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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을 찾아라

2025년 울산마라톤 하프 도전기

by 조아

경주와 울산 사이에서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던 지난주, 심란한 마음이었지만 혹시 모를 변수에 대비하기 위해 월요일 이후 달리기 훈련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금 내 실력으로는 풀코스 완주 후 바로 다음날 하프코스를 달릴 수 없었기에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만 했다.


가족들과 고민을 나누는 도중 아이가 선약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해줘서 먼저 일정을 잡았고 신부님과 같이 완주하기로 한 울산마라톤만 참가하는 것으로 마음먹었다. 테이퍼링과 카보로딩을 한 상태라 피로감은 없었지만 달리기 훈련을 3일 이상 안 한 적이 없었기에 조금 불안하기는 했다.



대회 전날 급체하여 컨디션이 좋지 않아 일찍 잠들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 새벽 2시에 일어나 대회 준비를 했고 6시 30분에 출발하여 대회장에 도착했다. 꽉 찬 주차장에서 겨우 이중 주차를 하고 내리니 보슬비가 내렸다. 대회장에 도착하니 운동장 트랙은 이미 젖어 있었고, 신발 밑창이 미끄럽게 소리를 냈다.




미처 웜업을 하기도 전에 하프 코스 참가자 출발 안내방송이 나왔고 같이 참여한 신부님은 전화도 받지 않고 어디에 있는지 알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신부님은 대회에 처음 참여하는 것이라 모든 것이 생소하실 건데 연락이 되지 않으니 불안하고 초조해졌다. 신부님의 페이스메이커로 함께 하기로 했는데 신부님을 홀로 보낼 수는 없어서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애타게 신부님을 찾아보았지만 10통이 넘는 전화는 결국 연결되지 못했고 10km 참가자들이 출발할 때 그들 속에서 뒤늦은 출발을 했다. 만약 신부님께서 하프 참가자들이 출발했을 때 출발하였으면 레이스 도중 만날 수도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은 잿빛이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도 고요했기에 오늘은 기록보다 ‘조화’를 느껴보고 싶었다. 10km 참가자들의 출발 신호와 함께 수많은 발소리가 울산의 공기를 흔들었다. 러너마다 다른 호흡, 다른 걸음, 다른 리듬이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내 호흡에 귀를 기울였다. 웜업을 거의 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처음 5km는 몸이 무거웠다.



비에 젖은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와 차갑게 맴돌았고, 하프를 준비하며 쌓아온 훈련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10km를 지나면서부터는 익숙한 리듬이 찾아왔다. 무릎과 골반은 여전히 긴장되어 있었지만, 몸이 아니라 마음이 이끌었다.



‘조금만 더 가보자.’

누군가의 응원소리가 스쳐 지나가고, 옆에서 달리는 러너의 호흡이 내 리듬에 맞춰졌다. 그 순간, 달리기는 경쟁이 아니라 ‘함께 흐르는 일’이라는 걸 느꼈다.


비가 얼굴에 부딪칠 때마다 나는 ‘지금’을 더 선명히 느꼈다. 훈련할 때는 종종 ‘다음 구간’을 생각하지만, 대회에서는 오히려 ‘지금 여기’에 몰입하게 된다. 이 순간만큼은 나도, 기록도, 세상도 멈춰 있었다. 제일 뒤에서 열심히 신부님을 찾기 위해 계속해서 달렸고 12km 지점에서 드디어 홀로 분투하시는 신부님을 찾을 수 있었다.


이때 나는 반대편에 있었기에 신부님 곁으로 가기 위해 페이스를 올리며 달렸고 17km 지점에서 신부님 옆에 갔는데 신부님의 다리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속도를 늦을 수 없었고 신부님을 응원하며 앞으로 달렸다. ‘조화’는 완벽한 균형이 아니라, 흐트러짐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는 것. 숨이 가빠도, 리듬이 흔들려도, 마음이 앞으로 향하고 있다면 그건 이미 완벽한 조화였다.




결승선을 들어설 때, 전광판에 찍힌 시간은 2시간 19분. 예상보다 느렸지만, 이상하게도 만족스러웠다. 오늘의 목표는 ‘조화롭게 달리는 것’이었고, 나는 그 약속을 지켰다. 빗방울이 트랙 위에 고여 있었고 그 위로 내 발자국이 희미하게 남았다. 그 발자국은 기록이 아니라 ‘리듬의 흔적’이었다.



속도보다 중요한 건, 나의 호흡과 발걸음이 어긋나지 않게 이어지는 것. 그리고 신부님과 함께 결승선을 통과했다는 것에 만족한 대회였다. 야속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울산의 빗속에서 나는 그 단순한 진리를 다시 배웠다. 오늘의 달리기는 ‘기록을 남긴 날’이 아니라 ‘내 리듬을 회복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그 리듬은 다시 나를 다음 길로 이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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