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학교에 등록한 엄마들은 업체가 연계해준 한 두 군데의 숙소에 머문다. 아이들이 등하교 하는 셔틀버스 시간에 종종 만날 수 밖에 없다.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은 것 같다. 비록 흰머리 왕창 난 엄마지만 셔틀버스 창문 넘어로 보이는 내 아이에게 손을 흔들 수 있어서 눈물 겹도록 감사하다.
"아직 애가 없어서 잘 모를 거예요."
20대의 나는 이 말이 싫었다. 사실 모를 수도 있지. 몰라도 되는데. 애인도 없는 그때에 덜컥 임신을 하고 싶었다. 드디어 서른하나의 봄에 결혼을 했다. 남편은 아직 아빠가 될 준비가 안되었단다.
가난했던 우리 부부는 사실, 아무것도 없이 아니 대출금을 몽땅 갖고 결혼을 했더랬다. 대출금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 하지만 1억 집을 사면서 5천을 대출 한 상황이 아니다. 5천만 원 전세를 구했는데 6천만 원이 대출이었다.
"다 자기 몫을 가지고 태어난대."
태어나기만 하면 다 살아지지 않을까? 일단 낳고 보자는 나와 남편은 의견을 달리했다. 가장의 무게였을까?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낳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을까? 그해 겨울, 남편도 마음을 고쳐먹었다.
"손만 잡아도 임신되는 거 아니었어?"
참 순진했던 18세, 성교육 시간에 분명 그렇게 배웠다. 이게 노력을 해도 안된다고? 누군가는 원치 않은 임신으로 당황스러운 경험을 했을 것이다. 결혼 전 임신을 죄악시했던, 순결주의자였던 나는 프러포즈도 먼저 했다. 그러나 난임을 경험하며 혼전 임신은 축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가치관의 대변화였다.
30대 또래들이 모이면 출산과 육아 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점점 그들 속에 섞여 대화하기가 힘들었다. 웃고 있지만 울고 있었다는 말이 맞겠다. 돌잔치에 초대를 받았으나 점점 가기가 힘들어졌다. 축하를 하고 있지만,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슬픔이 목까지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날도 그랬다. 햇살이 눈부시던 5월의 어느 날, 따스한 봄볕에 퇴근하는 길이었다. 걷기가 임신에 좋다고 해서 남편과 걸으려고 애썼고 출퇴근 길도 걷는 방법을 택했다. 더욱이 퇴근길은 언제나 즐겁다. 그날도 10분이면 도착하는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애써 하늘을 바라보며 미소도 지어보고 길가의 꽃에도 눈길을 주었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도 참 좋았더랬다. 오늘은 저녁으로 뭘 먹지?
저만치 앞에 배가 볼록한 임산부가 걸어왔다. 배가 많이 나왔다. 임산부의 얼굴이 둥글둥글 참 예쁘다. 문득 눈물이 왈칵 나왔다. 영문도 모른 채 임산부는 나를 스쳐 지나갔다. 눈물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오열하고 말았다. 왜 나에게는 아이가 안 올까? 갑자기 흐르는 눈물에 어찌할 바를 몰라 좁고 어두운 골목을 찾아 들어갔다. 숨어 꺼억꺼억 울고 말았다. 나도 저렇게 배가 불렀으면 좋겠다.
그렇게 평안하고 즐거웠던 퇴근길은 눈물로 지워졌다. 임산부를 보고 하염없이 울었던 날을 잊지 못한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아이를 갖지 못하는 아픔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매달 겪어야 하는 실패의 경험. 매달 증상 놀이를 했던 허무한 시간들. 차곡차곡 쌓여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세상에는 다양한 아픔이 있을 테다. 다자녀의 육아는 또 얼마나 힘든가. 그만 낳고 싶은데 아기가 계속 생겨도 힘들 테다. 그러나 내 눈엔 다 행복에 겨운 투정으로만 여겨졌다. 당시 내 아픔이 가장 큰 것 같았다. 더한 아픔을 겪어보지 못해서 그렇겠지.
임신에 좋지 않다는 것은 모조리 내 몸으로 넣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사실 지금도 진한 라테의 힘으로 글을 쓰는 중인데 말이다. 그 당시 오직 임신에 좋다는 것만 먹으려 애썼다. 흑염소, 한약, 포도, 추어탕 등을 먹고 또 먹었다.
차라리 딩크족이었으면 좋았겠다. 아이 없이 우리 부부만 행복하기로 마음먹을 수만 있다면... 그런데 왜 나는, 그렇게 아이가 갖고 싶은 걸까? 번식의 본능인가? 자식에 대한 욕심인가? 인간의 기본 욕구인가? 다른 것도 아니고 생명에 대한 열정이 뭐가 잘못이란 말인가.
있는 것이 사라졌을 때의 아픔(상실, 유실, 이별 등)과 없는 것을 갈구할 때의 고통(갈망, 소원, 소망 등), 둘의 경중을 따졌을 때 전자가 훨씬 더 크지 않을까? 없어도 되잖아. 마음먹기에 달린 거 아냐? 그토록 갈구하는 것은 욕심이 아닌가? 왜 그렇게 아기를 갖고 싶은가? 그래서 나는 왜 그리 아픈가?
일하는 여자로서 멋지게 살고 싶은 마음이 우선이었다. 다만, 아이가 없는 삶은 상상하지 못했다. 아이는 그냥, 아주 자연스럽게 저절로 생기는 줄 알았다. 요즘은 아기를 기다리는 부부가 많아졌다. 그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늘 울컥하다.
"지금이 제일 좋을 때야 즐겨."
아이를 가진 친구들이 이렇게 말할 때, 그것도 한두 해지. 3년 지나고 4년 지나니... 그래서 난, 지금 즐기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간절한 누군가는 즐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저 말없이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역시 어떤 경험이든 그 후에는 득이 되나 보다.
그렇게 나는 점점 아이를 갖지 못해 슬픔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자가 되었다. 그렇게 나 자신이 불쌍할 수가 없었다. 축복받지 못한 인생 같았다. 죄를 많이 지었나?
아이를 갖고 싶은 강렬한 열망, 그것을 넘은 집착. 임신을 기다린 지 3년, 4년이 자나 가며 못쓸 놈의 죄책감마저 찾아왔다. 평범한 대화가 어려워졌다. 뭔가 모를 불안과 슬픔이 나를 휘감아버렸다.
살기 위해 입양을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