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악성’ 곱슬은 없다.
한국 포털사이트에 곱슬머리를 검색하면 어떤 사진들이 나올까? 대부분이 미용실 비포 앤 애프터 사진이다. 부스스했던 곱슬머리가 이름마저 신비한 매직 스트레이트 펌으로 마법처럼 매끈해졌다. 대신 시술 전 곱슬머리에는 꽤 처량한 수식어가 붙었다. 역대급 곱슬머리, 답 없는 곱슬머리, 악성 곱슬까지.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학창 시절에 배운 영어 단어를 떠올려보자. 곱슬머리를 영어로 하면?
Curly hair.
그렇다. 곱슬머리는 영어로 컬리 헤어다. 그렇다면 영어권 포털 사이트에 곱슬머리 즉, Curly hair를 검색해보자. 똑같이 곱슬머리를 검색했지만, 아래 사진처럼 아주 다른 검색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곱슬머리가 영어로 컬리 헤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사진 속 여자 같은 '컬리한' 헤어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너 컬 잘 나왔다!" 혹은 "너 컬이 참 예쁘다."라는 말은 파마한 사람에게 하는 말이지, 곱슬머리에게 하는 말은 아니다.
포털 사이트 검색 결과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우리에게 곱슬머리는 고쳐져야 한다는 편견이 있다. 우리의 개념 속 곱슬머리는 그저 빨리 미용실로 달려가야 할 시술 전 머리일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곱슬머리는 더 이상 영어로 컬리(Curly) 헤어라 할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곱슬머리는 컬리 헤어가 아니라 ‘프리지 헤어(Frizzy hair)’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곱슬머리를 프리지 헤어로 오해하며 살아온 것이다.
프리즈(Frizz)
프리즈(frizz)는 모발을 부드럽거나 매끈하지 않게 만드는 모든 타입의 헤어 문제를 의미한다. 워낙 포괄적인 개념이라 한국어로 번역할 만한 단어를 찾기 쉽지 않다. 한글 단어 중 '머리에서 몇 올 빠져나온 짧고 가는 머리카락'이라는 뜻의 '잔머리'라는 단어도 충분치 않다. 이것은 컬을 부스스하게 만들거나, 컬 패턴을 무너지게 만드는 컬리 헤어의 프리즈(아래 사진)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여러 번역 어플에서도 frizz를 곱슬머리라고 번역하는데, 이것 역시 맞지 않다. 왜냐하면 유전적 요인을 갖는 곱슬머리와 달리, 프리즈는 열 손상, 습한 날씨, 수분 및 단백질 부족 등 외부적 요인에 의해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프리즈는 곱슬머리에 더 잘 나타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직모라고 해서 프리즈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영 사전에서 찾아보면 프리즈 헤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머리에서 삐죽 튀어나와 차분히 정돈되지 않는 머리카락', 두 번째는 '주변 머리카락에 뭉쳐지지 않아 머리를 부스스해 보이게 하는 머리카락'. 첫 번째 프리즈는 직모에게, 두 번째 프리즈는 곱슬머리에게 자주 나타난다.
*프리즈의 여러 가지 유형*
결국 프리즈는 곱슬머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생머리에게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곱슬머리=프리즈한 머리(Frizzy hair)라는 고정관념이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곱슬머리들은 프리즈를 없애려고 고데기에, 드라이에, 빗질도 열심히 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곱슬머리를 더욱 프리즈 하게 만드는 원인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곱슬머리는 역시 안 돼.' 하며 좌절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그런 고정관념 때문에 프리즈 없이 깔끔하고 예쁜 컬리 헤어는 다 펌이나 스타일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알게 된 지 4년이 넘어서야 캐네디언 친구의 파마머리가 천연 곱슬머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상 깔끔하고 예쁜 컬을 가졌길래 당연히 파마를 했거나, 아침마다 스타일링한 머리겠거니 했는데 본인이 원래 컬리 헤어라는 것이다
"넌 얼마나 자주 미용실에 가? 컬이 너랑 진짜 잘 어울려."
"아~ 이거 미용실 간 거 아니고, 원래 내 머리야."
"진짜야? 너무 예쁘다!! 나도 컬리 헤어인데 왜 이런 컬이 안 나올까? 부럽다."
"??? 네가 컬리 헤어라고?"
"아, 난 고데기로 편 거야 겉 머리만 고데기로 펴서 묶고 다녀."
"???... 왜?"
우리의 대화 속에서 컬리 헤어에 대한 개념이 부딪히고 있었다. 친구에게 컬리 헤어는 교정되어야 하는 문젯거리가 아니었다. 문제는 곱슬머리가 아니라 프리즈였던 것이다. 결국 프리즈 없이 관리만 잘하면 우리의 곱슬머리도 캐네디언 친구처럼, 또 맨 위 사진의 여자처럼 예쁘고 깔끔한 컬리 헤어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날 밤 나는 '진짜 곱슬머리'가 되기로 결심하고 빅찹(Big chop) 했다. 빅찹이란 100% 자연산인 머리카락만 남겨두고 화학적 시술(매직, 펌, 염색)을 했던 부분을 모두 잘라내는 것을 말한다. 화학적으로 처리된 모발이 남아있으면 원래 가지고 있던 컬이 나타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껏 있는지도 모르게 감춰져 있던 보물을 발굴하는 마음으로 가슴까지 오는 긴 머리를 숭덩 잘라냈다.
이제 머리카락은 말랑말랑한 반죽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그것을 어떻게 만져주냐에 따라 탱글탱글 예쁘게 말린 소라빵을 만들어 낼 것이다. 삼십 년 넘게 프리지 헤어로 오해했던 나의 진짜 컬리 헤어! 나는 곱슬머리 2A부터 4C 중 어떤 타입의 곱슬머리였을지, 또 어떤 모양의 컬을 만들어낼지 설레었다.
참고 및 사진 출처
salon worthy hair의 what is frizziness
*2A부터 4C까지 10가지도 넘는다는 곱슬머리 타입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글로!
https://brunch.co.kr/@ilae9213/128
*프리즈 헤어로 오해받아 온 곱슬머리 유전자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 글로!
https://brunch.co.kr/@ilae9213/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