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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Aug 27. 2021

먹는 거로 그러면 안 되는 거니까

나: 나 캐나다 층간 냄새 글 썼는데 다음(포털사이트)에 떴어! 완전 신기해.

캐나다 사는 친구: 대박! 근데 무슨 냄새? 아파트 복도 냄새?"

나: 어? 아~ 아니, 마리화나 냄새.

캐나다 사는 친구: ~ 그치. 마리화나 냄새도 장난 아니긴 하지. 요즘 우리 아파트 복도에 음식 냄새가 너무 심해서 마리화나 냄새를 까먹고 있었네.



나야말로 잊고 있었다.

캐나다 아파트 복도에서 나는 음식 냄새.



캐나다 아파트에서 살던 시절, 저녁식사시간만 되면 조화롭지 못한 냄새가 났다. 마치 카레와 청국장찌개를 섞어 피자에 싸 먹는듯한 냄새랄까. 아파트 복도에서 지구촌 대환장 파티다. 필리핀, 한국, 인도, 중국, 캐나다, 독일, 파키스탄. 각자의 현관문틈 아래로 새어 나오는 세계 각 국의 음식 냄새가 뒤섞여 정체모를 하나의 냄새를 만들어 냈다. 올림픽에서는 손에 손을 잡고 하나가 되면 그리도 뭉클한데, 냄새는 섞이면 섞일수록 아름답지가 못하다.




친구와 전화를 끊고 그날 저녁 반찬으로 멸치를 볶았다. 2층에 있던 남편이 조용히 내려와 향초를 켰다. 남편은 멸치부터 고등어까지 비린내가 나는 것은 딱 질색이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비릿한 향은 바다이자 고향이고, 엄마의 부엌이다.


한 집에서 10년 가까이 식탁을 나누는 부부 사이라도 음식에는 호불호가 갈린다. 그렇다. 음식은 주관적이다. 음식은 뚜렷한 각자의 취향을 담는다. 오죽하면 영어에서 취향이 맛 taste과 같은 단어일까. 전 국민을 정확히 반으로 나눈다는 민초파와 반민초파는 또 어떻고. 각자가 먹을 것에 진심인 민족 아닌가. 음식만큼 내 마음을 저격하면 그만인 게 없다. 다른 사람을 이해시킬 필요도 없고, 이해시킬 수도 없다.


음식은 또한 살아온 세월을 담아낸다. 세상에 나왔을 때부터 정성스럽게 불린 쌀로 이유식 먹은 짬바가 어디 가나. 나이 들수록 애가 된다는데 입맛이 딱 그렇다. 세상에 나와 엄마 젖 다음으로 먹었던 쌀의 맛을 찾아 거꾸로 시간을 달린다. 삼십 대 중반이 되니 오랫동안 밥을 안 먹으면 몸이 아프다. 혀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원한다. 내 몸이 쌀을 달라! 투쟁한다. 엄마가 해 준 쌀밥을 먹으며 젖 먹던 힘을 냈고, 눈물 젖은 쌀밥을 먹으며 다시 일어날 힘을 냈던 내 삼십 년 세월 때문이다.





완성된 멸치볶음을 저녁 식탁에 올리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음식 냄새는 층간 냄새 카테고리에 넣고 싶지 않아.’


음식 냄새를 갈등의 소재로 만들 수는 없다. 국적을 불문하고 먹는 걸로는 구박하면 안 되는 거다. 그것만큼 서러운 게 어디 있다고.


앞 집 독일 사람의 음식에도, 옆 집 인도 사람의 음식에도 나처럼 각자의 취향과 살아온 세월이 담겼을 텐데. 고단한 이민생활,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둘러앉은 저녁 식탁 위에, 온 가족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 '내 영혼의 닭고기 수프'를 올렸을 테니까.


K-푸드에 대한 자부심을 뒤로하고, 숭고한 인류애를 바탕으로 한 고차원적인 포용력을 내 코에 장착하기로 한다. 보여도 안 보이는 매직아이처럼, 후각을 초월하는 매직 콧구멍으로 타인의 음식을 이해하는 걸로. ‘쟤네는 도대체 뭘 먹는 거야?’며 서로의 현관문을 째려보는 지구촌 대환장 파티 대신, 서로의 음식에 담긴 취향과 세월을 존중하는 지구촌 대잔치를 여는 걸로!



매직 콧구멍으로도 견딜 수 없었던 냄새계의 어나더 레벨… 층간 마리화나 냄새에 대한 글은 아래 링크에서 읽어보실수 있어요:)

https://brunch.co.kr/@ilae921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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