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군대급 이야기
"나때는 말이야. 군대에 휴대폰이라니. 군인 월급 고작 3만원."
남자들이 주로 힘들었던 일들을 추억하는 '군대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한다면. 여자들은 주로 '출산 이야기, 출산하고 수유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곤 한다.
밤 10시에 양수가 터졌지 뭐야. 미지근한 물이 왈칵 나와서 깜짝 놀랐잖아. 그 밤에, 산부인과 가려면 자차로 1시간을 가야하는데. 자동차 시트에 비닐 깔고 갔지. 남편도 매우 긴장을 해서 운전을 하더라고.
병원에 도착 했을 때, 내 목소리는 매우 상기되어 횡설수설한데. 간호사는 매우 침착해. 이런 경우를 너무 많이 보아서 전혀 놀랍지 않았을꺼야. 일단 침대에 누우래. 자궁이 열렸다고 하더라. 사실 내일이 출산 전 마지막 정기검진일이었는데. 1주일 전인 지금, 아이가 나오려고 한대. 너무 많이 걸었나?
출산 전의 3D알아? 내진, 제모, 관장. 이 세 가지는 자연분만을 위해 필요하지. 3D라 하는 이유는 셋 다 정말 힘들거든. 다 하고 제왕절개를 한다면 억울하지. 내진을 통해 분만 시간을 측정할 수 있어. 물론 사람마다 그 속도는 다르겠지. 진통이 시작되었어. 나의 경우 허리 통증이 매우 컸어.
"무통 주사는 언제쯤 맞나요?"
무통 주사 없이 낳겠다는 마음은 접어둬. 너무 아팠으니까.
"오전 9시에 무통주사 낳는 분이 출근하십니다."
나의 분만 시간은 과연 언제일까? 그 분을 만날 수 있을까? 밤새도록 잠을 못 잔 것 같아. 통증으로 괴로워하고 있는데 남편이 동영상을 촬영해.
"자, 곧 만날 아이에게 한 마디 해볼까요?"
그 카메라 치우지 못할까? 지금 웃을 수가 없어. 말도 못하겠다고.
온갖 인상을 쓰며 힘겹게 곧 만나자는 말을 하는 내가 담긴 영상. 남편은 이게 다 추억인 된다고 여전히 좋아하지만. 영상을 꼭 그 시점에서 찍어야 했는지...
8시경에 분만을 준비하게 되었어.
"가족실로 가시죠." 즉 남편이 들어올 수 있다는 거야. 남편이 진통의 시간을 함께 하고, 탯줄을 자를 예정이야. 가족분만실로의 이동은 이 진통의 끝이 보인다는 이야기겠지? 그때 남편이 전화기를 내밀었어.
"장모님이신데 할 말이 있다 하셔."
"여보세요?"
"힘을 줄 때 쪼그리고 앉아서 똥을 누듯이."
"네네."
나의 엄마는 그 비법을 지금 말씀하신다고? 들리지 않았어. 뭐라 말씀하시는데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지. 나의 엄마의 열정. 딸을 향한 응원일게야. 간호사님이 배 위로 올라와 아이가 나오도록 밀어주셨어. 크게 변화른 없었지. 정기적인 진통이 계속되면서 당시의 고통이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아. 그래 차라리 정신줄을 놓는 것이 편할 수도 있겠다.
아이 머리가 보인다고 하셨을 때, 의사선생님이 오셨어. 만신창이가 되어 정신이 오락가락 하는 나와 달리 편안하고 안정된 모습의 의사선생님. 뭔가 일이 끝나 간다는 생각이 들었지. 남자 아이는 한 번에 안나온다 했어. 큰 머리 다음으로 넓은 어깨가 나온다고. 그렇게 아이가 세상으로 나왔어. 그 순간, 평안이 찾아왔지.
벌거숭이 아이가 내 가슴 위에 놓였어. 퉁퉁 부어있는, 피가 묻은, 눈을 감고 온 몸으로 우는 아이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네.
"너를 참 만나고 싶었다. 고맙다. 나의 아기로 와줘서."
아기는 신생아실로 갔어. 밤새도록 못 잔 잠을 몰아서 잤지. 그러고 나니 아래가 아프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출산의 고통은 약 10시간으로 압축된다. 가장 힘든 시간은 1시간쯤일까? 늦깎이 초보맘은 여기서 모든 것이 끝난줄 알았다. 2~3일이 지났을까? 젖이 돌기 시작하면서 나의 가슴의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것은 바로 젖몸살이라는 것이다. 유관을 통해 모유가 원활하게 나오지 못해서 그렇다고 한다. 전문 마사지 사를 모셨다. 조리원으로 오셔서 수유 방법을 알려주셨다.
치밀유방이란다. 유선 조직에 비해 지방이 작단다. 눈두덩이도 두꺼운데 지방이 아니고 근육이라 해서 쌍커풀 수술을 못한 기억이 떠오른다. 뭔가 수유하기엔 수월하지 않다는 거다. 모유 양도 늘 많지 않았다. 젖꼭지는 터져서 피가 나고, 젖몸살로 열이 나고 힘들기도 했다. 양이 많지 않으니 아기는 밤에 푹 자지 못했고. 남편과 엄마는 분유를 권했으나 지독하게 모유수유를 고집했다.
왜그랬을까? 오래 기다렸고 어렵게 낳은 아기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몸이 축나는 줄 몰랐다. 수유를 하다가 운 날도 있다. 아이가 꿀꺽꿀꺽 먹어서 젖이 텅텅 비었는데 쪽쪽 빨아서 정말 피까지 빨려들어가는 줄 알았다. 20개월을 먹였으니 젖 먹는 심이 강해진 탓도 있다.
모유수유는 계획대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권하지는 않는다. 요즘 좋은 분유도 많다고 하는데. 심지어 밥을 먹을 때가 되었는데 모유를 먹으려 하는 아이 때문에 단유도 쉽지 않았다. 남편은 아이를 데리고 시댁으로 갔다. 3일동안 아이와 생이별을 한 것이다.
"왜 데려갔어. 그 방법 밖에 없어?"
화를 내며 울었다. 뭔가 '분리불안'이 내게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남편과의 통화를 끝내고 미용실로 향했다. 수유를 하는 동안 매운 음식도 먹지 않았다. 모유에 해가 될까 파마도 하지 않았는데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으니 해보자.
아기는 다시 집에 오자 모유를 찾았다. 젖꼭지에 식초를 발랐다. 입을 대더니 퉤 하고 뱉는다. 그렇게 길고 긴 수유의 여정도 마무리 되었다.
'아가야, 품에 안겨 젖 먹다 잠든 너의 모습은 천사와 같았단다. 이제 네 스스로 먹고 잘 크렴.'
모유수유 20개월. 그것도 모유양 엄청 적은 엄마의 수유기. 이것은 끈질긴 정신력의 성공이었다. 계속적인 위기가 찾아올 때 마다 완모를 향한 강열한 의지로 극복해왔다. 위로가 되는 것은 아이가 크게 아프지 않고 자라준 것이다. 밀알의 수유 탓이라 위로한다.
남자들의 군대이야기는 위기 속에 견딤으로 그 가운데 히어로가 된 이야기다. 2~3년 동안의 길고 긴, 헤아릴 수 없는 힘든 훈련을 견딘 영웅담. 여자들의 출산과 수유 이야기 또한 여기에 견줄만하지 않은가? 하하.
혹자는 입덧, 출산, 수유, 육아 중에 어떤 것이 가장 힘들었냐고 묻는다. 나는 임신을 기다리는 그 시간들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머지는 힘들었지만 또한 기쁨과 감사가 함께한 아름다운 시간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본다면 오래 기다린 그 시간이 명약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오래 기다리지 않고 빨리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만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