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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Oct 07. 2021

곱슬머리 커밍아웃, 짜릿한 탈피

세상에 '악성' 곱슬은 없다.

 *곱슬머리 관리법, CGM(Curly Girl Method)이 궁금하신 분은 이 글부터!

https://brunch.co.kr/@ilae9213/149#



CGM 이후, 일상에 몇 가지 기분 좋은 변화가 생겼다. 첫 번째는 머리카락 청소를 덜 해도 된다는 것. 곱슬머리는 마른 머리를 빗질하지 않고, 드라이어기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머리카락 떨어질 일이 없다. 어제는 감은 머리를 스타일링하고 청소를 하려고 쪼그려 앉았는데 돌돌이에 묻어 나온 머리카락이 딱 두 가닥이었다. 세상에! 쾌재를 불렀다. 전에는 머리만 말리고 나면 방바닥에서 고양이 털 뭉치를 만들듯이 머리카락을 주웠는데 말이다.


빠지면서도 컬을 만들어 낸 예쁜 내 곱슬머리, 칭찬해!



두 번째 변화는 시간의 단축이다. 전에는 머리 감는 것이 두려웠다. 곱슬머리는 머리를 감고 나면 이후의 여정이 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머리를 말리느라 팔이 떨어져 나가도록 드라이어기를 들고 있을 필요가 없다. 겨우 다 마른 머리를 붙잡고 고데기를 할 필요도 없다. 머리를 감고 리브 인 컨디셔너, 오일, 컬크림을 바르고 손가락으로 스크런치-스퀴지면 끝! 외출 준비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삶의 질을 얼마나 향상해주는 일인지 몸소 느끼고 있다.


머리를 감는 횟수 자체도 줄었다. 곱슬머리는 대부분 생머리에 비해 머리카락이 덜 기름지다. 모발이 곧은 생머리와 달리 나선형으로 굴곡져 있기 때문에 두피에서 나오는 머리 기름이 머리카락 끝부분까지 잘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곱슬머리는 매일 머리를 감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머리 기름이 과다하게 씻겨나가 모발이 더욱 건조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스타일링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머리를 감지 않은 날에도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곱슬머리만의 특별한 방법이 있다. 분무기에 물을 넣고 머리카락을 물로 적시기만 하면 전 날 만들어두었던 컬이 다시 되살아난다. 팔이 떨어져라 고데기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건 정말 꿀이다, 꿀! 물만 주면 주렁주렁 컬을 만들어내는 곱슬머리가 대견할 지경이다.


나의 천연 곱슬머리 :)



물론 누군가는 물 하나로 부활시킨 초간단 컬이 ‘별로’라 할지도 모르겠다. 셀프 헤어 스타일링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아침마다 정성 들여 세팅한 머리보다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점점 일상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것이 피로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이 찰나가 아니라 그렇다. 지구에 사는 모든 인류에게 매일 24시간씩 꼬박꼬박 주어지고 있고, 할 일이 많다고 해서 그 시간을 멈춰둘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나.


나는 그 거부할 수 없는 시간을 조금 더 가뿐하게 살아내고 싶었다. 꿀맛 같은 아침잠을 더 자고 싶다. 바쁜 아침, 내 외출 준비 때문에 가족들에게 짜증 내고 싶지 않다. 시간이 없어 아침밥을 입에 밀어 넣듯 먹고, 전쟁터가 된 집을 현관문으로 냅다 덮어놓듯 닫아두고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을 아껴 일상에 쉼표를 만들고, 그때 고른 숨으로 다른 가치 있는 것에 힘주며 살고 싶다. 드라이어기와 고데기만 치워도 삶이 훨씬 단순해진다. 곱슬머리가 곱슬머리로 사는 것이 편리한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그래서 가끔 머리카락이 내가 원하는 모양으로 따라와 주지 않는 날이 있더라도 받아들인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런 머리카락도 오롯이 내 것이라서 끌어 안고나니 사랑스럽다.



Hair has often been associated with different chapters in my life.
-Ariana Grande
머리카락은 종종 내 인생의 다른 장(chapter)과 관련이 있다.
-아리아나 그란데



출처: Instagram/@arianagrande



천연 곱슬머리를 가진 연예인 중에 아리아나 그란데라는 팝 가수가 있다. 가수로서의 시그니처는 쭉 뻗은 하이 포니테일이지만 그녀는 원래 곱슬머리다. 아리아나에게 곱슬머리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이다. 그녀는 곱슬머리가 원래 자신이 누구인지 상기시켜준다고 했다. 포니테일이 가수 아리아나의 상징이라면, 곱슬머리는 인간 아리아나의 정체성인 것이다.

 

그녀의 곱슬머리를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사람은 그녀의 남자 친구(현 남편)다. 그는 연애할 때 아리아나의 곱슬머리를 볼 때마다 반가워하고 사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아마 그때 아리아나는 더할 나위 없는 안정감과 행복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포니테일을 내리고 진짜 나의 모습을 보여주어도 괜찮다는 믿음이 그녀를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게 했을 것이다.



불과 일 년 전 나의 곱슬머리와 지금 나.



우리의 곱슬머리는 진짜 나와 맞닿아있다. 진짜 나를 세상에 꺼내어 놓는다는 것은 어떤 모양 안에 나를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는 해방감을 주었다. 한 때는 창피해서 절대로 남에게 보여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것을 바깥으로 끄집어 놓으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숨겨만 두었던 진짜 나를 만났고 끌어안아 밖으로 나아갈 수 있게 했다.


가끔 오랜만에 만난 외국인 친구들이 "I like your (curly) hair!" 하면 가슴이 벅차다. 숨기지 않은 진짜 내 모습도 꽤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렇다. 또 가끔 한국인 친구들이 "파마했어?"라고 물어보면 가슴이 두근두근 설렌다. 우리가 미워하던 곱슬머리가 사실은 얼마나 좋은 유전자였는지 말해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다.


이제 나는 꽁꽁 숨어있던 곱슬머리에서 탈피했다. 완전히 벗어났다. 번데기로 돌아가고 싶은 나비가 있을까? 훨훨 나는 것이 이렇게 짜릿한데! 빅찹(Bigchop) 후 곱슬머리를 기르는 동안, 나만 알 수 있는 작은 변화들을 눈으로 기록하며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연애 전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가 가장 간질간질하듯이, 나도 몰랐던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 내적 흥분을 일으켰다. 이것이야말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봐주는 사람 없이 혼자 하는 탐험이라 고요한 듯 보여도, 마음속으로는 뻥 뻥 폭죽이 터지는 중이다. 곱슬머리가 이렇게나 나를 행복하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참고

Popsugar.com의 아리아나 그란데 'My hair' 노래 인터뷰




*빅찹이 궁금하다면 아래 글로!

https://brunch.co.kr/@ilae921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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