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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Sep 21. 2021

삼각김밥머리 DNA

젊은 곱슬머리의 슬픔

대한민국 곱슬머리들에게 흑역사는 언제이고, 또 곱슬머리들의 로망은 무엇일까?


나에게 흑역사의 시작은 귀 밑 3센티 단발머리를 해야 했던 중학교 1학년부터였다. 곱슬머리에게 단발령은 가혹한 처사였다. 아침에 아무리 물을 묻혀도 교문에 들어설 때쯤이면 삼각김밥을 면치 못했다. 눈치도 없이 두피에서부터 꼬부라져 나오는 머리카락이 싫어 두꺼운 머리띠를 하고 다녔다.


다행히 일 년 뒤 두발 자유화가 시행되었다. 흘러내리는 긴 생머리를 쓸어 넘기며 자유를 만끽하는 직모 군단이 있었다. 특히 모델이라 불리던 친구의 트레이드 마크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였다. 그 친구는 아침마다 머리카락을 말리지 않고 학교에 왔다. 교실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 바람이 풀어헤친 머리카락을 들출 때마다 샴푸 향이 났다. 물기가 마르면 마를수록 머리카락에 윤기가 흘렀다. 다 마른 머리카락을 목 뒤로 쓸어 넘기면 촤르르르르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우리들의 로망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아침에 머리를 감고 다 마르지 않은 머리를 푼 채로 현관문을 나서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어김없다. 머지않아 발효된 빵처럼 부풀어 올라, 단발이라면 삼각김밥, 장발이라면 해그리드나 사자처럼 유쾌하지 않은 비유가 날아와 가슴에 꽂힐 것이다.


두발은 자유화가 되었는데 곱슬머리에겐 여전히 해방이 없다. 자석의 같은 극처럼 풀어놓기만 하면 서로 밀어내며 제멋대로 흩어지는 머리카락을 한데 모아 꽁꽁 묶어버렸다.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잔머리들은 네다섯 개의 똑딱 머리핀으로 제압했다. 나비를 본 개처럼 자꾸만 제 멋대로 설쳐대는 두발에 자유라고는 1도 없도록 목줄을 바짝 잡아당겼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 맞다. 성인이 되어서도 굳이 또 단발머리를 했고 삼각김밥을 보고야 만다.




중학교 생물시간에 배운 멘델 아저씨의 법칙을 떠올려 보자. 이 삼각김밥 DNA는 세대를 거듭한다. 세상 모든 곱슬머리는 무슨 수를 써보지도 못하고 태어날 때부터 삼각김밥이 될 운명이었다. 곱슬머리가 엄마, 아빠로부터 받은 유전자 조합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유전자가 물감 같아서 직모와 곱슬이 만나 결혼을 하면 반곱슬이 나오고, 그 반곱슬이 다시 직모와 만나 반의 반곱슬, 또 반의 반의 반곱슬이 나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우리가 사는 세대쯤에는 곱슬 유전자는 멸종되었을지도 모를 테니까. 그러나 유전자는 입자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보색의 유전자가 만나 중간색 유전자가 나오는 일은 없다. 섞이고 중화되는 것이 아니라 둘 중 하나를 택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얄궂게도 이 양자택일의 결정적인 순간에 하필이면 곱슬머리가 '우성'형질을 가진다. 여기서 우성은 우월하다는 뜻이 아니다. 대립 유전자인 직모에 비해 더 잘 드러나는 특성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삼각김밥 DNA는 어쩔 수 없이 대대손손 유전되어 왔다. 엄마, 아빠가 곱슬이었고, 그래서 우리 남매가 곱슬이며, 내 자식들 역시 곱슬일 확률이 높다.




결국 곱슬머리는 유전자 추첨에서 꽝에 걸린 재수 없는 사람일까?
직모 수저를 물고 태어난 것들에 대한 부러움, 때로는 열등감으로 대대손손 살아야 하는 걸까?





아니다!

왜냐하면 건조하고 부스스한 삼각김밥 머리는 단지 곱슬머리 유전자를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발의 공극성(Porosity)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모발의 공극성이란 머리카락 가장 바깥에 있는 큐티클층이 열려있는 정도를 의미하는 용어다. 이 큐티클층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곱슬머리도 부드럽고 윤기 나는 모발을 가질 수 있다.


모발 섬유의 단면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작은 비늘이 지붕의 타일처럼 머리카락의 피질을 덮고 있다. 이렇게 서로 겹쳐져있는 작은 비닐을 큐티클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머리카락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큐티클층이 평평하게 누워 닫혀있으면 빛을 반사하여 머리카락을 빛나게 한다. 하지만 큐티클층이 열려있으면 빛을 반사할 매끄러운 표면이 없어 윤기가 나지 않는다. 또 모발 가닥가닥의 튀어나온 큐티클 조각들이 벨크로처럼 서로 달라붙어 머리카락이 꼬이거나 엉키게 된다.


모발 섬유의 단면은 마치 지붕의 타일처럼 큐티클 층이 머리카락의 피질을 덮고 있다.



모발의 건조함 역시 큐티클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것은 솔방울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프랑스 파리의 과학자 4인이 쓴 '이토록 아름다운 물리학이라니'라는 책을 보면 솔방울이 열리고 닫히는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솔방울) 비늘의 한 면은 수분을 흡수하여 팽창하는 목재로 이뤄져 있다. 팽창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물분자는 식물세포의 벽에 있는 셀룰로스 소섬유에 붙는다. 그렇게 되면 소섬유들 사이의 거리가 약간 멀어지는데, 이는 큰 규모에서 보면 목재가 10% 정도 부푼 것처럼 보인다. 물 분자가 셀룰로스에 붙는 것은 가역적인 현상이다. 건조한 환경이 되면, 목재가 수축하여 팽창하기 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솔방울 소섬유에 물분자가 달라붙듯, 주 성분이 케라틴인 모발에도 물분자가 달라붙어 팽창한다. 특히 공극성이 높은, 즉 큐티클이 많이 열려있는 모발은 공기 중의 수분을 더욱 쉽게 빨아들이고 팽창하여 머리카락을 부풀어 오르게 만든다. 게다가 수분을 머금지 못하고 빠르게 증발하기 때문에 모발에 필요한 수분을 유지하는 것도 어렵다. 그래서 부풀어 오른 머리가 쉽게 건조해져 삼각김밥 머리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큐티클층이 열려있으면(좌) 모발이 건조하고 부스스하지만, 큐티클층이 닫혀있으면(우) 모바리 촉촉하고 부드럽다.



따라서 큐티클층이 활짝 열려있는 모발은 흡수한 수분을 가둬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머리를 감은 후에 수분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리브 인 컨디셔너(Leave-in conditioner 헹궈내지 않는 컨디셔너) 제품을 바르고 그 후에는 헤어 오일로 막을 만들어 수분 증발을 막아 주어야 한다. 이것만 지켜도 삼각김밥처럼 부풀어 오르고 푸석푸석 건조했던 머릿결이 한결 차분해지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발에 닿는 열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찬물로 머리를 헹궈서 수분 증발을 최소화하고 헤어 드라이기나 고데기 사용을 줄어야 한다. 빗질도 모발 손상을 유발하여 큐티클층을 거칠게 만들 수 있다. 미국의 곱슬머리 전문가 Ouidad에 따르면 자연건조(Air dry)가 최선이다. 삼각김밥 머리가 될까 봐 헤어 드라이기로 재빨리 머리카락을 말리고 빗질해서 묶고 나갔던 것이 오히려 머리를 더욱 부풀어 오르게 하고 건조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리브 인 컨디셔너와 오일을 바르고 자연 건조한 나의 천연 곱슬머리. 삼각김밥은 이제 안녕이다.



쥐의 꼬리를 잘라낸다고 자손 세대의 꼬리가 짧아지지 않는다. 획득한 형질은 유전되지 않기 때문이다. 뜨거운 열을 가하고 두피가 따끔거리도록 약을 발라 머리카락을 반듯하게 펴 놓아도, 두피에서는 다시 변함없이, 끝도 없이, 꼬부랑 머리가 자라 나온다. 별 모양 구멍에서는 별 정성을 다 쏟아도 별 모양 치약이 나온다. 모낭을 통과할 때부터 이미 꼬부랑하며 나오는 머리카락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곱슬머리도 살 길이 있어야 한다. 평생 미용실에서 두피와 모발 손상을 대가로 아름다움을 얻어야 한다면 이건 너무 불공평한 유전자의 장난질이다. 예전에는 무쌍도 유전자 추첨 꽝 취급을 당했다. 태어난 아기에게 쌍꺼풀이 있으면 수술 안 해도 되니 돈 벌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TV에도 무쌍 배우가 나온다. 무쌍 배우도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곱슬머리도 하나의 취향으로서 사랑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곱슬머리 전문가 Ouidad는 이렇게 말했다. "LET CURLS, BE CURLS!" 직모냐, 곱슬이냐는 '혓바닥이 말리냐, 안 말리냐' 같은 유전자 조합과 배열의 문제일 뿐이다. 꽝도 아니고, 당첨도 아니다. 수저 수저 하며 부의 대물림에 좌절하는 젊은이들에게 고작 피부 구멍에서 나오는 털의 대물림까지 그 좌절의 시선을 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곱슬 관리법을 제대로 알고, 곱슬을 곱슬이도록 내버려 두면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다. 사랑받아 마땅할 만큼!




참고

Curly girl:The Handbook by Lorraine Mass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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