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악성’ 곱슬은 없다.
*빅찹이 무엇인지 궁금하신 분은 이 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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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감하게 빅찹을 저지른 후, 매직이나 펌 없이 천연 곱슬머리를 기르며 Rorraine Massey의 책을 정독했다. 그녀는 CGM(Curly Girl Method)이라 불리는 곱슬머리 관리법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다. 그녀의 책 외에도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에서는 곱슬머리를 위한 자료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몰랐던 사실이지만, 우리 동네만 해도 곱슬머리 전용 미용실이 몇 군데나 있었다.
캐나다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CGM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듯하다. 그래서 상당히 많은 정보가 쌓여있기는 했지만 한국 사람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한국 상황에 맞게, 한국인인 내 방식대로, 곱슬머리 관리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CGM은 자신의 컬 타입을 아는 것부터 시작이다. 곱슬이 가진 컬 타입에 따라 유형이 나뉘고, 유형별로 머리를 감고, 말리고, 스타일링하는 방법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곱슬머리가 컬을 만들기도 전에 미용실로 달려가 호떡처럼 납작하게 눌러왔던 사람들은 컬 타입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천연 상태의 곱슬머리를 어느 정도 기르는 기간이 필요하다. 나 역시 가슴까지 오던 머리를 단발로 싹둑 잘라버린 빅찹(Big chop)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던 파마머리를 야금야금 스몰찹(Small chop)하며 천연 곱슬머리의 비중을 늘려갔다.
천연 곱슬머리가 어느 정도 자라났을 즘에는 드디어 CGM을 실천에 옮겨보기로 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의심이 있었다. 아직 컬 타입도 모르는데 무작정 제품을 사들였다가 낭패만 볼까 봐 걱정됐다. 그래서 필요한 모든 제품을 갖추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기로 했다. 어떠한 제품도 없이 손가락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것! 바로 스크런치-스퀴지(Scrunch-Squeeze)다.
평소처럼 머리를 감되, 아래 사진처럼 그저 트리트먼트를 하면서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구겨주고(스크런치), 몇 번 더 쥐어주었다(스퀴지). 머리를 말릴 때도 똑같이 했다. 사실 이것은 CGM에 두 발 완전히 담그기 전에, 이게 정말 되는 일인지 알아보는 일종의 테스트였다. 그때는 그것이 내 곱슬머리 인생을 이렇게 완전히 바꿔놓을 줄은 몰랐다.
대박. 이게 된다고?
설페이트-프리 샴푸도, 식물성 트리트먼트도, 컬크림도, 정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는데, 스크런치-스퀴지만으로 정말 컬이 나왔다. 감고 나온 머리카락이 S자를 그렸다. 머리만 감았다 하면 드라이어기와 고데기로 차분하게 만드느라 고생이었던 내 머리카락에서 처음으로 컬을 발견한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진 컬은 처음에 발견했던 S자 컬보다 훨씬 빠글빠글하다. 정리해두었던 CGM에 따라 제대로 관리하기 시작하자 큰 S자에서 점점 나선형으로 말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거의 코르크 마개 따개만큼 팽팽해지고 있다.
‘이게 내 컬이구나!’ 하던 순간을 여전히 잊을 수 없다. 그 짜릿함이란! 삼십 년을 모르고 묻어만 뒀던 컬이 신기해서 연신 거울로 비춰보았다. 거울로 보고, 사진으로 찍어서 보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자랑하면서 한 번 더 봤다. 이거 보라고, 나도 진짜 '컬리한' 헤어라고!
이렇게 좋은 걸 왜 한국에서는 펴고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지 못해 안달을 냈을까? ‘악성’이라며 곱슬을 원망하며 살아온 지난 세월이 아쉬울 뿐이다. 이제 내 곱슬머리는 더 이상 악성이 아니다. 컬리 헤어, 진짜 곱슬머리로서의 삶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