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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운설 Oct 07. 2022

독서의 자유

서평, 리뷰 의무로부터의 탈피가 주는 즐거움

이제부터 자유다. 당분간 시한을 지켜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생각에 하늘을 날듯이 가볍고 즐겁다. 사실 누가 강제하지 않은, 스스로 선택하여 비롯된 일이었으니 이런 내가 우습기도 하다. 


지난 3 개월간 예스24 서평단에 참여하여 8권의 서평, 리뷰를 썼다. 당연히 서평단을 모집하는 공고 중에 호기심이 일거나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신청했다. 10 권을 응모해서 이중 8 권이 서평단에 당선되었다. 예스24 서평단에 선정된 리뷰어들은 책 수령 후 2주 이내로 리뷰를 마쳐야 한다. 2주의 말미라는 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3 달  12주에 8 권을 리뷰하는 일정이었으니 나름 한 여름을 독서로 열일 한 셈이다. 그나마 이번 리뷰 일정이 과히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활발히 리뷰했던 19 년에는 한 주에 두 편 이상을 리뷰해야 했다. 읽고 싶다는 의욕이 과하여 욕심을 너무 부린 탓이다. 그때는 독서와 리뷰에 나를 갈아 넣었다. 6 개월을 혹사하듯 리뷰한 결과 20 년 이후로 2년 반 동안 예스 24 블로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물론 예스 24 블로그를 대신해 1 년 가량 브런치에 미친 듯 글을 올리긴 했다.


서평과 리뷰는 독서와 또 다르다. 일단 책의 주제와 내용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또한 책이 주는 시사점을 파악해야 한다. 이로부터 저자가 던지고 싶은 화두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설득할 수 있도록 풀어야 된다. 여기에 리뷰어가 주관적으로 느낀 다양한 감상들이 적절히 배치될 필요가 있다. 독서는 혼자만의 작업이다. 얼마만큼 숙지하고 외웠을지는 독자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다. 오직 타인과 대화를 할 때에만 이로부터 지식이 쌓였는지가 가늠된다. 그러나 서평•리뷰는 내 글을 읽을 독자들에게 리뷰어로써 책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조리 있고 논리적으로 납득시키는 작업이다. 비록 독자들의 목소리를 바로 들을 수는 없지만 화자가 되어 강평하는 일인 것이다. 홀로하는 작업이 아닌 만큼 가볍지 않은 의무가 있다.


그래서일까? 서평•리뷰에 몰두하다 보면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과정에 피곤함을 느끼게 된다. 막판에 몰릴 때는 마감일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만이 남기도 한다. 당초에 읽고 싶다는 동기는 사라진다. 독서를 하는 즐거움이 리뷰를 써야 하는 괴로움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이런 감정이 일 때면 한동안 독서를 멀리하고 서평•리뷰에서 해방되곤 한다. 독서에 대한 작은 투정이자 일종의 일탈인 셈이다.


고려대학교 김인환 명예 교수는 [타인의 자유]에서 독서를 이렇게 얘기한다. "독서는 언제나 새롭게 시작하는 창조적 놀이이다." 나는 저술이란 창작 활동은 지금껏 존재하지 않았던 사실들이나 이미 존재했지만 기존의 사실들을 재조합하여 그간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밝혀낼 때에만 의미가 있다고 여겨왔다. 그래서 창작이란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는 책을 쓰는 저자들이 무척 부러우면서도 이미 나와 있거나 누구나 익히 아는 바를 짜집는 재탕 삼탕 성격으로 다작하는 작가들을 경시하기도 했다. 십여 페이지만 읽어도 한 권의 내용이 익히 짐작되는 책을 읽는 건 정말 시간을 죽이는 일이다. 그러나 훌륭하게 쓰이고 내용이 충실한 양서를 읽는 재미는 

다른 어떤 취미보다 시간이 활처럼 지나가는 찰나의 즐거움을 일깨워 준다. 그래서 독서가 창조적 놀이인 거 같다. 


김인환 명예교수는  50 대에 이르러 "숙제처럼 책 읽고 글 쓰고 술 마시며 세월을 다 보내고 나니 이제는 가고 싶은 길이 어느 쪽이었는지도 잊어버린" 나이가 되었다고 자책했다. 김 명예교수와 마찬가지로 50 중반에 도달한 나는 서평단에 참여함으로써 어느 틈에 독서의 즐거움을 잃은 채 숙제처럼 책을 읽고 리뷰를 써대어 내가 읽고자 하는 방향을 잃었던 듯하다. 


김기협 교수의 [오랑캐의 역사]를 끝으로 당분간 서평단 신청을 하지 않을 예정이다. 의무와 질곡에서 벗어나 책이 주는 기쁨을 다시 맛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독서로부터 무언가를 발견하는 창조를 느껴보고 싶다. 마흔이 넘어서부터 미래 사회, 기술과 과학의 진보, 투자와 관련된 주제보다 동서양 고금의 고전을 원전으로 읽고 싶은 욕구가 컸다. 늘 '다음에 시간이 되면'하는 핑계로 차일피일 하염없이 미뤄만 왔다.


2019 년에 인간사랑 출판사로부터 몇 권의 책을 받았다. 정말 읽고 싶었으나 밀린 서평에, 브런치에 올리는 연재 글 작성에 미루고 미뤄 지금까지 서고 한 편에 곱게 모셔만 놓았다. 이제 그 책 들 중에 몇 권을 읽으려고 한다. 그러고 나서 한창 철 지난 해묵은 논쟁에 발을 들여놓을 작정이다. 수년 동안 준비가 잘 된다면 60 줄에는 노장, 주역사상과 마르크시즘이 갖는 철학적 공통분모에 대해 한 줄 남기고 싶다. 현존하지 않은 것을 창조하기에는 내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체계적 문헌고찰을 어찌어찌 잘 이끌어 내면 아직 일반화되지 않은 동양 사상과 마르크시즘의 상이한 시공간을 연결하는 미흡하나마 작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우선 꼽은 몇 권을 소개하자면

사서로 읽는 항우와 유방, 국어(좌구명 저), 유몽영(장조 저). 이 세 권은 작고한 신동준 선생이 남긴 역작들이다. 그다음으로는 자유론(존 스튜어트 밀), 동양사상과 마르크시즘,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 주체사상 비판 1(이진경 저) 순으로 읽을 계획이다. 이중 마음이 가는 책 위주로 서평•리뷰를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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