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배아 이식, 그 후.
채취된 난자는 시험관에서 정자를 만났다. 나의 자궁 보다 시험관이 나았나 보다. 떨어지면 산산조각이 날 것 같은 그 차가운 시험관이 뭐가 좋다고. 그 속에서 수정란은 무수한 세포 분열을 반복했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은 배아는 냉동 상태이다.
과배란으로 무리가 있었던 몸은 차츰 회복이 되었다. 꽃이 피는 봄, 행복한 고민을 해본다. 임신을 몇 월에 할까? 즉 냉동배아를 언제 이식할까? 하는 것이다. 배아의 착상을 준비하는 시기에 이식만 하면 된다. 물론 확율을 높이기 위해 역시 매일 배 주사를 맞아야했다.
임신 달을 정해볼 수 있다니, 이식만 하면 될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나보다. 만약 안되면 어떻게 하지? 남아있는 냉동배아가 있으니 또 시도하고자 하는 유혹이 생기지 않을까? 하여 최대한 서두르기로 한다. 그렇게 4월의 어느 봄 날, 시술을 받았다.
배아가 내 몸속으로 들어왔다. 자꾸 누었다.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걷기도 했다. 물론 포도즙, 추어탕도 챙겨 먹었다. 착상에 좋다는 마을 들었기에. 그렇게 꼬박 4주가 지났을 무렵 피검사를 하러 갔다. 먼 길을 가기 어려워 가까운 산부인과를 찾아갔다.
"임신 여부를 알고자 왔어요."
"아직 알 수 없는데요."
"그래서 피검사를 했음 합니다. 시험관 시술을 했어요."
난임병원에서는 피검사 일을 정해줬다. 일반 산부인과에서는 이해가 안되는 듯 했다. 피검사를 해서라도 임신 여부를 알겠다고 하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객의 요청이니 겨우 허락해준다는 느낌으로 피검사를 받았다. 결과가 바로 나오지는 않고 내일이면 알 수 있단다. 다음 날 문득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임신수치가 매우 높아요. 임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세상에, 내가 임신이라니! 울고 말았다. 남편에게 전화를 했고, 둘은 또 같이 울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기로 한다. 당분간 비밀로 하자. 임신 사실을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심지어 나의 엄마에게도. 꽁꽁 숨겨 두고 나만 알고 싶었다. 아니, 말하고 나면 날아갈 것 같은 불안이 컸다. 아기의 심장이 뛴다고 했을 때, 내 심장은 뜨거움에 벅찼다. 입덧도 점점 진해졌다. 입덧 마저 질투했던 지난 날들이 부끄럽기도 했다.
마침 남동생이 가족톡방에 임신소식을 전해왔다. 엄마는 태몽으로 감자꿈을 꾸었단다. 꿈에 감자가 세 개 있었는데 하나는 빨간 감자였다고. 빨간 감자는 여자아이인가? 딸을 기대했던 우리는 그 빨간 감자가 우리의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는 용도 아니고, 보석도 아닌... 감자를 태몽으로 꾸었다니. 흡.
동생의 임신 소식에 자연스럽게 우리 임신 소식도 나눴다. 마침 남편의 친구 부부도 임신소식을 전해주어서 우리의 소식도 함께 전했다. 다들, 임신을 하고도 우리가 임신을 오래 기다렸음을 알기에 어떻게 본인들의 임신 소식을 전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다들, 우리를 배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생명을 선물로 준 고마운 시험관만은 숨기고 싶었다. 내가, 내 아이가, 우리가 갖게 되는 시험관 프레임은 무척 인위적이고 기계적인 느낌이었다. 뭔가 시작부터 순조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해버렸던 거다. 그래서 궂이 '시험관'으로 임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임신 소식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오랬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축하해. 임신했다며."
"고마워."
"그런데 시험관이라며?"
친구의 말에 대답을 찾지 못한 나는 울고 말았다. 소식도 나누지 못하고 지냈던 친구가 '시험관' 소식을 안다니. 세상사람들 다 아나보다. 궂이 말하지 않아도 내 비밀을 다 아는구나. 흐느껴 우는 소리가 수화기를 넘어선 듯했다. 날카로운 시험관 조직이 찌르는 듯 심장이 아팠다. 피가 철철 나는 듯했다.
"울어? 미안해. 아니, 나는 그냥 궁금해서."
그렇게 꺼이꺼이 울다. 그래도 축하 고맙다는 말은 잊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떻게 통화를 마무리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시.험.관.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어디에 있을까? 직장에도 시험관 하러 간다고 연가도 썼는데 말이다. 그래 놓고는 아무도 나의 시험관을 몰랐으면 좋겠다니 말도 안 된다. 오랜 기다림, 쉽지 않았던 시험관 과정. 그 모든 것이 딱 그 시점에서 눈물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시험관시술이 있었기에 그렇게 긴 시간 간절히 바라던 임신이 된 것이 아닌가! 시험관으로 임신이 되었음이 부끄러운 날들도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지금은 당당히 말한다. 시험관으로 임신이 되었어요. 자연임신 기다리며 마음 고생 하기 보다는 병원에 가보는 것을 권해요. 완전 겁쟁이 저도 했어요. 라고 말하며 용기도 기운도 드리고 싶다.
임신은 힘들었지만 임신 기간을 무탈했다. 매달 정기 점진을 받으며 아이가 빨리 태어나기를 바랐다. 자연분만, 모유수유라는 꿈을 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