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rian 손주부 Nov 13. 2020

싼 미용실에 가면 안되는 이유

퇴사하고 아내가 머리를 깎아 주다가 정말 오래간만에 미용실에 갔다. 평소 다니던 미용실이 아닌 새로운 곳으로 갔다. 예전 미용실의 실력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지금까지 다니던 미용실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았다. 커트 가격이 25,000원이지만 매번 머리를 할 때마다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만큼, 미용실 실장님은 고객의 취향을 잘 파악하시고 멋진 헤어를 완성해 주셨다.  


퇴사 후 따박 따박 꽂히던 월급이 끊긴 상태인지라 계속 여기서 머리를 깎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집 주변 파란 클럽(가칭)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파란 클럽은 우리나라에서 커트 가격이 가장 저렴한 남성 전용 미용실이다. 커트 가격이 8,000원 이니깐, 평소 다니던 미용실에 3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여기서 머리를 깎으면 17,000원을 절약할 수 있고, 17,000원이면 읽고 싶은 책을 서점에서 서서 읽지 않아도 되는 금액이었다. 다행히 도보로 2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파란 클럽과 유사한 미용실이 있었다. 이름하여 '멋진 놈'(가칭)이라는 미용실이었다. 작명 한 번 끝내준다. 여기서 머리를 자르면 '멋진 놈'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것인가?


내비게이션에서 위치를 검색한 후 자전거를 타고 '멋진 놈'으로 향했다. 처음 가본 그곳은 5층짜리 상가 건물 지하 1층 구석 자리에 위치해있었다. 10평도 안되어 보이는 크기에 손님으로 이미 가득 차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미용사님이 옷을 걸고 기다리라고 하신다. 옷을 걸며, 손님들의 인상착의를 확인해 보았다. 70대로 추정되는 할아버지, 그리고 정년퇴직을 얼마 전에 하셨을 것 같은 50대 아저씨,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온 중학생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멋진 놈'에서는 멋진 놈이 보이지 않았다. 하긴, 머리를 자르러 온 나 또한 회색 운동복에 운동화 차림이었다. 속으로 '꾸안꾸'라고 우겨보지만, 그냥 동네 마실 나온 40대 아저씨였다.  


예전 미용실은 예약제였기에, 가자 마자 바로 깎을 수 있었는데 '멋진 놈'은 예약이 불가능했다. 내 앞에 3명의 손님이나 있어 한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노란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미용사 아저씨는 바리깡(이발기)과 빗 두 개를 사용하여 빛의 속도로 자르기 시작하셨다. 정말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손님 한 분의 머리를 완성하셨다.


"자, 다음 손님!"


시계를 보니 5분이 채 안 걸렸다. 그렇게 정확히 15분(5분 곱하기 3명)을 기다린 후 내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머리를 보니 전에 '투블록'(가수 지드래곤이 유행시켰던 머리)을 하셨네요?

"네, 맞습니다."

"이대로 자를게요!"


예전 다니던 미용실 실장님이 지드래곤이 했던 머리라고 하시며 40분에 걸려 완성하셨던 머리인데, '멋진 놈' 미용사님은 바리깡 춤 5분 만에 커트를 마치셨다.


"머리 감고 가실 거죠? 수건이랑 샴푸는 저쪽에 있습니다."


'역시, 8,000원짜리 커트에 머리를 감겨주는 서비스는 없구나!'

'그나마, 셀프 샴푸라도 가능해서 다행이네!'


 혼자 샴푸를 하고 머리를 말린 후 헤어왁스로 스타일링해본다.


'음,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군, 역시 남자는 왁스 빨이야'




아내는 오늘도 야근인가 보다. 매일 지속되는 야근을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차오른다. 원래 퇴근 시간보다 3시간이나 늦게 집에 돌아왔다. 아내의 얼굴이 어두운 것이 피곤에 절어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아내가 나를 보더니 웃기 시작한다.


"푸하하 하하하하하, 자기 오늘 머리 자른 거야?"

"응, 왜? 멋지지 않아?"

"집에서 혼자 직접 자른 거야? 머리 스타일 정말 웃겨! 김정은 머리 같아!"


얼굴이 갑자기 빨갛게 달아올랐다. 예전 지드래곤 머리는 '멋진 놈'을 다녀온 이후 북한 김정은 머리가 되었다. 북한에서 현재 최고 인기 스타일이라는 '패기머리'! 이름 한번 패기 넘친다. 배꼽 빠지게 웃는 아내를 보니 8,000원 주고 머리를 깎은 보람이 있다. 아내의 기쁨을 위해 무슨 일을 못하랴. 게다가 아낀 17,000원으로는 읽고 싶었던 태지원 작가님의 신작을 살 수도 있다. 이거야 말로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잡고다.


전문용어로 일타쌍피!


작가의 이전글 8. 부하직원 괴롭힌 자의 최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