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곱슬머리, 캐나다에 가다
한국인이지만 외국에서 나고 자란 교포들은 때로 자신의 정체성이 불완전하다고 느낀다. 캐나다에 사는 한국인 2세들도 생김새는 한국인이지만 말하고 생각하는 방식은 캐네디언이라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런 그들이 한국에 여행을 다녀와서 하나같이 말하는 것은, 살아보면 어떨지는 몰라도 일단 첫눈에 동질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회를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나만 다르지 않은 곳, 나만 튀지 않는 곳에서 소속감을 느끼고 그것이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주나 보다.
반대로 동양인인 내가 7년 전에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 첫눈에 모든 것이 그들과 달랐지만 딱 한 가지,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있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평생의 짐이었고 숙제였던 것이 이곳에서는 너무나 흔하고 당연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곱슬머리다.
곱슬머리 영역에서만큼은 내가 자리를 잘 찾아온 느낌이었다. 이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인 것만 같았다. 한국 길거리에서는 보지 못했던(곱슬머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스타일링으로 감추고 다니기 때문에) 수많은 곱슬머리들이 길거리를 누빈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곱슬머리가 있다니!
Curly Girl:The Handbook의 저자 Lorraine Massey도 스스로를 미워하던 곱슬머리였다. 영국에서 태어나 홍콩을 거쳐 일본에 살면서 직모는 예쁘고 곱슬은 못생겼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다 뉴욕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그녀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뉴욕 시티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내 인생 처음으로 멀티-컬Curl-쳐럴한(다양한 곱슬머리)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내 주변에 살고 있는 유대인, 이탈리아인, 라틴계,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나와 똑같은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아웃사이더처럼 보이지도, 느끼지도 않았다.
(I moved to Newyork city, where, for the first time in the life of my curls, I was surrounded by multi-curl-tural people. Jewish, Italian, Latino, and African American people living around me had curly hair that looked like mine! I no longer looked or felt like an outsider.)
나 역시 그랬다. 한글을 막 배운 아이처럼 신세계가 열렸다. 거리에서 만난 모든 곱슬머리 타입을 읽어 내려야 직성이 풀렸다. 거리를 걷는 모든 사람이 학습자료였다. 그게 어찌나 재미있던지, 나만 볼 수 있는 마술 안경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평생 스트레스였던 곱슬머리가 내 삶을 이렇게 즐겁게 만들 줄이야. 아는 게 힘이라더니, 정말로 곱슬머리를 안다는 것이 어제와 똑같은 오늘의 일상도 새롭고 다채롭게 만들어주었다.
'저 학생은 Wavy에 2C정도?'
'저 사람은 100% 천연 곱슬머리네. 스크런치-스퀴지하고 나면 Curly 3B는 되겠는데?'
'흑인만 Coily가 있는 건 아니구나. Coily도 예쁘다.'
2A부터 4C까지 다양한 곱슬의 세계를 내 눈으로 직접 관찰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그들의 컬은 10가지 헤어 타입 중 정확히 하나를 고를 수 없을 만큼 다양했다. 마치 얼굴처럼 모두 다른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나 모두 다르게 생긴 사회에서 도대체 누가 미인이 될 수 있을까?
어떤 머리 모양을 가져야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스파이더맨의 여자 친구, 천연 곱슬머리 젠다야가 생머리(아마도)인 전지현보다 덜 아름답다고 할 수 없다. 3C~4A로 강한 컬을 가진 비욘세가 2B~2C의 웨이비한 컬을 가진 테일러 스위프트에 비해 미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다. 저기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곱슬머리라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도 틀렸다. 아래 사진 속 내 딸과 친구들이 직모라서 예쁘고 곱슬머리라 안 예쁘다고 말할 수도 절대 없다.
결국 곱슬머리에 대한 좌절은 내가 자라온 한국 사회가 가진 미의 기준 때문이었다. 모두가 다르게 생긴 사회에 살다 보니 결국 내가 누구인지가 가장 중요해진다. 10가지도 넘는 컬이 존재하는 곳에서 머리카락이 얼마나 구부러졌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머리 모양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했다. 나의 태도에 집중했고 나의 생각에 호감을 가졌다. 더 이상 생머리는 축복받았고, 곱슬머리는 잘못 긁은 복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은 세계 모든 나라를 통틀어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가지고 있어야만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를테면 자기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을 받아들인 만큼 타인도 껴안을 줄 아는 사람.
미인은 누구일까?
여전히 긴 생머리는 여신이고, 곱슬머리는 폭탄인가?
머리카락도, 겨드랑이 털도 영어로는 다 똑같은 헤어(Hair), 털일 뿐이다. 고작 털의 모양으로 아름다움을 결정짓는 것은 너무 편협한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