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N2B는 PBS의 DNA
PBS, 즉 프로젝트 기반 시스템은 한국 연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부딪히는 제도다. 1990년대 초반 도입된 이 제도는 연구비를 연구자가 직접 확보하도록 만들어, 자율성과 경쟁을 동시에 부여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수십 년이 흐른 지금, PBS는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다. 어떤 연구자는 연구의 활력을 키운 제도라고 말하고, 또 다른 연구자는 연구를 왜곡한 제도라고 지적한다. 그 양극단의 평가 속에도 하나의 공통된 구조가 숨어 있다. 바로 N2B다.
PBS의 출발은 기존 방식의 부정이었다. 정부가 일괄적으로 연구비를 배분하던 방식은 비효율적이라는 비판이 있었다(Not). 그래서 연구자가 스스로 과제를 따내고, 책임 있게 운영해야 한다는 새로운 길이 제시됐다(But). 그것이 연구 경쟁력을 높이고, 책임 있는 연구 문화를 만들 것이라는 이유가 붙었다(Because). PBS의 탄생 자체가 전형적인 N2B의 구조였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구조는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부정과 전환만 강조되고, 이유가 약해졌다. 연구비 확보가 연구의 목적처럼 변했고, 성과주의가 제도의 본질을 대체했다. “기존 방식은 비효율적이다(Not). 그래서 PBS로 가야 한다(But).”라는 주장만 남고, “왜 그것이 연구를 더 깊게 만드는가(Because)”라는 이유는 뒷전이 되었다. 구조가 불완전해지자 제도는 연구자를 옥죄는 장치로 변해버렸다.
많은 연구자들이 체감하는 문제도 이와 같다. 평가와 성과 중심의 압박은 연구의 자유를 위축시켰고, 단기적 과제 성과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Not과 But은 강력했지만, Because가 사라진 PBS는 연구의 본질을 지켜내지 못했다.
PBS를 다시 바라본다면, 우리는 원래의 구조를 회복해야 한다. “기존 방식은 한계가 있었다(Not). 그러나 PBS는 연구자의 자율성을 넓히는 길이었다(But). 왜냐하면 그것이 연구의 본질적 동기를 살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Because).”라는 당초의 구조를 되살려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제도는 계속해서 왜곡된 평가와 억압의 도구로 남을 것이다.
N2B는 PBS의 DNA다. 제도의 탄생도, 성장도, 왜곡도 모두 이 구조 속에서 이루어졌다. PBS를 비판하거나 개혁하려면, 단순히 부정을 외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전환과 정당한 이유를 함께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왜곡이 반복될 뿐이다. 결국 제도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구조 속에서만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