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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Nov 12. 2020

8. 부하직원 괴롭힌 자의 최후  

야이 C8놈아, 빨리 보고서 가져와


 신입 시절 A 부장님은 욕을 입에 달고 사셨다. 그에게 있어 내 이름은 손주부가 아니었다. 나의 이름은 C8놈이었다. 같은 부서 1년 선배의 이름은 X새끼였다. A 부장님은 잔소리하는 것도 좋아하셨다. 한 시간은 기본이고 길면 3시간까지 잔소리를 하셨다. 점심시간이 없었다면 5시간도 가능했을 것 같다. 부장님은 직원들을 책상 옆 의자에 앉혀 놓고 잔소리를 하셨다. 월요일 아침 교장 선생님 말씀보다 더 지겨운 설교를 듣고 온 선배들은 뱀파이어에게 피를 빨린 사람처럼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부장님은 사무실 내에서 양치질하는 것을 좋아하셨다. 양치질하는 시간까지 아껴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경영진에게 어필하려 했던 것인지 모르지만, 보기에 너무 거북했다. 탈수기처럼 부하 직원들을 쥐어 짜내는 것을 좋아하셨던 부장님은 경영진의 신임을 얻어 차기 임원 후보 1순위에 올랐다.  


하루는 본사 체육대회가 청계산 인근에서 열렸다. 모든 본사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사장님 말씀을 들었다.

"우리는 현재 위기 상황에 처해 있으며, 경쟁사로부터 시장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뭔 놈의 회사는 1년 내내 위기 상황이다. 입사 이후 회사가 좋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위기 탈출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라고 채찍질한다. 직원들은 채찍을 너무 많이 맞아 굳은살이 배겼는지 웬만한 채찍으로는 아픔이 안 느껴진다.


사장님은 말씀이 끝난 후 각 부서를 직접 돌면서 직원들과 악수를 했다. 잠시 뒤 우리 부서 차례가 되었다. A 부장님과 먼저 악수를 하신 다음 말씀하셨다.


"A 부장, 부서원 소개 좀 해주게."

"네, 여기는 B과장입니다."

"그리고 이 쪽은............................................"


부장님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지셨다. 평소 내 이름 대신 C8놈이라고 항상 부르셨기에 이름을 까먹으셨던 것이다. 몇 초간의 시간 동안 정막이 흐르고 만화의 한 장면처럼 까마귀가 지나갔다.  


'부장님 무안하게 계속 모르는 척하고 있을까?' 아니면 '스스로 자기소개를 할까?'

부장님 얼굴 표정을 보니 더는 모르는 척 할 수 없었다.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신입사원 손주부입니다."


1년 뒤 A 부장님은 다른 부서로 가셨다. 그리고 B부장님이 새로 오셨다. 그분은 나를 C8놈이라고 부르지 않으셨다. 회사 생활을 나보다 12년이나 먼저 시작하셨지만 존댓말을 써주셨다. 업무처리가 미숙하여 실수를 하더라도 욕 하거나 화내지 않으시고 천천히 가르쳐 주셨다. 존댓말을 써주시니 나 또한 부장님을 더욱 존대하고 싶어 졌다. 그렇게 B부장님 밑에서 동물이 아닌 사람 대우받으면서 일을 배울 수 있었다.


세월이 흘러 A 부장님의 소식을 들었다. 회사 내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그에 대한 책임을 물어 퇴사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때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리고 차기 임원으로 추앙받던 분이셨는데 퇴사하셨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역시 주변 사람들을 아프게 하면 오래가지 못한다는 진리를 재삼 느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B부장님의 임원 승진 소식을 들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덕을 쌓으시더니 결국 그 자리까지 올라가셨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지난 부산 여행 때 만난 분이 바로 B부장님이시다. 세월이 흘러 주름은 많이 늘었지만, 그간 인품이 쌓여 인자함이 얼굴에 묻어났다. 마흔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처럼 그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느껴졌다.


코로나 이후 하루 동안 만나는 성인 인간은 아내가 유일하다. 아내에게 덕을 많이 쌓아야 나중에 늙어서 버림받지 않을 지언데, 엊그제는 너무 화가 나서 짜증을 내었다. 평소 아내는 오후 6시 30분에 집에 도착한다. 그래서 그 시간에 딱 맞추어서 저녁 식사를 식탁에 차린다. 그런데, 그날따라 6시 30분이 지나도 오질 않는 것이었다. 열심히 만든 음식은 식어만 갔고 식어가는 음식과 함께 내 마음도 식어갔다.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늦으면 늦는 다고 문자 하나 보내는 게 그렇게 어렵나?'


아내를 향한 못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다가 5년 전 그때가 갑자기 떠올랐다.


자기야, 저녁때 늦을 것 같으면 미리미리 연락해 주세요!!!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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