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이 캔버라를 닮게 된 이유
창원에서 근무한 지도 어느덧 두 달이 지났다. 처음에는 출퇴근이 가장 큰 과제였다. 익숙하지 않은 동선, 낯선 풍경, 새로 조정해야 할 생활 리듬. 그러나 사람은 결국 적응한다. 이제는 마치 오래전부터 이 도시에서 일해 온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창원의 아침을 맞는다. 무엇보다 부산과 달리 심각한 교통 체증이 없다는 사실이, 하루의 시작을 한결 부드럽게 만든다.
내가 오가는 길은 창원의 이중적인 얼굴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한쪽은 공업단지, 다른 한쪽은 주거지다. 같은 공간 안에 서로 다른 정체성이 또렷하게 나뉘어 있다. 그 경계를 지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도시는 우연히 만들어진 곳이 아니구나. 분명 누군가의 설계와 의도가 깃들어 있구나.
창원은 대한민국 최초의 계획도시다. 동시에 거대한 국가산업단지를 품은 대표적인 공업도시이기도 하다. 2010년 마산·진해와 통합되며 ‘창원특례시’로 재탄생했고, 인구 100만에 이르는 거대 도시로 성장했다. 공업도시이면서도 바다를 품고 있고, 전통 상권의 색채를 간직한 마산과 군항도시 진해의 역사까지 함께 품는다. 서로 다른 시간이 겹쳐진 도시, 그것이 오늘의 창원이다.
1970년대, 국가는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며 경제 도약을 꿈꾸고 있었다. 그 거대한 흐름 속에서 창원은 산업을 위한 도시로 기획되었다. 당시 ‘도시를 계획한다’는 발상 자체가 낯설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창원은 철저한 설계를 바탕으로 탄생했다. 모델은 호주의 캔버라였다.
왜 하필 캔버라였을까. 캔버라는 행정 중심 도시이면서도 녹지와 주거 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대표적인 계획도시다. ‘숲 속의 수도(Bush Capital)’라는 별명처럼, 자연을 도시 구조 안에 끌어들였다. 창원 역시 자급자족형 산업도시와 쾌적한 주거 환경을 동시에 구현하고자 했다. 산업과 삶이 충돌하지 않도록, 기능과 휴식이 균형을 이루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 상징이 바로 창원대로다. 전국 최장 직선도로로 알려진 이 도로를 경계로 남쪽에는 공업단지, 북쪽에는 주거 및 행정 구역을 배치했다. 공해를 최소화하고 생산 효율을 높이기 위한 구조였다. 산업은 돌아가되, 시민의 삶은 보호받도록. 도로 하나에 담긴 도시철학은 단순한 교통 인프라를 넘어선다.
또한 도시 곳곳에 대규모 공원과 광장을 배치해 녹지율을 끌어올렸다. 공업도시가 갖기 쉬운 삭막함을 완화하고, 사람의 숨결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려는 선택이었다. 지금도 창원터널을 지나 가음정으로 들어서는 길에 늘어선 가로수들을 보면, 이 도시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들여 준비되었는지 체감하게 된다. 인위적으로 심은 나무임에도,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존재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도시는 단순한 건물의 집합이 아니다. 누군가의 의도와 가치관이 층층이 쌓인 결과물이다. 창원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산업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살아가는 의미’를 지키기 위한 삶의 공간이기도 하다. 한쪽에서는 생산 활동이 이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연 속에서 각자의 하루가 흘러간다.
이 설계의 조각들이 모여 대한민국 최초의 계획도시 창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도시는 지금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