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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Jun 10. 2021

캐나다에서 개에게 물린 날

‘짐승이구나.’


옆집 개에게 물린 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몸집이 나만한 대형견이었다. 내가 작기도 하고 걔가 워낙 크기도 하다. 이사 온 날부터 우리 가족만 보면 짖어대더니 결국 나를 물고 말았다.


그날은 뒷마당 정리를 하려고 마음먹은 날이었다. 마당 뒤 쪽으로 걸어가 잡초를 뽑으려고 몸을 숙였다. 그런데 펜스 너머로 내 걸음소리를 쫓아 달려오는 개의 발소리가 들렸다. 순간 '설마' 하는 마음으로 눈을 들어 펜스 끝을 쳐다보았다. 작은 틈으로 옆 집 개의 까만 코와 얼굴이 들어오고 있었다. '안돼!' 하는 순간에는 이미 개의 몸 전체가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악!"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감싸 안고 뒤돌아 주저앉았다. 개가 얼마나 빠르게 나를 표적 하여 달려왔는지, 내가 채 다 주저앉기도 전에 엉덩이를 물리고 말았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위아래로 박히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베이는 것과는 또 다른 고통이었다. 이빨이 깊숙이 박혔다 나온 곳이 욱신거려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개 입이 얼마나 컸는지 한쪽 엉덩이 전체에 이빨 자국이 났고 시퍼런 멍이 들었다. 물린 지 두 달이 지났는데도 특히 깊이 찔린 상처에는 아직도 통증이 가시지 않고 있다.


그리곤 생각했다. 개는 짐승(사람이 아닌 동물을 이르는 말)이라고. 아무리 사람과 한 가족이 되어 함께 사는 개라도 인간과 같을 수 없는 동물이라고. 나 역시 개를 키운 적이 있고 여전히 개를 좋아한다. 하지만 엉덩이에 생긴 상처만큼 새삼 깊이 깨달았다. 개가 공동주택, 마을 산책로, 공원 등 인간과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살 수 있으려면 그에 걸맞은 훈련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반려견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에 들어와 인간과 공존하고자 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반려동물을 들일 때, 그 생명의 존엄성과 관련해서는 예전보다 사회에서 많은 동의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입양하고 쉽게 파양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개를 위한 책임감 말고, 개를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인간을 위한 책임감에 대한 의식은 아직 부족한 것 같다. 내가 반려견을 들임으로써 내 이웃은 삶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받는다. 개 짖는 소리를 들어야 할 수 있다. 배설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피해를 볼 수도 있다. 물림 사고에 대한 리스크도 그렇다.


우리 가족 역시 반려견을 입양하려던 계획을 나중으로 미뤘다. 개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다. 내 개가 인간이 사는 공간에서 피해 주지 않고 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아직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훈련시킬 자신이 없다.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어린 딸들이 있어서 그렇다. 개에게 물리고 나니 개를 사람의 가족으로 들이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




제 경험을 토대로 캐나다에서 개에게 물렸을 때 기억해야 할 것을 남겨둡니다. (저는 온타리오주에 살아요. 주가 달라질 경우에는 내용이 다를 수 있어요.)


1. 개에 물리면 개의 종류와 이름, 성별, 예방접종 여부, 그리고 견주 이름, 주소, 전화번호를 알아둡니다.

상처가 심할 경우 응급실만 가도 위 정보를 묻습니다. 간호사에게 개 물림 사고를 신고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치료 후 Public Health 및 Animal control에 신고할 경우에도 필요한 정보입니다.


2. 즉시 상처를 씻고 응급실로 가서 파상풍 주사를 맞으세요. 저를 치료했던 의사 말로는 상처가 크건 작건, 물린 개가 예방접종을 했건 안 했건, 일단 개에게 물리면 무조건 파상풍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하네요.


3. 상처 부위를 사진을 찍어두세요. 피를 흘렸는지 그렇지 않았는지의 여부가 개 주인에게 청구될 벌금의 경중을 결정하게 됩니다.


4. 신고를 한다면 구글에서 각 지역 Animal control를 찾아 신고하세요. 신고에는 두 가지 절차가 있는데 하나는 개가 사람을 문 기록만 남겨두는 것(나중에 또 사람을 물게 됐을 때를 대비), 다른 하나는 조사를 받고 처벌을 받게 하는 방식입니다.(일정기간 동안 격리, 입마개, 벌금 등)


5. 경미하게 물렸어도 신고하세요. 얼마나 자주, 얼마나 세게 사람을 물었는지 그 기록에 따라 처벌이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에서는 개가 사람을 여러 번 공격하면 Animal centre에서 데려가거나 안락사를 시킨다고 흔히 알고 있는데요, 잘못된 정보였습니다. 경찰이라도 개를 데려갈 수 있는 권리는 없다고 하네요. 피해가 심해서 금전적인 보상을 받으려면 개인적으로 고소를 진행해야 하고요. 자주 사람을 공격할수록 벌금이 많아질 뿐이랍니다. 그러니 나는 별 상처가 없더라도 공공의 질서를 위해 신고를 해서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야 견주도 더 조심할 테고 그 개가 다른 사람을 또 무는 일이 발생했을 때 적절한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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