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에 대한 이해

가족은 다양한 방법으로 형성된다.

by 다정한

남동생만 둘에 난 맏딸이다.

"언니를 낳아주세요. 아니면 여동생이라도."

어린 나는 부모님께 간곡히 말씀드렸다. 그러나 1980년도 당시, 우리나라는 산아 제한을 했다. 신의 순리를 거슬러서는 안 됐다.


둘 만 낳아 잘 살자라는 슬로건이 있었던 그때, 우리 집은 아이가 셋이었다. 게다가 동생들은 연년생으로 나 보다 두세 살 아래였다. 부모님께서는 넷째를 낳을 용기가 없었다고 하셨다.


눈 꼭 감고 하나를 더 낳았어야 했다고 딸이 하나 더 있었으면 좋았겠다고 말씀하시곤 하셨지만 늦었다. 그래서 그 꿈을 내가 이뤄드리고 싶었다. 아들 둘, 딸 둘. 딱 넷이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하나 낳기도 힘들었다.


2014년도에 썼던 나의 일기를 가져왔다.



나는 난임이다. 결혼한 지 5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아기가 없다. 그리고 나는 온갖 슬픔과 피해의식이 가득한 사람이 되어갔다. 누군가 툭 찌르지 않아도 눈물이 났다. 어디에서든 언제든 그랬다. 그런데 이제 나는 그리 쉽게 눈물 흘리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아직 시험관이라는 기회도 있고 입양도 가능하다. 입양은 사랑을 주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내가 더 받는 것이라고 하니 놀랍기까지 하다. 그러나 아직 신랑이 시험관이 더 남아있으니 해보자고 한다. 그리고 나도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주실 것이라는 마음이 있다.

겨울까지 있어보고 그래도 없으면 시험관을... 그래도 안되면... 입양을... 나는 삼십 대여서 퍽 늦었다고 생각하고 조바심을 내었다. 그런데 나는 사십 대가 아니다. 사십이 되려면 아직도 4년 아니 5년이나 남았다. 난 아직도 가능성이 있는 예비 엄마다.


일기 속에 나는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 불안을 숨기기 위한 심리적 방어기제가 발동했다고 봐야 할까? 불안의 근원인 난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름 문제해결을 위한 가능성을 찾았는데 그것 중의 하나가 입양이었다.


"엄마, 입양할까?"

떨리는 마음으로 친정 엄마께 여쭈었다.

"입양, 좋지. 낳은 아이보다 데려온 아이가 더 잘하는 경우도 있어."

이웃 동네에 효자, 효녀들은 다 데리고 온 아이라고 했다. 엄마의 의외의 대답에 마음이 놓였다. 입양을 축복하는 엄마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


가족은 출산으로만 형성되지 않는다. 출산을 했지만 양육이 어렵다면 양육이 가능한 가정에서 할 수 있다. 낳은 사람과 기르는 사람의 콜라보로 아이는 잘 자랄 것이다. 그러나 낳은 부모가 최고이니 원가족이 아이를 기르는 데 문제가 없도록 하자는 의견이 있다. 이 역시 응원한다. 마음껏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을 충분히 하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를 수 없다면 해외 입양 보다 국내 입양이 더 낫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국내입양을 추진하고자 했다. 먼저 결정할 부분이 있다.개월 아기를, 어떤 성별의 아기를 만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서로에게 가장 좋은 방법은 갓 낳은 아기가 좋겠다. 딸을 만나려면 1~2년은 기다려야 하고, 아들이면 빠르게 만날 수 있다 했다. 성별을 선택할 수 있다니... 딸이 좋지 않을까?


다음은 베이비박스의 아기 혹은 기관의 아이 중에 택하는 것이다. 기관의 아이는 이미 출생신고가 되어있어 나중에 생모가 원할 때, 아이 역시 원하면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이가 생모를 긍금해할 때 만나고 나면 본인에 대한 의문, 깊은 이해를 가질 수 있기에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이럴 경우 신생아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베이비 박스의 경우, 그야말로 박스에 넣고 간 경우라 전혀 생부모의 상황을 알 수 없다. 건강을 파악하고 출생신고를 하는데 기본 5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입양 사실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 비밀 입양보다는 공개 입양이 좋겠다. 비밀이 나중에 밝혀졌을 때, 나의 아이는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까. 처음부터 입양 사실을 아이에게 알리고, 우리는 마음으로 너를 낳았고 너를 사랑한다고 계속 말해주리라.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비밀로 하면 안 될까? 끝까지 모를 수도 있잖아 하는 유혹이 밀려왔다. 낳아준 엄마를 찾으면 어떻게 하지? 하는 불안도 존재했다. 함께 찾아줄 테지만... 함께 살아왔던, 주고받았던 사랑의 무게가 결코 클 테지만 혹시나 날 떠나 낳아준 엄마에게로 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위의 사항들을 결정했다 해도 누구나 입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건강검진 결과를 제출해야 하며 경제적인 능력 또한 검증이 되어야 했다. 육체적인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까지 충분해야 한다. 또한 일정 시간 교육을 받아야 한다.


입양 성공담도 찾아 읽고, 영상으로도 많이 보았다. 행복해하는 가족들을 보며 감동의 눈물도 나왔다. 한편 친구 부부는 아들이 둘이 있다. 셋째로 딸을 원해서 입양기관을 방문했다고 한다. 그러나 '건강한 아기를 만날 확률이 희박하다. 그 많은 문제를 감당해야 한다.' 등의 매우 복잡한 이야기를 들어서 셋째 입양을 내려놓았다는 이야기 했다.


그렇다.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다. 산모는 매우 불안했을 것이고, 준비되지 않은 임신이었기에 술과 담배 등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태교를 기대하기란 더더욱 어렵지 않을까?


신은 왜 나에게 아이를 주지 않으시고. 나, 건강하게 태교하고 잘 키울 수 있는데. 라며 한탄을 하기도 했다. 출산만큼이나 입양도 쉽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입양을 공부하고, 실행에 옮기고자 기관을 방문하면서 입양은 참 축복이구나. 남편도 돌아서면 완전 남인데 결혼으로 가족이 되었듯. 자식도 입양으로 만날 수 있구나 하고 깨닫는 시간이었다.


"넌 다리 밑에서 주어온 자식이야."

아빠가 놀릴 때, 그 다리가 엄마 다리라고는 1도 생각지 못했던 어린 시절. 내 엄마가 진짜 엄마가 아닐까 봐 떨면서 눈물 찔끔 흘리던 때가 떠오른다. 너의 엄마는 너의 진짜 엄마가 아니라더라 새엄마래.라고 말했던 철없던 날들도 떠오른다. 나의 무지가 누군가를 퍽 아프게 했겠다.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다 귀하고. 가정 속에서 건강하게 자람은 축복이다.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는 가족을 축복하며 내 안에 있던 편견을 깨고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입양으로 마음을 단단하게 하고, 후회나 미련, 아쉬움 따위 없는 입양을 위해 일단 시험관을 시도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시험관은 어디까지나 입양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보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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