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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Nov 09. 2020

결혼하는 이유  

우리 집에 불혹을 넘어선 두 명의 인간은 매년 봄과 가을에 계절을 탄다. 아내는 봄을 타고 나는 가을을 탄다. 봄이 되면 아내는 침울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옷과 메이크업에 한껏 열중한다. 매년 하나둘씩 늘어가는 주름을 한탄하며, E사의 갈색병 에센스를 열심히 발라보지만 흘러가는 세월을 막을 길이 없다. 게다가 눈치 없는 초등학생 딸아이들은 엄마의 처녀 시절 사진을 보더니, 엄마 진짜 많이 늙었다면서 놀린다. 그리고, 아빠는 젊었을 때 왜 이렇게 꿀꿀 돼지였냐고 놀린다. (유학 시절 햄버거와 콜라를 많이 먹어서 정말 돼지였다.) 그리고 지금이 훨씬 낫단다. 아내가 한마디 더 보텐다.

"자기, 요즘 얼굴이 점점 좋아지는 것을 보니 살림이 적성에 맞나 보다!"

그러면 나는 그냥 씩 웃고 만다.


살림이 적성에 맞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회사 다닐 때보다는 확실히 스트레스가 적다. 살림은 스스로 나의 컨디션에 맞추어서 살 수 있지만, 회사 일은 상사가 정해준 데드라인까지 컨디션과는 전혀 상관없이 무조건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살림 살면서 걱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끼니때가 되면 뭐해먹을지 고민해야 하고 청소를 안 하고 조금만 게으름 피우면 집이 점점 돼지우리로 변해간다. 아이들이 시험을 못 보거나 학교에서 문제가 생기면 왠지 내가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퇴사 후 살림을 살기 시작한 지 100일이 지나면서부터 갑자기 우울감이 밀려왔다. 우울감의 원인은 정확히 알 수 없었는데 어두운 마음이 차오르자 모든 것이 다 왜곡되어 보였다. 평소에 아내가 퇴근을 늦게 하면 안쓰럽고 불쌍한 마음이 생겼는데, 우울 모드에 진입한 시점에서는 육아와 살림을 돕기 싫어서 일부러 늦게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지질하게도, 퇴근한 아내를 편히 쉬도록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괜히 틱틱거리고, 설거지와 육아를 모두 아내에게 맡기고 방에 혼자 가만히 있었다.


이대로 가만히 놔두면 우울감이 지속될 것 같았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도 너무 미안했다. 그러던 찰나에 친구 A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다. A는 얼마 전에 지병으로 어머니를 잃었고, 뒤이어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A는 갑작스레 두 분을 모두 잃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손주부, 나 이대로 지내면 미칠 것 같은데, 나랑 같이 여행 좀 다녀올래?"

나 역시 우울감을 떨쳐내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기에 친구가 여행 가자고 말을 해 주니 얼씨구나 하고 승낙을 했다. 친구와의 통화 후 아내에게 잠깐 동안 여행을 다녀와도 되겠는지 물어보았고, 아내는 고맙게도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여행이 시작되었다.


수서역에서 SRT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사람 많은 곳에 가면 코로나에 혹시라도 감염이 될까 봐 평소엔 상상도 못 하는 특실을 예약했다. 오, 역시 특실이 좋긴 좋다. 자리도 넓고 젊고 예쁜 여자 승무원이 신문도 권한다. 비행기 퍼스트 클래스를 탄 것 마냥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대부분 출장 차 부산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다. 정장 차림에 노트북을 켜놓고 이동 중에도 계속 일을 했다. 나처럼 헤드폰 끼고 유튜브 보면서 운동복 차림에 배낭을 멘 승객은 없었다.


코로나 이전에 해외여행 다니던 시절 딸아이가 왜 우리는 누워가는 좌석(퍼스트 클래스)이 아니라 똑바로 앉아가는 좌석(이코노미 클래스)에 앉아가야 하는 것인지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는데, 해외여행 다니는 것 자체가 행복한 것이고 감사해야 한다고 말을 해줬지만, 여전히 불만인 얼굴이었다. 딸을 보면서 역시 사람들은 아래는 안 보고 위만 봄을 다시 한번 느꼈다.


불평불만하는 딸아이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다음번 여행은 중국에서 경유하는 최저가 비행기를 경험시켜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 지금 먹고 있는 비빔밥과 신라면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고, 화면에 중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나오는 뽀로로에 감사할 테니 말이다. 그리고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중국 도시에 경유하면서 4시간 정도 공항 의자에서 대기해 봐야 직항 노선의 소중함을 느낄 테니 말이다.  


아무튼, 딸에게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 역시 속물인지라 무궁화호 타고 부산 가는 것보단 SRT 특실로 가는 게 더 좋다. 그런데도 펑펑 쓰면서 살지 못하는 것은 내가 언제 까지 살지 모르기 때문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보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면 미래를 위한 대비를 늘 해야 한다. 한 달 뒤에 죽는다는 것을 안다면 미래 따위 준비하지 않아도 되지만, 언제 죽을지 모르면 늘 준비해야 한다.


젊을 때 돈을 다 써버리고 늙어서 아무 힘없는 노인이 되고 싶진 않다. 몸이 아픈데 병원 갈 돈도 없이 힘들게 살고 싶지 않다. 자식들에게 손 벌리고 살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언제 죽을 것인지 알려주는 시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언제 죽을지 않다면, 미래 준비가 지금보다는 한결 수월하고 두렵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사노 요코 누나는 암 진단을 받고 살 날이 1년 정도 남았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외제차를 뽑았다. 철저하게 국수주의자로 살았던 사노 요코 누나는 암 선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영국 외제차인 재규어를 바로 계약했다. 사노 요코의 행동을 보면서 사람이 죽음을 앞두게 되면 정말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의사로부터 만약 듣게 된다면, 어떠한 삶을 살게 될까? 일단 아내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아내가 나에게 정 떨어지게 만들 것 같다. 그렇게 날 싫어하게 만든 다음 이혼을 할 것 같다. 아내와 정을 떼어야 남아있는 사람이 덜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혼자서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전 세계를 여행 다니고 싶다.


삶을 연명하기 위해서 항암치료를 받거나 암수술을 하고 싶진 않다. 마지막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고 싶다. 배낭 하나 짊어지고 휴대폰 하나 딸랑 들고 아직 내가 탐험해 보지 못한 세상을 보고 느끼고 싶다. 아이슬란드에 가서 오로라를 보고 싶고, 그랜드 캐년에 가서 대자연의 위대함을 느껴보고 싶다. 상상만으로도 너무 즐겁다.


그런데, 그 행복한 순간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너무 서글퍼진다. 오로라의 아름다움을 혼자가 아닌 아내와 같이 느끼고 싶다. 아내와의 이혼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지난 13년간 아내와 여러 일들을 겪었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내 덕분에 힘을 얻었고, 말도 안 통하는 해외 생활을 시작했을 땐 서로 힘이 되어주었다. 종종 서로에게 실망하고 짜증 나는 일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아내 덕분에 행복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다들 결혼을 하는 것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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