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은 계획일 뿐
지극히 대문자 J인 나는 계획을 세웠으면 계획대로 실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오늘은 훈련 계획대오 움직이지 않았다 원래 게획에 따르면 ‘휴식’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가만히 있지 못했다. 추석 연휴이기도 했고 시간적 여유가 있어 전날 22km를 달린 피로가 남아 있었지만, 그 피로가 오히려 나를 이끌었다.
“조금이라도 달리자. 아주 천천히라도 괜찮아.”
그 마음 하나로 운동화를 꺼내 들었다.
새벽부터 내리던 비가 그치고, 공기엔 촉촉한 냄새가 남아 있었다. 젖은 흙길 위로 낙엽이 고르게 흩어져 있었다. 비가 닦아준 길은 마치 새로 태어난 듯 깨끗했고, 그 위를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마음속 먼지도 조금씩 씻겨 내려갔다.
오늘의 달리기는 ‘훈련’이 아니라 ‘회복’이었다.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괜찮았고, 기록을 의식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오히려 느리게 움직일수록 호흡이 깊어지고, 생각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몸이 보내는 미세한 신호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쉬어가는 것’은 단순히 멈추는 일이 아니라, 움직이면서 나를 되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달리기를 하면서 배운 것은, 휴식도 결국 달리기의 일부라는 것이다. 멈춤이 있어야 다시 달릴 수 있고, 느림이 있어야 속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6km의 회복 달리기를 마쳤을 때, 몸의 피로는 여전했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 땀과 함께 묵은 생각들이 흘러내리고, 대신 고요함이 내 안으로 들어왔다. 이런 날엔 숫자보다 감정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오늘 달리길 잘했다.” 그 한마디면 충분했다.
달리기를 하다 보면 어떤 날은 성취가 있고, 어떤 날은 위로가 있다. 오늘은 후자였다. 비가 그친 산책로, 젖은 나무 향, 느린 발걸음. 그 모든 것이 하나의 문장이 되어 마음속에 새겨졌다.
달리기는 언제나 나에게 말한다.
“조금 쉬어도 괜찮아, 하지만 멈추지는 말자.”
오늘의 기록은
Time 43:53 / Distance 6.01km / Pace 7’18”.
숫자보다 깊게 남은 건, ‘회복’이라는 단어의 진짜 의미였다. 쉬는 게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한 준비.
그게 오늘 달리기의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