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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Nov 17. 2020

#55 사랑의 정의

 

극락조(실내식물) 잎의 먼지를 닦다가, 사랑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원래 똥 손이어서 선인장도 죽이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극락조에게 사랑을 주기 시작하자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흙이 마르면 물을 주고 영양제를 뿌려준다. 그리고 커다란 잎에 먼지라도 앉으면, 마른걸레로 조심스레 먼지를 닦아 준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은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를 주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보았다.


연애하던 시절 여자 친구(아내)가 보고 싶다고 말하면,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달려갔다. 보통 밤 10시에 회사에서 퇴근하면 피곤했을 법도 한데, 강남에서 노원까지 한 시간을 운전해서 기어이 여자 친구 얼굴을 보러 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며 아내를 사랑했던 나 자신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지금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돈 벌러 회사 가기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회사를 다니고 있는 것은 가족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희생함으로써 가족들을 먹여 살릴 양식을 가져온다. 직장생활은 무뚝뚝한 아버지의 사랑 표현 방식이다.


아이돌 그룹인 레드 벨벳을 사랑하는 딸아이는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들인다. 딸아이는 받는 용돈을 족족 아이돌 사진과 굿즈를 사는데 모두 써버린다. 한정판 굿즈(기념품)를 사기 위해 시간을 들여 줄을 서기도 하고, 사진 한 장에 5천 원씩이나 하는데 기꺼이 자기 용돈을 쓰는 딸아이를 보면서 레드 벨벳을 강렬히 사랑하고 있음을 느낀다. 이들에게 관심 없는 40대 아저씨 손주부는 공짜로 집에 배달해주지 않는 이상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지 않는다.


얼마 전 마흔 살이 넘은 아들이 허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 아버지는 기꺼이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대전에서 올라오셨다. 아버지는 혹시라도 퇴사한 아들이 돈 걱정 때문에 병원이라도 못 갈까 봐 도수 치료 꼭 받으라면서 돈 봉투를 기어이 손에 쥐어주고 가신다. 돌아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무뚝뚝하지만 깊은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진다. 그리고, 얼마 뒤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서 그런지 허리 통증이 사라졌다.  


돌이켜보니 요즘 나는 말로만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다녔다.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이 아까워서 배달음식을 종종 애용했고, 빨래를 개고 나면 너희들이 좀 정리하라고 초등학생 딸아이들을 다그쳤다. (난 가족들을 덜 사랑하게 된 걸까?)


친구들에게는 보고 싶다며 언제 한번 소주 한잔 하자고 말로만 했다. 정말 그들을 사랑하고 아낀다면 먼저 연락하고 친구 집 근처 술집에서 기다렸을 텐데 말이다. 코로나 혹은 육아 때문에 바쁘다는 이런저런 핑계로 말로만 사랑하고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기 싫어했다.  


추신 : 요즘 아기 고양이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래서 고양이를 입양하려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고양이의 수명이 15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입양을 포기했습니다. 아무래도, 정든 고양이를 먼저 떠나보낼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70살 즈음 고양이를 입양하면 어떨까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럼 비슷한 시기에 하늘나라에 같이 갈 수 있으니깐요.


그리고,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손주부의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 때문에 요즘 너무 행복합니다. 저 또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열심히 쓰는 것이 사랑 주신 독자님들에 대한 보답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사진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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