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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Feb 09. 2021

[서평, 리뷰]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

검은 황금 패권의 역사

  코로나 19가 휩쓸었던 2020 년 4 월 20 일 현지 미국 서부 텍사스 경질유(WTI) 5월 선물이 -37.63 $에 청산되었다. 선물 만기일에 매수 포지션을 가지고 있으면 해당 종가로 현금을 정산받고 포지션을 청산한다. 그런데 마이너스다. 전일 종가가 18 $이었으니 하루 만에 -300%가 빠진 것이다. 현물에서 매수 포지션의 최대 손실폭은 -100%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다. 종가 전에 포지션을 정리하지 않았다면 배럴당 37.63 $을 메꿔 넣어야 한다. 당연히 21 일 한국 아침 시장이 열리자 온통 난리가 났다.


   WTI 원유 선물이 역사상 유래 없는 마이너스 정산이 된 건 코로나 19 탓이다. 선진국이 경제 봉쇄에 들어가자 원유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당장 생산을 줄일 수 없는 산유국들은 반대급부로 재고가 쌓여 마침내 해상에 원유를 가득 실은 유조선이 떠다닐 정도로 저장시설이 부족해졌다. 만기 청산물량은 매수자가 현물로 받아 이를 저장해야 한다. 그러나 받아줄 저장시설이 없으니 매수자가 페널티를 물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마이너스 종가가 나온 것이다.

 

  이너스 유가의 충격으로 오랜 기간 10 $대를 머물다 산유국 감산과 코로나 공포가 서서히 걷히고 나서야 유가가 반등하게 되었다. 21 년 2 월이 되서야 수요 회복에 힘입어 60 $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물론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 셰일 오일 증산에 반대 것도 한몫했다.




  흔히 석유를 검은 황금이라 일컫는다. 역사시대 이래 인류는 부를 축적하려는 욕망을 지녀왔다. 스스로 부를 이루기도 하지만 때로는 남이 이룬 부를 가차 없이 약탈한다. 부를 갈망하는 인간의 탐욕을 종종 황금에 빗댄다. 대항해 시대에 영롱한 노란 광택이 주는 매혹에 빠져 신대륙에서 처참한 살육을 자행하였다. 오늘날에는 검은 황금의 패권을 얻으려고 열강들이 물러설 수 없는 각축을 벌이고 있다.


  '석유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는 검은 황금의 패권을 둘러싼 서구 제국들의 쟁탈사를 그린다. 검은 황금 패권의 역사를 재미있게 다다. 1 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질서 개편 중심에 석유를 놓고 서구 제국과 제3 세계 간의 갈등, 중동의 근현대사,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팍스 아메리카와 반미 테러리즘 등 석유로 인해 야기된 주요 정치, 경제적 갈등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저자는 석유 패권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헤게모니 쟁탈전의 밑바탕에 서구 열강의 달러(자본)와 금융, 패권전략이 깔려 있음을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 제국이 벌인 전쟁이 그 명분과 대의가 무엇이든 결국은 석유 헤게모니를 획득하려는 세계 전략의 일환이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제 질서가 석유 이권에 따라 적대 관계가 뒤바뀌고 이합집산되는 과정에서 제국주의의 추악함과 선린외교의 덧없음을 저절로 실감하게 된다.


   이 책은 총 4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 부는 1 차 세계 대전부터 1969년까지, 나머지 3 부는 70년대, 80년대, 90년 이후 각 시대별로 석유를 둘러싼 현안, 쟁점을 설명한다. 4  개로 분류한 석유 패권의 역사는 다시 ① 1 차 세계 대전 ~ 70 년대 초까지의 메이저 시대, ② 70 년대 ~ 80 년대 중반까지의 OPEC 시대, ③ 90 년대 이후 석유 시장 상품화 시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석유 패권의 역사는 중동 근현대전쟁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에서는 오스만 제국에 대항한 아랍 민족의 독립 전쟁, 2 ~ 4 차 중동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2 차례의 이라크 전쟁을 소개한다.  석유 패권의 관점에서 이들 전쟁이 일어난 배경과 진행과정, 영향을 조목조목 알기 쉽게 요약했다. 석유를 매개로 한 동맹과 적대, 근린 외교관계가 놀랍도록 변화무쌍다.


   중동에서 벌어진 석유 전쟁 중에 세계사적 의의가 큰 전쟁을 택하라면 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꼽겠다. 소련이 중앙아시아에서 소비에트 연합에 도전하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차단하고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다. 미국은 이를 소련의 중동 진출 시도로 간주하여 반군에 무기와 자금을 제공한다. 10년간 벌어진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미-소 군비경쟁과 더불어 소련을 붕괴시킨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소련 붕괴로 세계의 유일 강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거침없이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주도할 수 있었다. 세계 경찰을 자임한 팍스 아메리카나 정책은 도리어 이슬람 세계가 미국에 대해 반감을 갖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라크 전쟁도 마찬가지이다. 1, 2 차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 근본 배경은 미국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석유 패권이라는 사활적 이익을 지켜내기 위함이었다. 1 차 이라크 전쟁은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시작하였다. 하지만 본질적 핵심은 이란 혁명을 주도한 시아파 원리주의가 아라비아 반도로 확산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데에 있었다. 2 차 이라크 전쟁을 일으킨 명분은 9.11 테러 세력과 대량 살상 무기를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는 이라크가 가진 석유를 탐 게 정설이다. 1 차 전쟁과는 달리 2 차 침공을 영국을 제외한 국제사회가 반대했다는 점이 반증이다. 2 차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기 전 2000 년 초에 미국은 장기 에너지 수급전망을 예측한 바 있다. 결과가 충격적이었다. 당시 전망으로 2020 년 미국 원유 자립도가 채 20%가 되지 않을 것으로 분석되었다. 결국 원유에 의존하는 미국의 사활적 이해가 중동에 달렸다는 결론이 전쟁을 이끈 것이다.


  90 년대 이후 거세진 이슬람 세력의 반미 감정과 연이은 테러는 결국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친미정권을 세우기 위해 쿠데타를 지원하거나 반군 세력에 무기와 자금을 제공했던 미국의 중동정책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에 이라크 전쟁 과정에서 이슬람 성지인 아라비아 반도로 대규모 미군이 진주한 것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결국 9.11 테러의 뿌리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전쟁이었던 것이다. 미국이 제 발등 찍은 격이다.


   석유의 역사는 오일 메이저의 역사이기도 하다. 1 차 세계 대전부터 1970 년대 초까지 세븐 시스터즈라 불리는 7대 메이저 석유회사가 세계 석유시장을 주도다. 당시 이들이 석유개발로부터 가져간 총 이득은 산유국의 3배에 달다. 세븐 시스터즈 뒤에 영국, 미국의 입김이 작용했기에 가능다. 1970 년대 초반부터 80 년대 중반까지 OPEC의 시대이다. 산유국들은 석유회사를 국유화하거나 석유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 상황을 이용하여 석유를 무기화하였다. 중동이 주도한 OPEC이 처음으로 원유 가격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이로부터 산유국의 국영 석유회사인 뉴 세븐 시스터즈가 태동하였다. 1980 년대 들어 원유 시장에 두 가지 획기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첫째 WTI(서부텍사스 경질유 인덱스) 시장 가격의 고시다. 이전까지는 7대 메이저 오일사나 OPEC이 원유 가격을 결정했다. 83 년부터 수요와 공급에 기반한 시장 가격이 형성되었다. 둘째 비 OPEC의 원유 생산량이 OPEC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원유 가격 결정권이 산유국에서 시장으로 넘어가 산유국들이 자국의 부를 지키기 위해 각자도생을 도모했다. 원유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려는 무한 증산 경쟁에 돌입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초창기 세븐 시스터즈들은 인수 합병을 거치며 지금의 5 대 메이저 오일사로 변모하기에 이른다.


   저자의 혜안 후반부(pp. 229 ~ pp.288)에야 본연의 빛을 발한다. 석유 헤게모니의 본질을 달러와 금융과 전략의 이름으로 통합하여 설명해준다.  2 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달러는 전 세계 기축통화가 되어 세계 무역의 결제통화로 인정받았다. 이는 전 세계가 쌓은 경제적 부대다수가 달러로 표시된 금융 자산에 투자되거나 예치됨을 한다. 달러표시 금융자산 중 대표적 안전 자산이 미국의 국채이다. 중동의 산유국들은 미국으로부터 체제를 보장받는 대가로 원유 결제 통화로 달러만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쌓인 막대한 오일 달러의 상당 규모가 미국채투자된다. 미국 입장에서는 저리의 금융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다. 자본의 투자 수익률과 조달 금리 차이만큼 산유국의 부가 미국 등 선진국으로 전이되는 금융의 리사이클이 작동하며 금융의 세계화가 진전하였다.  2008 년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 원인은 금융기관 간 서로 끝 모르게 얽힌 파생상품의 부실에 있다. 상당수 금융기관이 파산되자 추정할 수 없는 부실규모가 시장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킨 결과이다. 2008 년 금융위기는 금융 기관들의 탐욕이 부른 우연이이지만 금융의 세계화가 야기한 필연이기도 하다. 물론 그 매개가 원유였다. 한편 금융 위기는 거꾸로 원유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금융시장을 되살리기 위해 선진국 중앙은행이 저금리 정책을 폈고 셰일 오일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셰일 오일 산업이 번성하면서 201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은 사우디 아라비아를 능가하는 세계 1위의 산유국이 된다.


  오늘날에도 석유를 둘러싼 패권경쟁은 여전하다. 2014 년 6 월 100 $대를 유지하던 유가가 2016 년 1 월 20 $대로 급락하였다. 원인은 셰일 오일과 비 OPEC을 견제하기 위한 사우디아라비아의 무제한 경쟁에 있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집요한 경제제재는 이란 원유 수출을 금지함으로써 미국 셰일 오일의 아시아 시장 점유율을 제고키 위한 포석이기도 하다.


  달러와 금융과 패권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검은 황금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미국, 영국을 위시한 서구 제국주의의 폐해를 엿보지 않을 수 없다. AK47 칼라시니코프가 식민지, 제3 세계 민중의 저항정신을 표상한다면 원유는 제국주의가 숨기고 싶어 하는 수탈의 민낯이다. 검은 황금과 AK47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대척점에 서 있다.


  석유를 둘러싼 미래 패권 갈등은 어떠할까? 저자는 답을 주지 않았다. 내가 답하자면 아래와 같이 유추할 수 다. 모든 에너지는 경제성에 의존한다. 유가가 50 ~ 60 $ 이상에서 유지되는 한 인류는 석유를 대체할 에너지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태양광, 풍력, 수소, 하이드로레이트 등 다양한 에너지원에서 경제성이 확보되는 자원을 선택하여 확산시킬 것이다. 이미 유럽 상당 국가들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이미 20%를 넘어서고 있다*. 언젠가 석유가 지금 누리는 메인 에너지원으로서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 그러나 석유로부터 뽑아내는 비닐, 플라스틱, 산업용 소재 등 다양한 석유화학제품을 대체할 소재를 찾기란 현재의 기술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에너지원과 석유화학제품을 함께 내포한 원유의 모순이다. 이 모순을 풀어내는 자가 미래를 석권할 것이다. 에너지로서의 원유 가치는 점차 힘을 잃을 것이다. 반면 필수 소재로써 석유화학제품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다. 원유 - 정제 - 나프타/에틸렌 크래커로 분화된 기존의 생산방식이 COTC(crude oil to chemical), 원유에서 바로 석유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 이 리뷰는 2019 년 하반기에 작성되었다. 2020 년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리기 전, EU는 2050 년까지 630조 원을 투자하여 수소 에너지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리는 탄소 중립, 수소 경제 전환을 선언했다.


  석유 패권은 오늘의 우방이 내일의 적이 될 정도로 비정하다. 에너지 빈국인 한국 국제 와 환경 면밀하게 검토하고 장기적인 국가 에너지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저자가 근무하는 한국석유공사는 2009 년 말 자기 자본이 8.4조 원에 달할 정도로 알짜배기의 탄탄한 공기업이었다. 알토란이던 회사가 에너지 자주화라는 미명 하에 이 명박 정부가 저지른 무분별한 투자 2018 년 자기 자본이 7,600억 원으로 쪼그라들고 부채비율이 무려 2,287%로 급증했다. 의도적인 국부 유출이 의심될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부실화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자신의 업무나 전공을 주제로 책을 출판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다. 저자 역시 한국석유공사에 근무하면서 틈틈이 쌓은 지식과 직무 경험을 밑거름 삼아 저술하였다. 이런 류의 책들을 막상 읽어 보면 원론을 도식적으로 설명하거나 그다지 깊지 않은 지식과 전문 경험을 지루하게 동어 반복하여 실망한 적이 다반사다. 그러나 이 책은 문장도 매끄럽거니와 저자가 겪은 경험과 지식을 충분히 소화하여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모처럼 양서를 만나 감탄하며 무척 기쁘게 읽었다. 주저 없이 추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제3 세계를 언급하다 보니 즐겨 듣는 노래 두 곡을 링크했다. 미국 유전지대 텍사스 영유권을 놓고 미국 민병대와 멕시코군이 벌인 알라모 전투에서 희생당한 멕시코 연인을 노래한 세븐 스패니쉬 에인절과 체 게바라를 그린 하스타 시엠프레이다.


Seven Spanish Angels (출처 : 유튜브)


Hasta Siempre (출처 :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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