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성탄절, 딸아이 학교 트위터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교장 선생님이 전 교직원에게 커피와 도넛을 샀단다. 직접 카트를 끌고 온 교실을 돌아다니며 커피를 나눠주는 교장의 모습에 왠지 흐뭇한 마음이 든다. 그 무렵쯤 딸아이가 교장 선생님께 크리스마스 카드를 쓰고 싶다고 먼저 제안을 했다. 담임 선생님도 아닌데 딱히 할 말이 있을까 싶어 "뭐라고 쓸건대?" 하고 물었다. 딸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I LOVE your morning message!
Thanks for always being there for us!"
내가 학부모로서 느끼고 있는 교장의 리더십을, 딸아이도 학교 생활을 통해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교장이 학교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고, 교사와 학생에게 어떤 종류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를 말이다.
딸아이는 학교에 다녀오면 교장 선생님 이야기를 많이 한다. 특히 매일 아침마다 간단한 학교 소식과 일정을 알려주는 Morning Message 이야기를 자주 하는데, 교장이 이 시간을 통해 매주 새로운 Joke를 하나씩 준비해서 알려주나 보다. 들어보니 영어식 말장난 아재 개그. 여섯 살 딸에게 이 Joke가 '완전' 먹히는지 학교에 다녀오면 Mr.Ro(교장)의 Joke를 엄마에게 알려주며 낄낄댄다. 이 교장은 코비드 19 사태로 캐나다 온타리오주 모든 학교가 문을 닫은 지금 상황에서도, 매주 월요일마다 아재 개그를 담은 모닝 메시지 영상을 직접 찍어 각 학급 온라인 학습 플랫폼에 올리고 있다.
딸아이 학교의 교장은 학부모인 나에게도 왠지 친숙한 존재이다. 학교에 갈 때마다 자주 보고 이야기를 많이 해서인 것 같다.
캐나다 초등학교의 교장은 교장실에 숨어있는(?) 만나기 힘든 사람이 아니다.
학교에서 교장의 자리는 학교 Office 안에 딸려있는 작은 공간이다. 지난번 '안전'에 관한 글에서 이야기했듯이 캐나다 초등학교에 출입하는 모든 사람은 학교 Office를 통해야 하는데, 그 자리에는 늘 School Secretary(한국의 교무행정사)와 교장이 상주한다.
교장은 그 작은 공간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지각생 및 결석생 확인, 학부모 및 학교에 방문한 손님 응대, 스쿨버스 배치, 전입생 및 입학생 등록, 중간중간 아프거나 다친 학생들 케어 등, School Secretary와 함께 학교 Office 안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자질구레한 일들을 한다. 캐네디언 교사가 말하길 교장은 교사들에게 인기가 없는 자리란다. 이유는 너무 일이 많아서. 한국에서 많은 교사들이 교감, 교장으로 은퇴하고 싶어 한다고 했더니 손사래를 친다.
맞다. 캐나다 초등학교 교장은 자리에 앉아있을 새가 없이 바쁘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관리하고 해결하는 것을 포함해서 수업 외 모든 업무를 교장이 맡아서 하기 때문이다.
각종 예산관리 및 집행,
교내 안전관리 및 교육 등,
한국 초등학교에서는 교사들이 나누어 맡는
행정업무를 교장이 맡아서 한다.
덕분에 캐나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각자 맡은 학급을 운영하는 일 외에는 따로 주어진 업무분장 자체가 없다. 캐나다 밴쿠버에 함께 파견을 나갔던 한국 교사들이 초, 중, 고교 할 것 없이 가장 부러워했던 것이 캐나다 교사들은 수업 외 업무가 없다는 점이었다.
요즘 한국 학교에서 가장 기피하는 업무 1순위가 아닐까 싶은 학교폭력업무도 교장이 깊이 관여하고 있다. 학교에서 bullying(괴롭힘) 사건이 발생하면 간단한 경우 담임교사 선에서 끝나는 일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교장이 가해학생, 피해학생, 각 학부모 모두와 직접 소통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때 필요한 경우, 교장은 상담교사, Learning Support Teacher(LST)와 함께 SBT(School Based Team)라는 팀을 구성한다. 이 팀을 통해 심리적으로 혹은 행동적인 면에서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을 위해 개별 교육계획(Indivisual Education Plan, IEP)을 마련하여 해당 학생들을 따로 관리하고 지도한다. 교장이 주축을 이루는 이 팀은 심리, 행동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학생뿐만 아니라 학습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학생들도 관리한다. 담임교사가 학습적인 면에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학생이 있을 경우, 언제든 수시로 요청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교장의 중요한 역할은
교사들에게 그들의 리더가 되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교사는 공직자가 아니다. 따라서 교육청에서 학교로 발령받는 것이 아니라 교장이 교사를 채용한다. 그래서인지 캐나다 초등학교 교장은 리더로서 학교에서 일하는 교사들과 좀 더 유기적이고 협력적인 관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파견근무를 할 당시, 유치원 학급에서 Neighbor Walk(학교 주변 걷기)를 한다며 도움을 요청했었다. 교사 혼자 유치원 학생들을 인솔하여 학교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부담되기 때문이다. 유치원 교실에 가 보니 안전조끼를 입고 카메라를 목에 건 교장 선생님이 먼저 와 있었다. 교사가 교장 선생님에게도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담임교사, 교장선생님, 자원봉사 온 학부모, 나. 이렇게 4명이서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을 네 그룹으로 나누어 학교 주변을 관찰하며 걸었다. 교장 선생님도 연신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가며 함께 걸었고, 교실로 돌아와 활동지를 쓰고 발표하는 시간까지 전부 함께 했다.
교장이 직접 교육현장에 뛰어들어, 교사가 하고 싶은 교육에 제약이 없도록 서포트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교장이 크리스마스에
전 교직원에게 커피를 '쏘는' 것도
상호 협력적인 관계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리더가 구성원의 수고를 알기에
그에 대한 인정과 격려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조직 안에서 인정과 격려는
구성원에게 큰 동기부여가 되며
팀워크를 만든다.
중요한 것은 학교라는 조직에서
그 팀워크의 혜택은 결국 학생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교장의 리더십이 그 학교 교육의 질을 올릴 수도, 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캐나다 한 초등학교 교장의 커피 쏘는 리더십. 교사에게는 따르고 싶고, 학부모에게는 신뢰를 주고, 학생에게는 늘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맙고 친숙한 리더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