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사랑 Aug 26. 2021

층간소음 어나더 레벨, 캐나다의 층간 냄새

5년을 살던 집이 있었다. 5년을 사는 동안 지하에 세입자가 3번 바뀌었다. 그중 두 번째 세입자가 '파티 피플'이었다. 할로윈이 가까워 오던 어느 날, 파티를 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자기 집에서 파티를 하는 거야 자기 마음인데 양해까지 구하러 오다니. 사람 좋은 웃음으로 그러라 했다. 그때는 캐나다 젊은이들의 파티가 그런 건지 몰랐다. 정말, 몰랐다.


말로만 듣던 우퍼 소리. 한국에서는 아파트 층간소음 보복 상품으로도 판다는데 캐나다 목조주택에서는 오죽할까. 아래층 사람들이 둠칫 둠칫 리듬에 맞춰 우리 집 바닥을 들어 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덩치 큰 남편이 밟기만 해도 삐그덕거리던 우리 집 나무 바닥이 무너지는 상상을 했다.

 

'곧 아랫집으로 떨어져 다 함께 풋쳐 핸즈업을 외치게 될 판이구나.'


응답하라 1988 덕선이네처럼 주택의 지상과 지하를 나누어 따로 월세 놓는 일이 굉장히 흔하다. 문제는 캐나다 주택의 대부분이 목조주택이라 층간소음에 아주 취약하다는 점이다.


아랫집 천장이자 우리 집 바닥이 우퍼 주먹으로 냅다 두들겨 맞는 동안 나는 한껏 예민해졌다.


‘(자고 있는) 애들 깨기만 해봐라. 당장 내려가야지.’


우퍼 소리에 맞춰 발바닥을 둠칫 거리며 잔뜩 벼르고 있는데 아랫집 사람이 올라와 문을 두드렸다. 덕분에 파티 잘하고 있다며 파티음식을 가져왔다. 우습게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기회를 벼르던 발바닥이 잠잠해졌다. 건네받은 음식을 먹다 보니 간사한 내 마음이 더욱 너그러워졌다.


‘아랫집 여자가 나쁜 사람은 아니지.’


그래, 스트레스 해소법이 나와 다른 사람일 뿐이다. 가슴 두 쪽에서 불이 발사되는, 내 생에선 상상도 해 본 적 없는 그녀의 파티룩을 보고 확신했다. 우린 서로 사는 세상이 다를 뿐이라고.


그러고 나니 살만했다. 우리 집 아이들이 그 집 천장  위를 달릴 때마다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지 않았을까? 우린 무려 3년을 함께 살았다. 서로 조금씩 피해 주고, 간간히 미안해하고, 간간히 고마워하며 생각보다 평화로운 3년을 보냈다.


휴일 동네 모임. 간간히 미안해하고, 간간히 고마워하면 평화롭다.


그러나. 세 번째로 들어온 세입자.

그 세입자 때문에 5년을 정든 사랑스러운 이웃들과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세 번째 세입자의 문제는 소리가 아니라 냄새였다.


바로 담배와 마리화나(대마).


세 번째로 이사 온 아랫집 아저씨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사람이었다. 아저씨가 집 안에서 키우고, 피우기까지 하는 대마 냄새는 매우 오묘했다. 장례식장에서 피우는 향 냄새와 비슷하지만 그것과는 뭔가 다른. 쑥 같은 풀이 슴슴하게 타는 듯한 야릇한 냄새. 지독하지도 않았다. 악취도 아니었다. 사람 기분을 아주 묘하게 만드는 그런 희미한 냄새가 하루 종일 났다. 아랫집 이불로 우리 집 전체에 덮어버린 것 같았다.


캐나다에서 마리화나는 합법이다. 집에서도 가구당 4그루씩 대마를 키울 수 있고, 피울 수 있다.


냄새는 소음과 달랐다. 산성용액에 염기성 용액을 떨어뜨리듯 소음은 때때로 또 다른 소리로 중화되기도 했다. 내 이어폰 속 음악 소리, 내가 좋아하는 한국 TV 소리, 설거지를 하는 물소리. 또 소음은 언젠가는 없어지는 것이었다. 몇 시간만 지나면 시끌벅적한 파티는 끝이 난다. 쿵쾅대던 우리 집 아이들도 아침이 되면 학교에 갔고 밤이 되면 잠을 잔다. 그러고 나면 흔적도 없이 아주 완벽하게 사라져 주는 것이 소음이다.


하지만 대마 냄새는 그렇지 않았다. 늘, 매일, 자기가 가진 최고의 농도로, 순식간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한 번 자리 잡은 냄새는 쉽게 떠나지 않았다. 냄새 하나로 내 집은 내 집이 아니게 되었다. 냄새는 내가 있는 공간을 이동시켰다. 다운타운 한복판 마리화나를 피우는 무리들의 옆자리에 나를 앉혔다. 층간소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넥스트 레벨이자 어나더 레벨이었다.




결국 우리는 그 집을 떠났다.

마리화나 냄새가 우리 집 소파에 앉아있는 내 코에까지 닿는 것은 단순한 불쾌함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2019년, 마리화나가 합법화되면서 정부의 의도와 다르게 부작용이 생길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특히 청소년 문화에 더 쉽고 깊숙하게 침투하는 건 아닐까 불안해했다. 나 역시 그랬다. 지독하지도 않은 이 묘한 냄새가 문틈 사이로, 창틈 사이로 뱀처럼 기어들어와 어느새 자리를 잡은 것처럼, 우리 아이들의 생각까지 잠식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슬프지만 아랫집 아저씨를 피해 이사   집에서도 나는 여전히 마리화나 냄새를 맡고 있다. 우리가 이사    달만에 옆집이 이사를 갔는데  집에 새로 이사  커플이 마리화나를 핀다. '층간'냄새보다훨씬 나은 '옆집'냄새라 참고 살지만, 캐나다에 사는 동안은 대마 냄새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같다.




캐나다 목조주택의 층간소음에 대한 글을 썼었는데(아래 링크) 포털사이트 Daum 뜨면서 조회수 폭발 중이에요. 겪어도 겪어도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네요.:)

https://brunch.co.kr/@ilae9213/123


매거진의 이전글 캐나다에서 층간소음을 벗어나려면 월 250이 필요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