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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Oct 06. 2023

글쓰기라는 실력

학력의 시대는 끝났고 이제 실력의 시대가 왔다.

 초등학교(국민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12년을 투자하여 대학교 입학이라는 인생의 큰 목표를 두고 살아왔었다. 소위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내신을 잘 관리하고, 수능을 잘 봐야 했다. 혹여 수능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제 실력보다 못하게 되면 12년의 시간을 날림과 동시에 한 번의 도전을 다시 해야 한다.


 나는 12년의 시간을 투자하여 남들과 다른 학벌을 가지려고 노력했고, 대한민국 교육계에서 인정하는 SKY 간판은 얻지 못했다. SKY 학벌이 있었으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 수도 있었겠지만, 직장 생활을 하면서 공부 머리와 일 머리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회사가 요구하는 인제상은 학벌에 따르지 않는다는 것도 직접 체험하였다.


 남과 비교하여 더 좋은 학벌을 얻기 위해 어릴 적부터 사교육을 하며 남들보다 선수학습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더 높은 점수를 얻고자 한다. 요즘은 유치원에서 의대진학반이 있다는 농담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녀교육에 대한 나의 관심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할 수 있다면 좋은 학벌을 가지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학벌과 학력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학벌과 학력이 배움에 대한 의지와 자세를 대변해 준다고 생각한다. 학령인구 감소 추세 속에 내가 대입을 준비하던 때처럼 치열한 경쟁률을 보이지는 않기에 점점 지방 사립대학교는 존폐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는 지경이다.


 하지만 이제 학력의 시대는 끝났다. 특성화 전공으로 대학과 학과의 차별성을 추구하고 있지만 엄청난 장학금 혜택이 있어도 학생 스스로 학업에 대한 의지가 없다면 말을 물가에 끌고 가는 것에 그칠 것이다. 입시만을 위한 교육 체계 속에서 대입 이후 목표를 상실하는 경우도 있으며 나와 같이 대학 졸업이 학업의 끝이라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학점을 잘 준다는 과목을 수강하기 위해 수강신청 전쟁을 하고 내가 선택했던 과목을 배우면서 점차 나는 내 학력의 실체를 알 수 있었다. 고등학교 교과 과정과는 달리 대수학, 공업수학을 배우면서 내가 배운 미분, 적분은 수학의 일부분이라 느낀 것도 이과 공부를 하면서 나는 수학의 지극히 일부분만 알면서 마치 수학을 잘한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또한 석박사 과정과 같이 전문성을 더해주는 고급 교육과정이 아닌 이상 대학교 졸업장이 학력을 대변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심지어 일부 대학에서는 무전공 교과 체계를 준비하면서 기존의 전공별 학과별 교과 시스템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학 교육의 가치를 준비하고 있기에 학부의 의미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심지어 나는 의대 진학에 실패하여 정말 가고 싶은 학과는 아니었지만 의전대 진학에 유리한 전공을 선택하였고 주도적인 학습이 아닌 남들이 다 하니까 따라 하는 수준으로 전공 수업에 임했다. 당연히 전공에 대한 관심보다는 학점이 우선이었으며 족보와 교수님의 성향 파악에 더 능한 자질을 보였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나는 전공 분야에 있어서 실패한 사람이고, 지금도 전공을 살리지 않고 전공과 상관없는 직업을 가지고 일하고 있다. 전공에 맞는 직업을 구하는 것이 무조건 좋다고 할 수 없지만, 전공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직업에 대한 고민도 전공을 배우면서 함께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하고, 어느 수준의 학력을 가져야 졸업 후 취업을 할 수 있고 미래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에 부합할 수 있을까 생각해 분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어떤 것이 가치를 인정받을지 모르지만 지금과는 달리 개인적이고 독특한 것이 인정받고 가치에 높아질 것이라 예상한다.


 그래서 주입식, 암기식이 아닌 창의성 기반의 학습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 나의 전공은 거의 대부분 암기를 바탕으로 방대한 양의 지식을 흡수해야 했기에 전공에 흥미를 잃었던 나는 전공선택이 아닌 전공 외 수업을 찾아서 들었다. 주로 들었던 분야는 문학 수업이었는데 심리학과 인문학 수업이 많았다.


 졸업 학점을 채우고 전공에 대한 일탈이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문학 수업은 재미있었다. 교제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교수님의 다양한 이야기를 들으며 연계되는 수업은 100장짜리 보고서를 써야 하기도 했지만 틀에 박히지 않은 수업 진행은 전공 수업에서 느끼지 못하는 쾌감을 주었다.


 이런 일탈의 경험이 훗날 나의 샐러던트 삶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두 번째 전공 선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일부 외어야 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이해를 바탕으로 나만의 해석을 도출해야 하는 새로운 방식을 익히는 과정이 뼛속까지 이과인 나를 새롭게 하고 있다.


 평생 교육에 대한 욕심이 있는 나에게 요즘 글쓰기만큼 배움과 즐거움을 주는 것은 없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 위에 무엇인가를 쓰는 것으로 채워가는 행위는 때론 하얀 노트북 화면을 검은색 글자로 채우는 것으로 대체되기도 하지만 결국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은 똑같다.


내 안에 있는 지식의 단편들을 원재료로 하여 만들어지는 글쓰기라는 나의 생산물은 나로 하여금 생산자의 삶을 살게 해주는 일상의 흔적이자 결과물이다. 매일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는 점만 보면 나는 공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생산물이 똑같은 것이 아닌 매일 다른 것을 만들고, 심지어 오늘 하루에 만들어 내는 것도 서로 다른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나는 유일무이한 창작물을 만들고 있다. 이런 것만 보더라도 학력이 주는 것이 아닌 글쓰기가 주는 생산물이 나를 보다 창의적이고 유일한 존재로 만들 수 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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