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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Sep 01. 2020

캐나다 초등학교에서 현충일을 기념하는 법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라는 말의 의미

 캐나다의 11월 11일은 Rememberance day, 우리나라의 현충일 같은 날이다. 나라를 위해 싸운 Veterans(참전용사)들을 기억하며 많은 사람들이 가슴에 Poppy(양귀비)를 달아 감사한 마음을 표현한다.


 한국의 초등학교에서 각종 공휴일에 계기교육을 하듯이, 캐나다 초등학교에서도 리멤버런스 데이가 되기 며칠 전부터 각 학급에서 관련 동화책 읽기, 참전용사에게 편지 쓰기 등 다양한 계기교육이 이루어졌다. 그중 단연 흥미로웠던 것은 6학년 학생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였다.


출처: torontostar


 학교 Rememberance day Assembly에
참전용사 직접 초대하기!


 Assembly는 한국의 애국조회처럼 어떤 목적을 가지고 전교생이 강당에 모이는 시간이다. 말하자면 현충일 애국조회시간에 참전용사을 초대하는 프로젝트인 것 이다. 


 6학년 학생들이 학교 교직원 및 학교 재학생의 가족 중에 참전용사, 은퇴군인 그리고 현직 군인이 있는지 조사했다. 학교 근처의 이웃에게도 조사를 했다. 그러고 나서 해당 군인과 그 가족들에게 우리 학교 리멤버런스 데이 어셈블리에 귀빈으로 참석해달라고 초대장을 보냈다.


학교에 초대되어 귀빈으로 참석한 참전용사와 그 가족들

 

 귀빈을 초대했으니 어떤 이벤트를 할 것인지도 정해야 했다. 자리배치 및 안내를 비롯해서 사회, 식순, 음향, 음악, 미디어 등 행사의 모든 세부사항을 기획하고 역할을 분담했다. 6학년 담임교사의 도움을 받았지만 주로 아이들의 기획을 점검해 주고 조력하는 정도였다.


6학년 학생들이 완전히

행사의 호스트(Host. 행사를 주최한 사람)가 된 것이다.


 드디어 행사 당일, 평소 어셈블리와는 달리 굉장히 엄숙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6학년 학생들은 각자 맡은 자리에서 침착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 했다.

손님을 맞이하고 순서지를 나눠주는 학생

귀빈에게 준비한 꽃을 드리는 학생

학부모 및 귀빈 자리 안내를 맡은 학생

사회 및 프레젠테이션을 맡은 학생

마이크 및 음향을 맡은 학생

미디어를 맡은 학생 등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되면 강당 조명을 낮추기

문을 열고 닫거나 늦게 온 손님을 안내하기

 각자 다양한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해 냈다.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 프로젝트에서 각자의 몫을 다 해내는 모습이 참 기특했다.

미디어팀을 맡은 두 학생의 모습


 학생들이 준비한 행사 내용 또한 상당히 인상 깊었다. 특히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는 식전영상이었다.
귀빈의 군 복무 당시 사진을 미리 받아 슬라이드 쇼를 제작했다.

캐나다 군인뿐만 아니라 학생과 교직원 가족들 중에 각자의 나라를 위해 싸웠던 참전용사 사진도 함께 모았다.


다민족, 다인종 국가답게 베트남 전쟁, 한국전쟁 등 다양했다. 학생들에게는 이름도, 얼굴도 모를, 아빠의 할아버지 정도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영상을 통해 학생들은 나의 할아버지, 내 친구의 할아버지, 우리 선생님의 할아버지가 나라를 위해 싸웠던 군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그들이 우리와 멀리 있지 않음을, 전쟁의 상처가 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 아님을 상기시켜주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3학년 학생들의 가족 중, 자신의 나라를 위해 싸운 군인들의 군 복무 당시 모습이 식전영상으로 나오고있다.


 두 번째는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였던 프레젠테이션 시간이다. 6학년 학생 2명이 세계 1차, 2차 대전에 대해 직접 만든 발표자료를 가지고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전쟁이 일어나게 된 배경부터,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었는지, 왜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해 후배들에게 가르쳐주었다. 발표를 통해 우리가 참전용사의 무엇을, 왜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해 상기시키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물론 편지를 낭독하기도 했고, 준비한 노래와 퍼포먼스도 있었고, 귀빈을 한 명 한 명 소개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장미꽃을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이 프레젠테이션 시간이 참전용사와 그 가족에게 가장 감동적인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어린 학생들이
그들이 한 일을 기억해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후배들에게 이어가려는 마음보다
더 귀한 존경의 표현이 있을까.


세계 1차, 2차 대전에 대해 발표하고 있는 학생의 모습




 행사가 끝난 후에는 초대받은 군인들과 발표를 맡았던 6학년 학생들, 지도교사와 교장이 도서관에 모여 다 함께 티타임(tea time)을 가졌다.


학교 행사에 초대된 손님과의 티타임에
학생들이 함께 하다니!


이 모습 자체가 이 행사의 호스트가 교사가 아니라 학생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분명 학교가 6학년 학생들을 진심으로 행사의 호스트로 인정해주고 존중하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사실 학생이 외부 손님을 초대하는 행사의 호스트가 된다는 것은 위험부담(?)이 많다. 


 게다가 준비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번 리멤버런스 데이 어셈블리도 그랬다. 감동적인 행사였지만 중간중간 실수가 많았다.


 특히 프레젠테이션을 맡은 학생 중 한 명이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가장 큰 역할을 맡았는데 매끄럽게 해내지 못해서 그랬는지 티타임 내내 시무룩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군인들이 너 나할 것 없이 다가가 고맙다고, 참 좋은 시간이었다고 격려해 주셨다. 지도교사 또한 내내 낙심한 표정의 학생에게 슬퍼할 필요 없다고, 실수를 했으니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다고, 우리에게는 늘 다음 기회가 있다고 위로해주었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늘 다음 기회가 있다.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학교는 완벽해야 하는 곳이 아니다.
배우고 성장하는 곳이다.
배움과 성장 속에 실수나 실패는 필연적이다


티타임이 끝나고 지도교사와 함께 이 부분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학교에서 학생이 무언가를 할 때 아무도 완벽함을 기대하지 않아. 학생들이 스스로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배움 그 자체 아니야? 게다가 이번에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부족함과 직면했으니 걔는 책임감이라는 게 무엇인지,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배웠을 거야.


 리멤버런스 데이 어셈블리를 기획하는 시간부터 행사 당일, 그리고 티타임, 지도교사와의 대화까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한국의 학생들이 떠올라 마음이 찡했다.


 리멤버런스 데이를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도 좋았지만 그것을 위해 학교가 보여준 학생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놀라웠다.


 

 늘 자라나는 과정 중에 있는 학생들인데, 학교의 많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 과정보다 외부에 보이는 결과를 생각하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학생들에게 무거운 책임감을 배울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주지 않고, 더 나은 결과물만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한편으로는 교사의 교육철학만 가지고 되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교장, 교감, 그리고 학부모의 결과에 대한 기대나 요구를 고려해야 하고, 교사가 교육과정 외 다른 것을 가르칠 수 없을 만큼 바쁜 학교 현장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의 학생들에게도, 내 제자들에게도, 이런 기회를 꼭 마련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실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실수를 배움의 과정으로 인정해 주는 것.


그 과정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자신감 넘치고, 책임감 있으며, 자기 주도적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학교야말로 '학생이 주인인 학교'다. 학교의 많은 자리를 진정성 있게 학생들에게 내어줄수록 아이들이 자란다.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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