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이란 분명한 목적
러너에게는 '거리'와 '시간'이란 중요한 기준선이 존재한다. 정해진 거리와 시간 속에서 누가 먼 거리를 보다 빨리 갈 수 있느냐고 귀결되는데 이는 1km를 몇 분만에 달리는지를 나타내는 속도 단위인 '페이스'라는 것이 중요하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난 페이스가 빠른 러너는 아니다. 대신 강한 의지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로 완주에 가장 큰 의의를 두는 러너이다.
지난주 울산마라톤 하프 코스를 완주하고 내심 기록에 대한 아쉬움이 없었다면 거짓이겠지만 완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하며 JTBC 서울마라톤 풀코스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30K 거리주를 두 번밖에 못했다는 것이 조금 걱정되기도 하지만 무릎이나 발목 통증도 없었고 며칠간 나를 괴롭혔던 골반 통증까지도 느껴지지 않아 준비한 페이스대로 달린다면 처음 도전하는 풀코스 대회이지만 충분히 완주할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속도보다는 거리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러너이기에 기록이 좋지 않지만 매일 달리기 훈련을 한다면 언젠가는 기록도 자연스럽게 좋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가 언제인지 알 순 없지만 반드시 올 것이라 믿으며 속도보다는 거리, 거리보다는 부상 없이 건강하게 완주하는 것을 목표로 달리기 자체를 즐기려고 한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달리기는 점점 일상의 즐거움이자 하루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어제 부산바다마라톤에 참가했다. 다음 주 JTBC 서울마라톤 풀코스 도전을 앞두고 있어 고민을 많이 했는데 동호회에서 모두 참가하는 대회라서 응원도 할 겸, 합법적으로 광안대교 위를 달리고 싶었다. 사실 금요일 오후 부모님을 모시고 원주에 다녀왔던 터라 장거리 운전으로 인한 피로감이 있었지만 약속은 지킬 때 참된 의미를 발휘하기에 무리하지 않고 즐겁게 달려고 했다.
하지만 광안대교를 지났던 여느 대회와는 달리 교각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을 달려가는 것이 아닌, 광안대교 상판 위에서 시작하는 대회라 내리막길과 평지가 많아 기록 세우기 좋은 'PB맛집'이란 이야기를 듣고 내 마음속에는 기록에 대한 욕심이 조금씩 커져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참가했던 마라톤 대회 기록이 좋지도 않지만 나는 기록에 연연하는 러너가 아니기에 안심했으나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것을 보면 주변에서 PB(Personal Best) 세워야 한다는 말에 현혹되는 것 같았다.
기록을 세우면 좋겠지만 혹여 부상을 입어 다음 주 풀코스에 참가하지 못한다면 이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기에 기록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기로 했다. 지금 나에게 중요한 목표는 JTBC 서울마라톤 풀코스를 5시간 안에 완주하는 것이라서 이것에 집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모든 대회에서 기록을 세우려고 한다면 달리기의 본질적인 가치가 퇴색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달리기는 즐거움 자체이기에 기록에 연연하게 된다면 그 즐거움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부산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광안대교는 첫 개통식을 제외하곤 도보 이용이 제한되지만 가끔 음주 상태에서 교각에 올라 난동을 부리는 경우도 있지만 차량 통행이 많아 그마저도 쉽게 하긴 어렵다. 마라톤이나 걷기 대회 때만 합법적으로 광안대교 위를 걷거나 달릴 수 있기에 광안대교 위를 달리는 마라톤 대회라면 코스에 관계없이 무조건 신청한다. 광안대교 위를 달린다는 사실만으로 참가비 이상의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광안대교 위에서는 저 멀리 부산 앞바다 너머의 세상이 보일 수도 있다는 기대감으로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바라만 보아도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지는 마법의 공간이다. 부산을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이를 눈치챘는지 북적이는 사람으로 광안리에 가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나는 언제나 이곳에 서면 수평선 너머의 세상이 궁금해지고 그곳을 여행하는 꿈을 꾼다. 이렇게 기분 좋은 상상만으로 오늘의 대회는 진정한 ‘펀런(Fun run)’이 되기 충분하다.
나의 달리기 생활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한 지인이 10km 대회를 참가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무엇 때문에 10km 마라톤에 참가하느냐”라고 물었다. 하프 코스 완주 이후 당연하게 풀코스에 도전하고 알고 있었기에 이런 궁금증이 생겼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마라톤 대회에서 거리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대회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참가했는지가 중요하며, 부산바다마라톤에서는 광안대교 위에서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해 참가했다.
기록보다는 즐거움에 도취해 결승선까지 도착했고 다음 주 JTBC 서울마라톤에서 나 자신과 싸우며 묵묵히 달리고 있는 나를 상상했다. 어떤 결과가 만들어질지 아직 모르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 완주할 것이다.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나만의 페이스로 나만의 달리기를 완주할 것이다. 춘천마라톤에 참가한 러너들의 영상을 보면서 나도 그들처럼 그 어떠한 이유와 핑계 대신 그저 나 자신에게 솔직하고 담백한 레이스를 펼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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