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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Nov 11. 2020

루이뷔통 가방 사는 이유

나는 패션 테러리스트였다. 취직 전까지는 어머니가 사다주신 옷을 대충 입었고,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불혹이 될 때까지는 자라나 유니클로에서 80% 세일을 기다렸다가 옷과 신발을 사곤 했다. 쇼핑을 자주 하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80%까지 세일할 때 남아 있는 물건들은 대부분 사이즈가 굉장히 큰 제품 이거나, 디자인이 너무 파격적이어서 입는 순간 바로 아싸(얼굴이 잘 생기면 인싸)가 되는 옷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가격만 보고 쇼핑을 하다 보니, 매년 옷을 사도 입을 옷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맨날 회색 바지에 검은색 니트 그리고 내 몸 보다 훨씬 큰 패딩을 입고 당겼다. 주변 사람들에게 오버핏 패딩이라고 우겨보지만 현실은 그냥 서울역 노숙자가 따로 없다.   


예전 글에서 밝혔듯이, 어떠한 유혹에도 빠지지 않는다는 불혹이 되던 해 나는 명품의 유혹에 빠졌다. (따라서, 공자의 말은 틀린 것이다. 당시 평균 수명이 마흔이던 시절인지라 불혹이란 말이 나온 것 같다.) 옛날에 태어났다면 이미 죽었을 목숨인데, 현대 의학과 과학의 도움으로 아직도 삶을 연명하고 있다. 그렇게 새롭게 받은 제2의 인생을 위해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일단 패션 테러리스트에서 탈출하기로 마음먹었다. 싼 옷으로도 충분히 옷을 잘 입을 수 있음을 지금은 잘 알고 있지만 당시에는 비싼 명품 옷을 입어야 옷을 잘 입게 되는 것인 줄 알았다. 어찌 되었건 비싼 옷을 입고 광을 내어 반짝 거리는 구두를 신고 밖에 나가면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말끔하게 입고 백화점 명품관에 매일 출퇴근 도장을 찍었다.


돈이 많아서 그랬던 것도 아니고, 단지 다른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지난 40년간 아끼고만 살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써보지도 못하고 죽게 된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내 몰래 10년 넘게 모아 온 비상금으로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명품을 접하기 전에는 루이비통이 최고의 명품인 줄 알았다. 한 달 월급에 달하는 3백만 원짜리 루이뷔통 토트백 하나만 사면 행복할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볼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옆에 숍에서 판매하는 5백만 원짜리 보테가 베네타의 토트백을 보고 난 순간부터 루이뷔통 백이 못생겨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보테가 제품이 눈에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순간 소름이 돋았다.


'보테가 베네타 가방을 사고 나도 더 비싼 에르메스 가방에 눈이 돌아가겠지?'

'어차피 계속 더 좋은 명품에 눈이 돌아간다면, 애당초 에르메스 가방을 사야 하는 건가?'


이러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니 2천만 원짜리 에르메스 버킨백을 사더라도 거기에서 멈출 것 같지 않았다.




비단 가방만 그러할까, 작가로서의 삶도 끝없는 욕심이 발동한다. 출간 작가님들을 보면 너무나도 부러운데,  막상 출간하고 나면 20쇄 이상 찍는 베스트셀러 작가를 부러워할 것 같다. 브런치 작가 선정만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가 엊그제인데, 구독자 수가 늘지 않으면 점점 초조해진다.


'김영하 씨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나면 욕심이 끝이 나려나?'


얼마 전에 런닝맨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는데, 가수 블랙핑크가 출연을 했다. 출연자들 간의 대화 중에 블랙핑크의 유튜브 구독자 수가 5천만 명에 달한다는 소리를 듣고 개그맨 지석진 씨가 이런 말을 했다.


"우와 진짜 부럽습니다. 저는 구독자가 10만 명 밖에 안되는데, 언제 저희 채널에 한 번 출연해 주시면 안 될까요?"


10만 명 구독자도 정말 부러운데, 10만 명 구독자를 가진 사람은 5천만 구독자를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사람 욕심의 끝은 어디일까?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위를 쳐다보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이룬 것과 현재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하기 시작했다.


여우가 먹음직스럽게 매달려있는 포도를 바라보면서 저 포도는 어차피 신 포도일 거야 하고 미리 포기해 버리는 것과는 다르다. 에르메스 가방과 5천만 구독자가 싫은 것도 아니다. 다만 지금 현재 매일 글 쓰고 구독자님들과 소통하는 기쁨을 좀 더 충실하게 느끼고 싶을 뿐이다.


남자 중에 이런 사람들이 있다.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노력해 ‘여자의 마음’을 얻는 순간 사랑이 식는 사람 말이다. 이들의 이상형은 얼굴이 예쁘거나 마음씨가 예쁜 것도 아닌 처음 보는 낯선 여자다.


도파민형 인간이라는 책을 보면 뇌 과학적으로 이런 사람들을 설명하고 있다. 내가 현재 가지고 있지 못한 명품 가방이나, 이루고 픈 꿈이나, 사귀고 싶은 여자를 생각하는 순간 도파민이라는 호르몬이 우리 몸에서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도파민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현재의 만족과 관련된 호르몬이 분비된 다고 한다. 도파민에 중독이 된 사람들은 도파민 분비가 멈춘 이후의 삶을 즐기지 못하기 때문에 또 다른 도파민 분비 거리를 찾아 헤매게 된다.


그간 내가 얼마나 도파민에 중독되어 있었는지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프랑스 파리에 여행을 가서도 그랬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에펠탑에 집중하기보다 내 머릿속은 다음 여행지에 어떻게 가야 할지 생각하기 바빴다. 맛있는 마카롱을 먹으면서 내일 저녁땐 무엇을 먹을지 걱정했다. 현재 내가 느끼는 감정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고 항상 한 발 앞선 미래 걱정만 했던 것 같다. 이젠 더 이상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카르페 디엠!”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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