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항상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할 수 없는 이유”
[예전 타 잡지에 기고한 글을 수정/보완했습니다.]
로마의 휴일(Roman Holiday)은 1953년 제작된 할리우드 고전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어릴 적 TV에서 방영된 이 영화를 우연히 보고서 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찌 보면 오랜 시간이 지나 브런치 연재 글을 쓰게 된 것도 이 영화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내용은 로마를 방문한 앤 공주(Princess Anne)가 궁을 빠져나와 로마 시내를 활보하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던 오드리 헵번은 ‘헵번스타일’이라는 짧은 커트 머리를 유행시키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음으로써 세계적 스타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런데 영화 속의 앤 공주는 단순한 공주가 아니었다. ‘공주는 왕위의 직접적인 계승자’라는 영화 속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향후 왕위를 물려받아 여왕이 될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앤 공주는 앞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말과 행동이 커다란 파장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고 있다.
빡빡한 일정과 지친 심신 속에서의 일탈
유럽의 여러 국가들을 공식 순방 중인 앤 공주는 로마에 도착, 그날의 일정도 무사히 마쳤다. 앤 공주는 너무 피곤해서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심신이 지쳐 있었지만, 그녀를 보좌하는 백작 부인은 잠자리에 들기 전 다음날 일정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결국 시계추처럼 꽉 짜인 일정에 지친 앤 공주는 그만이라고 외치면서 히스테리를 일으킨다.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궁을 빠져나온 앤 공주는 머리를 자르고 스페인 계단에서 젤라토 아이스크림도 먹으면서 자신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그러다 지난밤에 우연히 만났던 그녀가 공주라는 사실을 알고, 우연을 가장하여 접근한 기자 브래들리(그레고리 펙)를 다시 만난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앤 공주는 ‘노천카페에 앉아 쇼윈도를 구경하고, 빗속을 걷고, 재미있게 놀고 싶어요. 흥분도 좀 하고’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나열하면서 하루 종일 이런 일들만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볼 때 별거 아닌 것 같은 일을 하기 위해 ‘오늘은 휴일(Today's gonna be a holiday)’이라고 스스로 정하고 본격적으로 로마의 휴일을 즐기기 위한 모험에 나선다.
앤 공주는 브래들리와 함께 로마 시내를 스쿠터를 타고 돌아다니며 활기찬 거리를 즐긴다. 또한 ‘진실의 입’이라는 유적지도 방문한다. 브래들리는 거짓말을 한 경우 진실의 입에 손을 넣었을 때 손을 물어버린다는 전설이 있다고 말한다. 앤 공주는 그 순간 자신이 공주라는 걸 숨기기 위해 한 거짓말을 떠올리면서 난감해한다. 브래들리는 자신의 손을 진실에 입안에 넣은 다음 물린 것처럼 소리를 지른다. 앤 공주는 깜짝 놀라 브래들리를 마구 잡아당기지만, 장난이라는 것을 알고 안도한다. 관객들은 이 장면을 보면서 앤 공주의 순진무구함에 미소를 지을 것이다.
인생이 항상 좋아하는 것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앤 공주와 브래들리는 선상 파티를 간다. 여기서 앤 공주를 찾아 나온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지만, 가까스로 이들을 피해 빠져나온다. 젖은 몸을 말리기 위해 둘은 브래들리의 아파트에 오게 된다. 앤 공주가 “무엇을 좀 만들까요?”라고 묻자, 브래들리는 늘 사 먹기 때문에 부엌이 없다고 답한다.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브래들리는 “인생이 항상 좋아하는 것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Life isn't always what one likes, is it)?”라고 이야기한다. 앤 공주 역시 그 말이 맞다고 응답한다. 어느새 사랑의 감정을 가진 둘이지만, 그러한 감정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의 입장을 대변한 대사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앤 공주는 궁으로 돌아가고 “가족과 조국에 대한 의무를 잊고 있었다면, 오늘 밤 돌아오지 않았을 거예요.”라고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말한다.
어렸을 때 이 영화를 봤을 때 ‘왜 좋아하는데 헤어지지’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이제는 왕위 계승자로서 개인의 감정보다 국가와 왕실에 대한 책임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앤의 입장에 보다 공감하게 되었다. 사랑하지만, 그 진심을 따르는 것이 오히려 상대에게 상처가 될 수 있고, 국가와 국민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장을 떠나는 브래들리의 뒷모습을 보면서 씁쓸하지만 기억 속에서 소중히 간직되는 사랑 역시 소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즈니스 리더 역시 때로는 고독하고 쉽지 않은 의사결정을 해야
비즈니스 리더가 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사회적 성공에 대해 인정을 받고 강력한 의사결정자로서 원하는 바를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즈니스 리더 역시 때로는 외롭고 자신의 감정대로 모든 일을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앤 공주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비즈니스 리더는 꽉 짜인 스케줄에 의해 정신없이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해진 회의뿐만 아니라 아랫사람, 고객, 주주, 정부 관계자 등 다양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비서가 세팅해 놓은 일정에 따라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일에 얽매여 자신의 시간을 갖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예컨대, GE의 전 CEO였던 제프리 이멜트는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을 해왔다고 한다. 일주일에 100시간이라는 수치는 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일한다 해도 2시간이 모자라는 시간이다.
조직의 최고 리더는 업무 수행에 있어 큰 권한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자신이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다. 잭 웰치는 1980년대 GE CEO로 재직하면서 GE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웰치는 “각 사업부는 해당 분야에서 1등 아니면 2등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철수한다”라는 원칙을 세웠다. 이 원칙에 따라 성과가 낮거나 비효율적인 부문은 매각하거나 폐쇄했고, 그 과정에서 대규모 해고가 뒤따른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GE 내부의 비효율적이고 느린 관료주의 문화를 없애고, 유연하고 민첩한 조직으로 탈바꿈도 도모했다. 그의 재임 기간 동안 GE의 주가와 시장 가치는 급상승했으며, 경영성과 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웰치는 “일부 구성원들을 내보내는 것은 가슴 아프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장기적 측면에서 조직과 구성원들의 미래를 위해 더 바람직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라고 말하였다. 웰치는 조직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주변에서 많은 비난을 하고 자기도 하기 싫고 주변에서 많은 비난을 받으면서도 필요하다고 판단한 일을 과감하게 실행해 나간 것이다.
유명한 경영학자인 피터 드럭커는 ‘유능한 리더는 사랑받고 칭찬받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올바른 일을 하도록 만드는 사람이다. 인기는 리더십이 아니다. 리더십은 성과다,’라고 말하고 있다. 리더는 자기감정이 아닌 조직 전체를 위해 옳은 일, 필요한 일을 선택해야 한다. 게다가 지켜보고 간섭하는 사람이 많지만,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고 부담감을 나눠지기보다는 결과를 평가하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리더는 자기감정에 불편하고, 당장의 인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위기나 갈등 상황에서 리더가 싫은 일을 미루거나 피하면, 조직 전체에 큰 피해를 미치게 된다. 리더는 자기감정이 아니라 조직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