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을 되찾기 위한 매일 '글 쓰/적는' 습관 실천하기
지은이 오은
위트 앤 시니컬이 다시 문을 연다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문학과지성사, 2015)의 프롤로그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는 그림자와 영혼에 관한 여러 가지 우화가 등장한다. 그림자는 사람을 사람처럼 보이게 해주는 것이며 영혼은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것이다. 개중 나의 시선을 오래 머물게 만든 구절이 있었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잉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거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는 시집 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떠올렸다. 시를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위트 앤 시니컬은 나에게 장소를 갖게 만들어주었다. 처음 서점에 발을 들이던 순간, 나는 그 공간이 나를 우호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느꼈다. 보이는 것ㅇ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껴안아주는 느낌이었다. 단순히 시집을 사고파는 서점을 넘어서, 책을 마주할 수 있는 경험, 낭독의 즐거움과 독서의 기쁨을 얻는 장소였다. 무엇보다 시를 읽음으로써 무용한 것이 얼마나 반짝일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위트 앤 시니컬이 문을 닫는다. 2016년 여름에 문을 연 이래, 시간이 날 때마다 그곳을 찾았다. 집에서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야 하는 거리였지만, 기꺼이 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찾을 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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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위크 앤 시니컬은 손님보다는 독자, 아니 친구를 만나는 곳이어다. 많은 이가 그곳에서 자신이 사람이라고, 그 장소에 속해 있다고, 비로소 환대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소비 이상의 경험이 존재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장소를 채우는 것은 기둥과 테이블, 의자, 책 등의 물질이지만 비가시적인 것들이 '순간'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난생처럼 시집을 고를 때 떨리는 손끝 같은 것 말이다. 우리는 매번 각자의 그림자를 끌고 왔다가 영혼이 충만해져서 돌아갔다.
위트 앤 시니컬이 다시 문을 연다. 신촌 생활이 끝나고 혜화동 생활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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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영혼이다. 위트 앤 시니컬이 어디선가 계속 운영된다는 것은 내게 영혼을 위로할 장소가 '아직'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장소에서 나는 그림자뿐만 아니라 영혼을 지닌 사람임을 재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장소가 주는 환대를 넘어 내가 나 자신을 환대할 수 있을 것이다.
환대, 라는 말을 유행처럼 쓰는 요즘. 이 글을 읽으며 진짜 '환대'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영혼'을 반겨주는 곳. 그래서 존재 가치를 증명해주는 장소. 환대는 자리를 내주는 것이라는 의미가 참 마음에 와 닿는다. 내가 유독 편안하게 생각하고, 따뜻했던 환대의 경험은 무엇으로부터 왔던 것일까. 나는 누군가를 제대로 환대한 적이 있었던가. 앞으로의 환대는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20년 가까이 매달 300 페이지에 달하는 책의 글을 쓰고, 페이지를 편집하고, 출판을 하는 에디터란 직업을 가졌었다. 매거진을 그만 둔 이후 약 5년 간은 난필증 또는 난독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무언가를 쓰거나 양껏 읽는 일이 유난히 어렵게 느껴졌다. 요즘 들어 감각을 언어화 하고, 생각을 체계화하는 글쓰기가 뇌운동과 내면 챙김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해왔는지 새삼 깨닫고 있다. 초심과 정체성을 되찾기 위해 다시 '글을 써/적어'보려고 한다. 먼저 30일 동안 매일 필사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필사하는 책은 그때그때 마음가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