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도시를 만든다
처음 창원에서 일하게 된 것은 20년 전이다. 나는 서울 본사로 발령이 날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런데 사령식 당일, 나를 향한 묘한 시선을 느끼는 순간 직감했다. 뭔가 달라졌다는 것을.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당시 재직 중이던 한 임원이 “지역 출신은 지역에서 근무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그 말 한마디에 나의 근무지가 바뀌었다고 했다. 황당했지만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당시 나에게 창원은 명절에 스쳐 지나가기만 했던 도시였고, 불만의 대상인 마산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그때는 통합 이전이라 아직 ‘창원’이 아니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환승해 다시 버스를 타고 마산으로 향했다. 왕복 4시간이 넘는 출퇴근을 6개월 동안 이어갔다.
같은 사무실로 발령받은 동기 4명 중 한 명은 진해가 집이라 통근했고, 나머지 세 명은 마산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나는 자취를 선택하지 않았다. 부모님도 원치 않으셨고, 나 역시 군 전역 후 곧바로 입사한 터라 혼자 사는 삶이 그리 당기지 않았다.
시간이 아깝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그렇다. 하지만 익숙한 공간에서 잠을 자는 안정감이 더 컸다. 낯선 도시보다 익숙한 집이 나를 지탱해주었다. 지금이라면 다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20년 전과 지금은 시대도, 도시도, 나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당시의 나는 창원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도시의 한 부분만 보고 전체를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요즘 창원 곳곳을 다니며 “이런 곳이 있었나” 놀랄 때가 많다. 그때는 몰랐던 얼굴들이 지금은 또렷하게 보인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주변에 창원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이다. 남편 직장을 따라 창원으로 내려왔던 이들. 20년이 지난 지금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고, 퇴직 후에도 창원에 남아 삶의 터전을 꾸린 사람도 있다.
도시의 역사는 짧지만, 그 안에 쌓인 사람들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그리고 그 시간의 중심에는 늘 ‘일자리’가 있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그 시절에는 “남편 따라 창원 간다”는 선택이 더 자연스러웠다. 공업도시였던 창원에서 타 지역에서 매일 출퇴근한다는 것은 비용과 정서 모두에서 쉽지 않았다. 근무지를 따라 이주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대였다.
지금은 서울에 집을 두고 지방 공기업으로 매일 전세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직장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 하나의 질서였다.
계획도시로 태어난 창원은 이제 중년의 도시에 접어들었다. 여전히 일자리가 많고, 여전히 매력적인 도시다. 인근 부산과 비교해도 안정적인 일자리 기반은 창원의 큰 장점이다. 배드타운이 되지 않기 위해 도시에는 반드시 일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개인의 의지로 해결되지 않는다. 한 기업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다. 지방 정부의 정책과 산업 구조, 기업의 선택이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기업이 기숙사를 제공하고 복지를 확대하는 배경에도 결국 도시의 산업 생태계가 자리하고 있다.
일자리는 도시의 심장과도 같다.
그 박동이 멈추면 사람은 떠난다.
자신의 근거지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특히 수도권에서 내려온 사람들에게는 말투부터 문화까지 모든 것이 낯설었을 것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경상도의 말투만큼 함축적이고 정겨운 표현도 드물다는 것을. 한때는 이해하지 못해 웃음 섞인 당혹감을 안겼던 “가가 가가가”라는 문장이, 이제는 따뜻하게 들린다.
수도권 이주자의 낯선 눈물과 적응의 시간이 창원의 성장 속에 조용히 녹아 있다.나는 그 시간을 기록하고 싶었다.
도시는 건물로 자라지 않는다.
사람의 선택과, 그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 일자리로 자란다.
그리고 나는,
그 선택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