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감사를 낳는다.
최근 교통사고가 났지만 나와 가족들이 큰 부상 없이 무탈한 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드리고 있다. 사고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막상 사고 나면 그 사고의 원인을 찾고 사고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파악하려고 한다. 물론 재발을 막기 위한 조치로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누구나 사고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또한 누구나 사고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어떤 사람도 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기에 항상 조심해서 다니는 방법 밖에 없고, 사고를 당했을 때 내가 가해자가 될 경우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앞으로는 좀 더 조심해서 운전하고 누군가가 나에게 접촉 사고를 내면 어젯밤 그 현장을 잊지 말고 나도 그렇게 친절을 베풀어야겠다. 꿀벌 카스텔라를 추천해 준 제과점 사장님께도 감사하는 마음이다. 합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했으니, 용서를 받아본 사람, 배려를 가까이에서 느껴본 내가 해야 할 몫이 남았다.
마더홍작가님 <감사는 꿀벌을 타고> 중
나도 아파트에 살 때 주차를 하다 이웃 주민의 차 앞 범퍼를 살짝 글은 적이 있었다. 야간이었고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기에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운전 미숙으로 스크레치를 냈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분도 말 안 했을 수 있는데 연락 줘서 고맙다고 하셨고 나도 내 책임이 있으니 원하시면 보험처리를 해드린다고 말씀드렸다. 컴파운드로 지우면 흔적을 찾아볼 수도 없는 스크레치였기에 신경 쓰지 않고 잊고 있다가 범퍼교체비 56만 원을 청구한다는 보험사의 연락을 받고 깜짝 놀랐다. 스크레치였는데 범퍼를 교체한 그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서 연락을 드렸지만 자신이 깔끔한 성격이라 스크레치를 견딜 수 없어서 교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100% 내 과실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물론 그 차도 주차구역이 아닌 곳에 주차를 했던 사실에 대한 과실 여부와 과도한 보험 청구에 대해 소비자 보호원에 접수하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몇 달이 지나고 우연히 내가 스크레치를 낸 차를 보았는데 운전적 문짝이 찌그러져 있었다. 누구의 과실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분은 깔끔한 성격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판금, 도색까지 하면 백만 원 이상 소요되는 비용이니 쉽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돈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기준과 법을 따져가며 대응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겠지만, 과도한 청구를 했던 그 사람은 더 큰 흔적이 남겨진 차의 상태를 마주함을 보면서 만약 별 일 아니니 좋게 이야기해서 컴파운드로 닦았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했을까 생각해 본다.
감사는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그 무엇 이상이다. 자신을 낳고 키워준 부모님, 자신을 가르쳐주신 선생님 등 감사드려야 할 대상은 차고 넘친다. 자신이 받은 것에 대해 감사를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감사할 줄 안다. 그리고 감사를 베풀 수 있어서 감사는 감사를 낳게 되어 감사가 주변으로 흐르고 언젠가 다시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이것이 감사의 선순환이다. 감사의 선순환이 넘치는 세상은 얼마나 따뜻할까 상상해 본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완전 자율주행을 해서 이런 가벼운 접촉사고가 생기지도 못할 것인데 지금은 내가 피해자이지만, 언젠가 나도 가해자가 될 일에 대해서는 관용과 이해의 자세를 보이며,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