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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개미 Sep 25. 2020

002. 피곤하다

안녕하세요,하다씨

작고 왜소한 언니와 달리 나는 상대적으로 통통한 존재로 살아왔다.
학교 야자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해 간식을 먹어도 살이 찌는 건 늘 내 몫이었다. 심지어 내가 먹지 않아도 언니보다 많이 먹었다는 오해를 받으며 자랐다. 체격이 다른 자매라면 둘중에 한명이 겪어야하는 흔한 슬픈이야기다.

주변 사람들에게 우리 집에서 체력이 가장 좋을 것 같은 사람을 물으면 아마 ‘나’를 지목할지도 모른다. 아빠를 제외하고 엄마와 언니랑 비교했을 때 가장 덩치가 좋기 때문이다. 나는 얼굴부터 몸까지 둥글둥글한 아빠를 닮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집에서 가장 나약한 존재가 ‘나’다.
피곤함을 10개의 척도로 나눈다면 나는 늘 경미한 수준에 속한다. 일에 강도가 강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일을 조정할 수 있는 나는 스트레스를 주는 상사도 존재하지 않는다. 매일 피곤한 몸을 깨워 만원 전철을 타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니 늘 사람에 치이는 언니보다는 덜 피곤하게 산다. 그럼에도 스트레스나 피곤함에 반응하는 몸의 면역력은 내가 가장 약하다. 특별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날을 새거나 새벽에 나가야 하는 일이 연속해서 있을 때면 입술에 바로 물집이 잡힌다. 입술이 간질간질한 느낌이 들어 살펴보면 볼록하게 부풀고 있는 수포를 발견하게 된다.
여행을 다녀오거나 지방으로 출장을 다녀와 쉬는 날이면 끊임없이 잠을 잔다. 오래 자면 머리가 아프다는 언니와 달리 자도 자도 자는 게 좋은 나는 계속 잔다. 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나에게 말하길 ‘나이가 들어서’라고 했다. 나도 모르게 쌓인 피곤이 이렇게 많을까 의심이 들기도 하지만 만성피로라는 것이 나이와 함께 찾아온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요즘이다.
조금만 피곤해도 밖으로 표출되는 증상을 발견할 때면 “엄마!! 이거 봐~” 자랑하듯 입을 내밀어 보여준다. 엄마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내가 생각해도 웃긴데 엄마는 얼마나 웃길까.

우리 집에서 가장 부지런한 사람은 엄마다.

제일 피곤한 엄마에게서도 드러나지 않는 피곤함이 나에게는 이렇게 쉽게 티가 난다는 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작은 일에도 나의 상태가 드러나는 내 몸 덕분에 엄마에게 어리광 부리기가 쉬운 것도 사실이라 비루한 이 몸뚱이가 싫진 않다. 좀 더 튼튼하게 살면 더 좋긴 하겠지만 말이다.
 
요즘은 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입술에 수포가 안 생길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방콕 생활에도 나는

피곤을 몸에 달고 살고 있다.  




190919/20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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