 술 마시고 있는데 얼굴 좀 보여주세요"

"네? 지금 바로요? 네, 알겠습니다. K에게도 지금 가겠다고 전해주세요."

평소 같으면 아무리 친한 친구가 불러도 퇴근 후 집에 있으면 절대 나가지 않았는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세수를 대충하고 옷을 입고 바로 그 호프집으로 향했다. 호프집에 도착하니 K는 한껏 취해 얼굴이 새 빨개져 있었고, 그 모습이 참 귀여웠다.

"우~~~~~와~~~~~~~ K남자 친구 불렀는데, 진짜로 왔어!!!!!!!!!!"

술집은 나의 등장으로 난리가 났다. 그리고 갑자기 어떤 짓궂은 분 한 분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왜 K 씨가 좋은지 5가지 이유를 지금 바로 말해보세요! 말 못 하시면 벌주로 500cc 한잔 다 마셔야 합니다. 하하하"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니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건지 모르지만, 5가지 이유를 그 자리에서 큰소리로 말하고, 벌주와는 상관없이 500cc 한 잔을 다 들이켰다. 호프집은 난리가 났다. K가 남자 잘 골랐다느니, 너무 잘 어울린다느니, 언제 결혼할 거냐 와 같은 질문들이 동시에 쏟아졌다.

"최대한 빨리 결혼하려고요!"




결혼한 지 벌써 13년 차다. 결혼 13년 차면 서로 볼꼴 못볼꼴 다 본 사이다. 결혼 30년 차가 다 되어 가시는 구독자 분들이 너희들은 지금도 아직 신혼이라고 말씀하실지 모르지만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내의 삶에 있어 우선순위가 참 많이 바뀌었다. 한 때 아내 삶의 1순위였는데, 지금은 아이들, 회사일, 새 옷, 패션 잡지, 다음이 나이다. 가끔 신상 가방이 나오면, 가방 뒤로도 밀린다. 시간이 흐르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아직도 적응이 쉽지 않다. 게다가 집에서 살림을 살게 되고, 코로나가 발발하면서 하루 중에 만날 수 있는 성인 인간이 아내뿐인지라 내 삶에서 아내의 우선순위는 아직 높다. 우선순위가 다른 두 사람이 같이 살면, 우선순위를 높이 두는 사람이 항상 피곤한 법이다.


그래서, 이젠 슬슬 다른 관심 둘 만한 것들을 찾아볼 생각이다. 그리고 첫번째로 손주부의 관심을 받을 아이는 글 쓰기다. 앞으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루에 한 편은 써서 올릴 계획이다. 글을 쓰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들지 않고 지금 여기 이 순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참 좋다. 구독자 증가와 통계 증가는 덤이다.


추신 : 아무래도 당분간은 글을 많이 쓸 듯합니다. 가끔 얼굴 비춰야 환영받을 텐데, 자주 비춰드려서 미리 죄송합니다. 꾸벅


작가의 이전글 #45 부자들은 ** 세금 안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