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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May 24. 2021

Do you know 몽고반점? 때린 거 아니에요.

"아이고, 얘도 몽고반점이 팔에 있네. 애기 엄마도 조심해야겠어."


아주머니는 캐나다에 이민 오자마자 아동학대로 신고를 당했다고 했다. 아들이 민소매 옷을 입고 학교에 간 것이 화근이었다. 어깨에 있던 몽고반점이 멍이라고 생각한 캐네디언 교사는 아이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아이는 가끔 엄마에게 맞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부모에게 맞는 일이 흔했다. 아이가 잘못하면 부모가 회초리를 들던 시대였다.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팔이나 어깨처럼 눈에 띄는 곳에 있는 몽고반점은 조심스럽다. 딸에게 수영복 대신 래시가드만 입힌다는 지인이 있었다. 등에 멍처럼 넓게 퍼져있는 몽고반점 때문이라 했다. 괜한 오해로 일이 복잡해질 수 있다는 걱정이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나 역시 캐나다에서라면 아동학대 정황을 의심하는 액션이 시작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등에 있는 멍자국만으로도 말이다.


캐네디언들이 오지랖이 넓은 걸까? 아니면 아동학대에 대한 감수성이 민감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사회의 후속조치에 대한 믿음이 있는 걸까?


정인이 양모는 무기징역을, 양부는 5년을 구형받았다. 그리고 둘 다 항소를 했단다. 나는 사람들이 그들의 신상을 털고 욕을 퍼붓는 것이 불편했다. 그런 것으로 그들이 조금이라도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나 역시 찢어 죽여도 모자랄 것 같은 분노가 있다. 가엾게 죽어간 아이를 향한 애도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입이 아니라 법이 심판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심판 결과를 듣고 우리 속이 다 시원하도록. 개인의 정직한 믿음에 근거한 합리적인 의심만으로도 주저 없이 신고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도록.


신고의 의무를 가진 사람이 신고만 하면 그 뒤는 사회에서 확실하게 책임져 줄 거라는 믿음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개인이 어떤 아이의 불행 앞에 어디까지 행동할 수 있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가 되었으면 한다. 가여운 아이의 죽음 앞에 개인이 아니라 나라가, 법이, 사회가 움직여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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