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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개미 Sep 24. 2020

001. 결정하다

안녕하세요,하다씨


올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루고 싶은 소망보다 ‘또 이렇게 한 해가 시작됐네’라는 시간의 흐름만 기억하며 새해를 맞이한 게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른다.

바벨탑을 쌓는 것도 아닌데 내 나이만큼이나 높아져가야만 하는 사회의 커리어 앞에 나는 두려움을 느끼며 살아왔다. 작년 이맘때쯤 나는 나에 대한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인가 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나이만큼 좋은 어른이 되어가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어느 날, 지금 같은 시간이 반복될 앞으로의 모습이 그려지자 눈앞이 깜깜해졌다.

어두운 밤, 안개 속에서 손을 허우적거리며 방향을 잃은 채 걸음을 옮기던 그때 나는 모든 걸 내려놓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백일 간 능동적인 나로 살아보고자 [하다]씨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다. 늘 약간 모자란 존재로 사는 나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다.

컴퓨터에 잠자고 있던 글들을 다시 들여다보며 작년과 다른 내가 그때와 같은 시점에 서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덧없이 흐른 시간과 함께 나의 결심은 사라졌고 채워진 페이지보다 빈 페이지가 많은 나만 덩그러니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결정했다. 다시 시작하기로.   


누구나 첫 순간을 떠올리고 싶어 한다. 내가 처음 내린 결정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발차기였을까, 살아있다는 생존의 울음이었을까, 아니면 배고프다는 신호였을까.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할 수 없는 첫 결정의 순간을 상상하다 오늘도 수많은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너무 당연하게 습관처럼 행동한 나머지 결정의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우린 매번 처음인 순간을 산다.
‘결정하다’라는 단어가 꽤나 무겁고 거대해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행동이나 태도를 분명하게 정함을 뜻하는 ‘결정’은 지금 이 순간에도 나와 함께하고 있다.

‘선택하다’라는 말보다 훨씬 단호하고 주관적인 느낌이 강해서 좋다. 결의까지는 아니지만 나의 의사가 명확해지는 느낌이다.
 
[하다]씨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작년 9월 16일의 글 속엔 나의 다부진 다짐이 쓰여있다. 지키지 못한 나의 결심이 부끄러운 지금의 마음을 감추고 싶지 않다.

다시 능동적인 삶을 살기로 결정한 오늘, 부끄러움과 두려움 설렘이 교차하는 첫 시작의 순간을 잊지 말아야겠다.
다시 시작하는 글쓰기의 끝맺음이 또 다른 시작의 첫걸음이 되길 바란다.

수많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움직임의 동사 [하다]

하다씨로 100  살아보겠습니다.  



190916/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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