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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ian 손주부 Nov 22. 2020

#58  지옥같은 관계

외로움에 대하여

외로움의 사전적 정의는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을 뜻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타인과 소통하지 못하고 격리되었을 때 느끼게 된다. 예를 들면 낯선 환경에서 혼자서 적응할 때,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였을 때 등 혼자가 되었다고 느낄 때 외로움을 느낀다고 할 수 있다. by 위키백과


예전에 읽은 책에서 "외로움"은 인류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왜냐하면, 외로움을 느껴야 우리는 서로 소통하고 협력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더라면, 다른 동물들에 비해 연약한 몸을 가졌던 인류는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주부가 되고 나서 외로움을 느꼈다. 남자는 돈을 벌고 여자는 살림을 살아야 한다는 오랜 사회적 통념 때문인지 모르겠다. 남성 주부는 주변에 없었다. 그래서 외로움을 느꼈다. 둘째 딸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던 날 처음으로 학부모님들을 만났다. 홀로 하는 주부생활이 외로웠기에 학부모님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 같이 단톡 방을 만들어서 육아, 살림 정보도 공유하고 애들 학교 보낸 후 브런치도 같이 먹고 싶었다. 그런데, 남자라는 때문에 엄마들의 커뮤니티에 녹아드는 것은 쉽지 않았다.


코로나 전 딸아이를 데리고 놀이터에 가면 세 그룹의 보호자가 있었다. 엄마가 데려온 경우,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가 데려온 경우, 유모(대개는 조선족)가 데려온 경우다. 아빠가 데려온 경우는 없었다. 엄마 그룹에 끼자니 엄마들의 자유로운 대화(대화의 주제가 남편 흉보기일 경우)에 민폐 끼치는 것 같았고, 조부모님과 어울리자니 세대 차이로 공감대 형성이 어려웠고, 그렇다고 중국말하는 조선족 아줌마들과 어울려 지낼 수도 없었다.  


어느 그룹에도 끼지 못하게 되자 휴대폰만 쳐다보면서 혼자 쓸쓸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딸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아빠, 우리 술래잡기하는데 아빠가 술래 해줄래?"


그 일을 계기로 휴대폰만 쳐다보는 왕따 아저씨 대신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는 동네 아저씨가 되었다. 딸아이와 딸아이 친구들과 다 같이 숨바꼭질이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했다. 다 큰 어른 아저씨가 바보 같은 표정 지으면서 재밌게 놀아주고, 아이스크림도 사주니 아이들은 나를 좋아했다. 길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해 주고, 남는 마이쮸가 있으면, 아저씨 먹으라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내 손에 쥐어줬다.


이런 생활을 한 달 정도 하다 보니, 동네 엄마들 사이에서 나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나는 모르는 분인데, 길에서 인사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하더니, 정신을 차려보니 엄마들의 단톡 방에서 폭풍 수다를 떨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룹에 편입된 이후 하루를 멀다하고 엄마들이랑 키즈카페에 갔다.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열심히 놀게 놔두었고 엄마들끼리 테이블에 앉아서 폭풍 수다를 떨었다. 나는 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기만 했다. 엄마들의 폭풍 수다를 바라보며,


'아, 이젠 나도 어느 그룹의 일원이 되었구나!' 하고 소속감과 안도감 같은 것을 느꼈다.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다. 우여곡절 끝에 엄마들 그룹에 속하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룹에 속해있는 것이 답답했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종속되어 살고 있는 날 발견했다. 예컨대 옛날에는 장 보러 갈 때 운동복 차림에 모자 푹 눌러쓰고 서울역 앞 노숙자처럼 동네 마트에 갔는데, 동네에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부터 그냥 밖으로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혹시라도 아는 엄마들과 마주칠까 늘 깔끔하게 옷을 입고 외출을 했다.


어떤 그룹에 속해 있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그룹이 주는 구속감을 숨 막혀한다. 


가족들과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만, 가끔은 내 마음대로 혼자 여행하고 싶다. 가족 구성원마다 여행의 취향이 모두 다르기에, 여행을 가면 다수인 여자 사람들의 취향에 맞추어 다닐 수 밖에 없다. 영국까지가서 뮤지컬이랑 발레랑 미술관만 가고 손흥민 축구 경기 한 번 못보고 왔다. 아내는 혼자 가라고 말은 하지만 아내의 말에 숨겨진 2차 의미를 알기에 이젠 가지 않는다.


나이 먹고 늙어서 내 몸을 가눌 수 없게 되었을 때, 늙어서 자식도 없이 아무도 날 만져주지 않을 때, 호스피스 병동에서 혼자 죽어갈 때가 두려워 결혼을 했다. 그런데 이러한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나 또한 그들을 위해 평생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열심히 가르치고 먹여야하고, 나이들어 간다고 거울을 보면서 한탄하는 아내에게 예쁘다고 하나도 안변했다고 계속 말해 주어야 한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지옥을 이렇게 묘사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지옥에 갔는데, 너무나도 좋은 호텔 방에 있더란다. 그리고 호텔 방에는 두 명의 여자가 있었다. 여기가 지옥이 맞냐고 물어봤는데, 지옥이 맞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 호텔방에서 그는 평생 두 명의 여자와 지내야 했다. 타인과의 관계가 지옥이었던 것이다.


삶이 지옥 같던 순간들을 돌이켜 보면 일이 힘들어서라기 보다 타인과의 관계가 지옥이었다. 군대에 있을 때 힘들었던 것은 훈련이 아니라 욕설과 구타를 밥 먹듯 하던 선임 때문이었다. 직장이 지옥처럼 느꼈졌을 때는 보고서를 던지며, 다시 쓰라는 상사를 마주했을 때였다.


밤 11시에 해외 거래처에게 보낼 서신을 영어로 번역하라고 카톡을 보내고, 카톡 확인을 못하면 연락이 닿을 때까지 전화를 했다. 늦은 밤 샤워를 하고 자기 전 알람 설정을 위해 휴대폰을 들었는데,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와있음을 발견했을 때 지옥을 경험했다.


결혼 생활도 그렇다. 함께 산다는 것이 마냥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서로에게 상처 주고 말싸움이라도 한 날이면, 집처럼 지옥 같은 곳이 없다. 그럴 때면 그냥 결혼 안 하고 혼자 살 걸 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물론, 천국 같은 날도 있지만, 지옥 같은 날도 있다. 그래도 이혼 안하고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은 지옥보다는 천국같은 날들이 더 많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나는 코로나 때문에, 호텔방 보다 많이 낡은 집에서 세명의 여자와 갇혀 살고 있으니 이는 천국인가 지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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