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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사랑 May 30. 2020

나도 캐나다 선생님처럼 점심을 먹고싶다.

캐나다 초등학교 점심시간에는 선생님이 없다.

 캐나다에 사는 한국 엄마들에게 캐나다 학교와 비교했을 때 한국 학교의 좋은 점을 말해달라고 한다면 다들 이렇게 말하지않을까 싶다.


단연코, 한국 학교급식!

캐나다에서는 아침마다
식구들 도시락 싸기 너무 힘들어요.


캐나다의 모든 초등학생들은 각자 가져 온 도시락을 먹거나, 부모의 선택에 따라 점심 시간마다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올 수도 있다. 이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유독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음식 알러지 때문이기도 하고 다민족, 다인종 국가답게 무슬림, 베지테리안 등 각자의 종교나 신념에 따른 음식 제한을 존중하기 위함일 것이다.


 첫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도시락 메뉴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어떤 음식으로 도시락을 싸야할까. 선배 한국 엄마들에게 도시락에 대한 별의 별 에피소드를 다 들었다.

냄새가 강한 김치는 절대 안 된다

참기름 냄새가 스컹크 냄새랑 비슷하기 때문에 김밥을 싸더라도 참기름은 빼라

콩자반이 토끼똥처럼 보여서 놀림을 받았다더라

보리차를 싸줬는데 물이 노란색이라고 놀려서 한 모금도 못 마시고 왔더라 등등.


 뿐만 아니라 다양한 알러지 제한도 고려해야 한다. 캐나다에는 음식 알러지가 흔한 편이라 매 년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면 각 학급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알러지 종류에 대해 안내를 받는다. 가장 대표적인 견과류 알러지를 비롯해서 계란, 새우, 특정 과일 등 생각지도 못한 알러지를 가진 학생들이 많이 있다. 어떤 학생들은 피부반응뿐만 아니라 냄새만 맡아도 기도가 붓고 호흡곤란이 오기 때문에 아주 위험하다. 가끔 한국과자를 스낵으로 싸주는 한국 엄마들이 있는데 꼭 뒷면의 Ingrediants(원재료)를 확인해야한다. Nut이 들어있는 '초코파이'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도 전혀 예상치 못한 알러지유발재료가 들어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교실 문 앞에 붙어있는 견과류 알러지 안내문. 알러지라고 하면 피부반응 정도로 생각하기 쉽지만 심한 경우에는 호흡곤란이 올 수 있어 아주 위험하다.


또 도시락 메뉴는 쉽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 학교마다 다르지만 점심시간이 10~15분 정도로 짧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싸온 도시락을 보면 정말 간소하다. 씨리얼을 우유와 함께 싸오기도 하고, 깎지도 않은 통 사과 1개, 쨈만 바른 식빵, 초콜렛 쿠키 등 초간단 도시락이 대부분이다. 밥을 먹여야 마음이 든든한 한국엄마 입장에서보면 '저렇게 먹어도 될까'싶기도 하다.

2번의 Nutrion Break(간식 1번, 점심 1번)를 위한 1학년 학생의 도시락. SNS에 돌아다니는 화려한 도시락과는 거리가 먼, 딱 '캐네디언스러운' 도시락이다.


 그런데 캐나다 초등학교 점심시간을 관찰하면서 아이들의 초간단 도시락보다 더 나를 놀래켰던 것은 따로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선생님은
맛있게 먹으라는 말을 남기고

 '교실을 떠난다'는 사실이다.



선생님이 떠나면 6학년 학생 2명이 본인 도시락을 가져와 1학년 교실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 Lunch monitor를 맡은 학생들이다. Lunch monitor는 도시락 뚜껑이 열리지 않을 때, 갑자기 몸이 아플 때 등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모든 유치원 및 저학년 교실에 배치된다. 주로 고학년 학생들이 번갈아가면서 맡고, 자원하는 학부모가 맡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교실에도 점심지도를 하는 선생님은 볼 수 없었다. 선생님은 어디에서 점심을 먹는걸까?


 캐나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교무실 한 켠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교사들끼리 점심을 먹는다. 솔직히 처음에 이 모습을 보자마자 '진짜 부럽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초등학교는 점심시간도 근무시간이다. 아이들을 줄 세워 급식실로 가서 함께 점심을 먹으며 급식지도를 한다. 아이들이 골고루, 남기지않고 먹도록 한 명 한 명 잔반검사를 하기도 하고, 여기 저기 흘린 음식물이 묻은 식탁을 정리 하기도 한다. 특히 저학년 담임 선생님들은 제대로 앉아 조용히 식사를 할 수가 없다. 생선이 나오는 날이면 28명의 생선 가시를 발라주고, 요거트가 나오면 28개의 요거트 뚜껑을 따줘야 할 때도 있다.


 한국에서 근무할 당시 한 1학년 학생이 학교 급식을 먹다가 큰 생선가시가 목에 걸려 수술을 받게 되었다. 해당 학생 담임교사는 교장 선생님과 해당 학부모에게 그동안 급식지도를 제대로 해 왔는지 증명해야했다.


애초에 교사 한 명이 스물 여덟명의 1학년 학생을, 그것도 본인이 식사를 하면서 급식지도를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언제든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고'가 담임교사의 지도부족으로 결론이 나야 끝이 나는 상황. 동료교사로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학생들을 위해서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도록 점심시간을 불태워도 알아주는 사람 하나 없다는 생각에 허무했다. 그런데 캐나다 초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교사는 교사끼리, 아예 다른 공간에서 점심을 먹는다니!


 게다가 교사들은 단순 휴식을 위해 교사들끼리 모여 점심을 먹는 것이 아니라 상당히 유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동학년 교사들과 점심을 먹으면서 교과지도나 교육활동을 공유한다. 교장 선생님도 함께 식사를 하면서 각종 학교 행사나 Field trip(현장체험학습)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각자 식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더 많은 아이디어가 모인다. 모두가 알아야하는 중요한 내용들은 휴게실에 있는 큰 칠판에 적어 공유한다. 기안을 올려 결제를 받고 공람하는 공문서 시스템이 없다. 따로 시간을 내어 하는 전체 회의도 없다. 내가 근무했던 수개월동안 '한국에서 온 교사'라며 나를 소개시켜주기 위해 모였던 딱 한 번 외에는 단 한 번도 없었다.


형식적이고 불필요한 회의가 얼마나 업무의 질을 떨어뜨리는가!


회의 한 번 안 해도 캐나다 학교는 참 잘 돌아갔다. 오히려 수업 외 기타 업무를 위해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고 교사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한 단어가 떠올랐다.

Time management.


늘 수업 외 업무로 시달리며 '왜 이렇게 바쁘냐'를 달고 살았던 한국에서의 나와 동료교사들이 생각났다. 캐나다 교사들은 그 짧은 점심시간을 통해 주어진 시간을 전략적으로 사용하고있었다.




 그런데 부러운 마음도 잠시, 한국에서 겪었던 것처럼 '사고'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이들끼리 있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나.


 휴게실에서 점심을 먹고있는 캐나다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인상깊다.


"Well, they should learn
how to control themselves."


캐나다에 살다보면 모든 사회 구성원이 그 중요성에 대해 동의하고 있는듯한 덕목이 있는데 그것은

Self-regulation. 스스로를 조절하는 능력

Responsibility for actions 본인 행동에 대한 책임 이다.


캐나다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기간동안 이러한 덕목이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지고있는지 알 수 있는 부분들이 정말 많이 있었다. 점심시간 또한 같은 맥락 안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는 분명한 규칙과 함께 아이들에게 본인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아이들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인 충동들을 조절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시민의식을 배운다.

그 과정 가운데 나타나는 모든 행동에 대한 책임 또한 교사가 아닌 학생들 본인에게 있다.

교사는 결과를 책임 져 주는 사람이 아니라, 지켜야 할 규칙과 행동에 대한 결과를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많은 부분을 내가 통제하려고 했다. 그래야 안심할 수 있었다. 물론 한국의 점심시간은 교실이 아닌 급식실에서, 각자 싸온 도시락이 아닌 정해진 급식을 먹는다는 점에서 캐나다 초등학교의 점심시간을 그대로 옮겨 오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캐나다 초등학교의 점심시간을 통해 나의 전반적인 지도 방식 자체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들끼리 있으면 사고가 날거야.'
라는 사고방식 자체가 부끄러워졌다.


 교사는 억지로라도 좋은 것을 떠먹여주어야 할까, 아니면 스스로 떠 먹도록 내버려두어야 할까. 그동안 나는 학생들이 스스로 더 나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았던 적은 없었을까? 나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자기조절능력을 존중하는 교사였을까?

만 5세 유치원 학생들도 담임교사 없이 점심식사를 한다. 본인이 속한 작은 사회 안에서 신체적,정서적,사회적인 충동들을 스스로 조절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필요한 시민의식을 배운다.



 

 더불어 많은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하고있는 잔반 검사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다양한 음식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영양학적으로도, 환경보호 차원에서도 의미있는 일이다. 하지만 교사가 '김치를 무조건 다 먹어라'고 급식지도를 한다면, 먹어보니 맛있다며 김치를 좋아하게 되는 학생도 있겠지만 다시는 김치를 먹고 싶지 않은 학생도 생긴다. 게다가 아이들은 매 년 다른 선생님을 만나 다른 방식의 급식지도를 받을텐데 나를 만난 1년동안 억지로 먹는다고해서 과연 그것이 건강한 식습관으로 이어질까?

 '남기지 말고 다 먹어'가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끊임없이 동기부여하는 것.

그것이 아이들의 Self- regulation과
Responsiblity for actions을 존중하는 지도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캐나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처럼 점심을 먹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학생들에게 스스로의 행동을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그런 점심시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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