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사랑 Sep 28. 2021

Who cares? (무슨 상관이야?)

우물 안 곱슬머리, 캐나다에 가다.

캐나다에 살면서 꼭 고쳐야 할 나쁜 습관이 하나 생겼다. 외국인 앞에서 앞 담화하기. 어차피 못 알아들을 한국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저 여자 문신 봐봐. 완전 대박이지."
"저 강아지 좀 봐. 진짜 말 안 듣게 생겼다. 그치?"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캐나다에 살고 있는 지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어느 날은 초등학생 아들과 길을 걷다가 지나가는 여자를 보면서 한마디 했단다.


"ㅇㅇ야, 저 여자 엉덩이 좀 봐. 진짜 너~무 크다. 저러다 비만 때문에 (어쩌고 저쩌고……).”

그러자 아들이 엄마를 한심하게 쳐다보며 한 마디 했다.



"엄마! Who cares?(무슨 상관이야!)"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라도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캐네디언의 사고방식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 또래집단의 언어와 문화에 담겨있는 생각과 태도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추구하는만큼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려는 캐네디언의 생활양식을 학습한다. 캐나다에서 초등학교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아이는 엄마의 다른 사람 외모 지적에 동참해주지 못했다.


그러게. 우리는 저 여자 엉덩이가 크든 말든, 건강을 위해 살을 빼든 말든, 왜 그렇게 상관하고 싶은 걸까?





한 때, 인류에게 곱슬머리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오래전, 대서양을 횡단하는 한 외국 항공사에서는 승객들이 착륙 전에 머리카락을 펼 수 있도록 판 고데기를 제공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곱슬머리를 다루는 외국 서적을 읽어보면 그들도 한국에서 우리가 느끼던 것과 똑같은 좌절을 겪었음을 알 수 있다. 그들도 그들 나라의 '사자'로 불렸고, 습한 날씨를 원망했으며, 취업 면접을 앞두고 머리를 펴야 했다.


그러나 미국 특히 뉴욕에서는 워낙 다양한 민족들이 모이다 보니 다양한 곱슬머리들이 모이게 됐고, '곱슬머리가 뭐 어때서!'라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처럼 세계 각 국의 이민자들이 모여 나라를 구성하는 캐나다도 아마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민국가로서의 캐나다는 좀 더 독특한 특성을 가진다. 미국이 USA라는 이름 아래 이민자들을 하나로 녹아들게 하는 용광로 사회라면, 캐나다는 모자이크 사회다.  모자이크처럼 여러 개의 색종이가 붙어 한 나라를 만든다. 그래서 캐나다는 색종이가 가진 원래 색을 잃지 않기를 원한다. 학교에서도 한국에서 유학 온 학생들에게 굳이 영어 이름을 짓지 말고 한글 이름을 고수하라고 권면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양한 색깔의 색종이가 모여 크게는 국가 하나를 만들지만, 작게는 색종이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저마다의 빛깔을 가지는 것이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토버모리



반면에 한국은 트렌디한 사회다. 트렌디하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세련되고 근사하기는 해도, 모두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유행에 따라 사람들이 입고 있는 바지 통이 다 같이 좁아졌다 넓어졌다 한다. 다 같이 와이드 팬츠를 입을 때 나만 발목까지 쫙 달라붙은 컬러 스키니진을 입는다면 아무리 내 취향껏 입었더라도 촌스러운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런 한국 사회에서 곱슬머리는 트렌드를 벗어나 있다. 한국에서 곱슬머리 관리법이란 곱슬을 아름다운 곱슬이게 하는 방법이 아니라, 생머리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갓 모낭을 뚫고 나온 건강하고 신선한 곱슬머리도 용납치 못하고 뿌리 매직이라는 이름으로 납작하게 만들어 버린다. 곱슬은 트렌드의 물결에서 표류된 지 오래다. 촌스럽고, 그래서 관리해야 하는 문제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곱슬머리 전문가 Lorrine Massey는 말했다. 곱슬머리는 트렌드가 아니라 삶이라고. 동의한다. 왜냐하면 머리카락을 팔 수 있다면 돈 꽤나 벌었을 것 같은 숱 부자인 내가 이 두껍고 강력한 곱슬머리를 편평하게 만들기 위해 시간, 돈, 감정 등 삶의 많은 부분을 낭비해 왔기 때문이다.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본 무지개



나는 캐나다에서 매직 스트레이트 펌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트렌드가 만들어 놓은 이미지에 나를 맞추며 휩쓸려가기보다, 파도 위를 거칠게 항해하는 곱슬머리가 되고 싶어졌다. 내 삶이 전보다 훨씬 단순하고 즐거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일곱 가지 색깔이 너는 왜 그런 색을 가졌냐고 참견도 않고 모여 사는 이 무지개 같은 사회에서 나의 오리지널 곱슬머리로 무지개의 한 가지 색깔이 되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태어날 때부터 손에 쥐고 태어나 삼십 년을 미워했던 이 곱슬머리가 정말 나 스스로에게도 'Who cares?'가 될 수 있는지 시험해보기로 했다.



이전 06화 예쁘기만 한 것은 부끄럽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