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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Nov 20. 2020

#56 롯데월드에 한 맺힌 사람

손주부가 국민학교 다니던 1989년 어느 겨울날,


"엄마, 나 롯데월드 가고 싶어!"

"야, 너 거기 입장료가 얼마나 비싼데 거길 간다고 그래?"

"아, 그래도 가고 싶단 말이야. 엄마 제발~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설거지도 내가 해줄게~"

"안돼! 앞으로 롯데월드 이야기 한 번 더 꺼내면 혼날 줄 알아!"


엄마는 정말 단호했다. 한 번만 더 가자고 이야기했다가는 구두 주걱으로 종아리를 신나게 맞을 것 같았다. 얼마 전 맞은 곳이 아직 아물지 않았기에, 또 맞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롯데월드에 갈 기회가 생겼다. 대구에서 사는 사촌 형이 놀러 왔기 때문이다. 방학을 맞아 사촌 형은 서울 구경 차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사촌 형은 롯데월드에 가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는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내일 당장 가자고 말씀하셨다.


'아, 나는 주워온 자식인가 보다. 내가 가자고 할 때는 절대 안 된다고 하더니, 형이 말하니깐 바로 승낙해 주시네'


사촌 형 덕분에 동생과 나는 어부지리로 롯데월드에 갔다. 유치원 때 자연농원에 간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가보는 놀이공원이었다. 아, 자연농원이 아니라 에버랜드다. 여기서 아저씨 티를 내는구나. 롯데월드는 자연농원과는 달리 실내에 놀이기구들이 있었다.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실내는 난방이 되어 따뜻했다. 아니, 오리털 잠바를 입고 있었더니 더웠다.


롯데월드에 간다는 생각에 너무 신나서 전날 밤을 설쳤다. 그렇게 잠을 설쳐도 롯데월드 간다는 생각에 아침에 벌떡 일어났다. 아침밥을 먹자마자 우리는 롯데월드로 향했다. 엄마가 표를 구매하러 간 동안 지도를 보며 놀이기구의 위치를 파악했다. 그리고 입장과 동시에 바이킹으로 뛰어갔다. 롯데월드는 개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금과는 달리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바이킹 입구를 통해 입장하려던 순간 표를 검사하던 누나가 우리를 막았다.


"애들아,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표로는 여기 못 들어가!"

"네? 왜 못 들어가요? 여기 표 있잖아요?

"애들아, 이건 놀이공원에 들어올 수 있는 입장권(4,500원)이고 놀이기구를 타려면 자유이용권(13,000원)을 갖고 있어야 해!"

순간 뭔가 잘못되었음을 감지하고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가 머쓱해하시머 그때서야 말씀해 주셨다.

 

"애들아, 자유이용권이 너무 비싸서, 입장권으로 샀어. 굳이 비싼 돈 내고 탈 필요 있니? 그냥 여기 편히 앉아서 다른 사람들 타는 것 보면 되지!"

악!!!!!!!!!!!!

너무 슬펐다. 여기까지 왔는데 입장권만 끊어준 엄마가 야속했다. 엄마는 미안하다면서, 새우깡 (200원)을 손에 쥐어준다.

 

"사촌 형아랑 같이 나눠 먹어"


속상했던 마음이 새우깡 한 봉지에 수그러든다. 똑똑한 엄마는 200원짜리 새우깡 한 봉지로 자유이용권 비용을 아꼈다.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자유이용권은 새우깡 65 봉지를 살 수 있는 어마 무시한 금액이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중에 크면 돈 많이 벌어서 자유이용권 꼭 사고 말테야!'



2017년 겨울, 28년 만에 롯데월드를 찾았다. 28년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엄마와 동생, 사촌 형이 아니라 아내 그리고 두 딸아이와 함께 왔다. 엄마는 10년 전 돌아가셨고, 동생과 사촌 형은 결혼 후 가족이 생겼다. 그리고 입장권이 아닌 자유이용권을 사기 위해 내 이름 석자가 박혀있는 신용카드도 가져왔다. 게다가 이 카드는 50%나 할인해준다!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손에 꽉 쥐고 왔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단 말인가! 큰 발걸음으로 매표소로 씩씩하게 걸어간다.


"여기, 입장권이 아니라 자! 유! 이! 용! 권! 네 장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혹시 할인되는 카드 있으세요?"

"여기 있습니다!"


너무나도 기뻤다. 자유이용권을 드디어 손에 넣었다.


롯데월드 어드벤처 입구! 자유이용권을 가지고 여기를 들어가기만 하면 된다!

롯데월드 입구를 지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한층을 올라갔다. 위층에 재미있는 놀이기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걸 위층은 수많은 사람들로 이미 가득 차 있었다. 재미있어 보이는 어트랙션은 한 시간이나 대기해야 했고, 재미없어 보이는 것도 20분 정도 대기해야 했다.


'신이시여, 저를 또 시험에 들게 하십니까!!!!!!!!!!!'


기왕 온 거 좀 기다리더라도 재미있어 보이는 놀이기구에 줄을 섰다. 그런데, 딸아이들의 인내력은 그리 길지 않았다. 10분밖에 기다리지 않았는데, "아빠 다리 아파, 목말라, 배고파, 심심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해"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줄을 서지 않고 바로 놀이기구를 타러 가는 것이었다. 황당해서 옆사람에게 물어보니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매직 패스" 소지자라는 것이었다. 가격은 10만 원이었다.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 우리도 저 사람들처럼 바로 들어가면 안 돼?"

"안돼! 저 쪽으로 가려면 돈이 얼만데! 우리 가족 모두 40만 원이나 더 내야 된다고!"


이 말을 하는 순간 갑자기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났다.


'28년 전 자유이용권은 비싸서 안된다는 엄마의 심정이 지금 내 심정과 같았나 보구나!'


이렇게 역사는 반복된다. 그리고 반복되는 역사를 오늘 끊고 싶다는 오기가 갑자기 생겼다.


'이젠, 더 이상 돈 때문에 하고 싶은 일들을 미루지 않을 거야!'


정신을 차려보니 내 손에는 연간회원권 4장이 손에 쥐여 있었다.

엄마가 회유책으로 사줬던 새우깡,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나서 잘 안 먹는다. 그런데, 깐풍 새우깡은 잘 먹는다.

연간회원권을 손에 넣은 후 우리 가족은 정말 질리도록 롯데월드에 갔다. 하도 많이 가다 보니 월요일 오전에 사람이 가장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신밧드의 모험 옆에 있는 푸드 코트(스쿨푸드) 라면이 맛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1년 간 거의 매주 출근 도장을 찍었다.  


이제 아이들은 지겨워서 롯데월드에 가자는 소리는 안 한다. 그런데, 요즘 소망이 하나 생겼다. 30년 뒤에 아이들이 아니라 손주들을 데리고 롯데월드에 가는 것이다. 손주들이 지겨워할 때까지 놀이기구 탈 수 있도록 매직패스랑 연간회원권을 사주고 싶다. 손주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지난 70년 간의 삶을 돌이켜 보는 일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 출처 : 손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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