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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Nov 10. 2020

퇴사 후 잊히기 싫어!

나는 거절을 잘 못한다.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 거절 못하게 생겼나 보다. 어린 시절 강남역 일대를 걸어 다니면, "도를 믿으십니까?"를 묻는 사람들이 항상 꼬였다. 고3 어느 여름날 강남역에 있는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나서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아니, 장군님! 장군님을 여기서 뵙게 되다니 너무 영광입니다!"


어떤 젊은 남자분이 갑자기 내게 절을 했다. 내가 전생에 장군이어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흐르고 있다고 말했다. 내 몸 안에 너무 강한 기운이 흐르고 있기에 이를 잘 다스리지 않으면 건강을 잃고 요절한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갑자기 불안해졌다. 나의 불안한 표정을 읽은 그분이 이렇게 말했다.


"저와 함께 교회에 가셔서 이 강한 기운을 다스려야 합니다."


수능 준비로 스트레스도 많아 여기저기 아팠던 지라 그 사람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렇게 귀가 얇았던 나는 그 사람을 따라 강남역 골목 외진 곳에 위치한 단독 주택(사이비 교회)에 들어갔다. 전체적으로 내부는 어두 침침했다. 거실에서 여러 명이 모여 촛불을 켜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 남자분은 나를 교주님의 방으로 인도했다. 교주는 부리부리한 눈을 가지고 있었고, 방안은 부적 같은 모양의 붉은 글씨들이 여기저기 쓰여있었다. 한문인지 한글인지 알 수 없는 모양의 글들이 노란색 한지 위에 쓰여 있었다. 어린 시절 유명했던 중국 귀신 "강시" 이마에 붙여진 부적 같이 보였다. 교주는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기운이 너무 세서 장군님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


눈이 ET처럼 컸던 그 교주는 내 몸뚱이 안에 장군의 영혼이 있으니 이대로 있다가는 단명할 거란다. 그러더니, 이를 막기 위해 봉헌금을 내고 교회 성전에 들어가 같이 기도를 하자고 말을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곳을 빨리 도망쳐 나가지 않으면 왠지 큰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주는 계속해서 내게 무언가 말을 했는데, 교주의 말을 계속 듣다가는 체면에라도 걸려서 험한 꼴을 당할 것만 같아서 속으로는 기도문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그리고, 교주의 말을 열심히 듣는 척하면서 탈출할 준비를 했다. 한 시간 정도의 설교 뒤에 교주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나는 사자에 쫓기는 임팔라처럼 밖으로 뛰쳐나갔다.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강남 골목 한 복판을 미친듯이 내달렸다. 뒤에서 사람들이 거기서를 외치며 쫓아오다가 사람이 많은 대로변에 달하자 더 이상 쫓아오지 않았다.


나이를 먹어도 다른 사람의 부탁은 잘 거절하지 못한다. 특히 친한 친구의 부탁은 거절하기 너무 어렵다. 내게 용기 내어서 부탁을 했을 텐데 그런 친구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할 수 없다. 더욱이 얼마 전 부모님을 잃은 친구가 여행을 가자고 말하는데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육아와 살림을 잠시 아내에게 맡기고 여행을 가게 되었다. 부산에서 일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SRT수서역에서 기차를 탔다.


출장을 제하고 혼자서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가는 일은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기차를 타면 탑승전 편의점에 가서 기차에서 먹을 과자와 버터 오징어, 그리고 커피를 사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는데, 이를 생략하고 기차에 오르니 기분이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기차 가운데에 위치한 가족석에 앉아 아내를 바라보며 가야 하는데, 지금 내 앞에는 양복 입은 아저씨가 노트북으로 열심히 보고서 작성 중에 있다. 아저씨를 보니 역시 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가족들이 벌써부터 그립긴 했지만, 혼자 타는 기차 여행도 나쁘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를 챙겨주지 않고 온전히 나의 기분과 몸 상태만 신경 쓰면 되었다. 혼자 타는 기차여서 가격 생각도 안 하고 특실로 차표를 끊었다. 넓은 좌석에 기대어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하다 보니 벌써 부산역에 도착했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친구가 근무하고 있는 연산역으로 향했다. 저녁식사는 친구와 친구의 상사와 같이 하기로 했다. 친구의 상사는 나의 상사이기도 하다. 신입사원 시절 내게 일을 가르쳐 주시던 분이었는데, 임원으로 승진하시고 난 후 부산에서 근무하고 계셨다. 신입사원 시절 부장님의 나이는 40살이었다. 60년대에 태어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키가 178cm나 되고 70Kg 정도의 군살 없는 몸이셨다. 킹스맨이나 제임스 본드처럼 슈트가 멋진 부장님이셨다.


정말 잘생기고 멋지신 부장님이셨는데, 12년 만에 만난 부장님의 얼굴에서 세월의 흐름이 많이 느껴져 오랜만에 뵙자마자 울컥했다. 숱 많고 윤기가 흐르던 머리카락은 어느덧 숱이 없고 푸석푸석한 머리카락으로 바뀌었고, 그간 고생을 많이 하셨는지 얼굴에는 주름이 많이 보였다. 그래도 관리를 잘하셔서 그런지 몸에 딱 맞아떨어지는 슈트는 여전히 멋진 부장님이셨다. (이젠 본부장님이시다.) 부장님은 12년 만에 찾아온 나를 너무 나도 반갑게 맞아 주셨다.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 것 마냥 서로 너무 반가워하며 옛날 해외 출장 다니던 시절 이야기를 하며 밤새 이야기 꽃을 피웠다.   


여행이 끝나고 서울에 돌아온 다음 부장님으로 부터 한 통의 문자가 왔다.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도 기억해주고 직접 만나려고 시간 내 주니 정말 고마웠어. 항상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하루 보내고, 또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할께!"


부장님의 문자를 읽으면서, 어찌나 마음이 따스해 지던지, 이런 분 밑에서 함께 일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는 생각을 했다.


퇴사한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어느 덧 손주부라는 이름은 회사내에서 점점 잊혀져 갔고, 회사 부서 단톡방과 업무 관련 단톡방은 아이폰 수리와 동시에 모두 나온 상태다. 같이 일하던 선배, 동료, 그리고 후배들에게 잊힐만한 시간인데, 보고 싶다며 연락을 주면 그렇게 고맙고 반가울 수가 없다.


너무나도 예쁜 제주도의 하늘 by 손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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