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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un 30. 2023

활자 본색

조선이 금속활자에 진심이었던 이유

구텐베르크의 활자 혁명으로 유럽은 빠른 속도로 문명사회로 변했으며, 당시 황실과 귀족, 소수의 종교지도자들만이 알고 있던 지식을 대중화하는데 공헌했다. 특히 라틴에로 기록된 성경이 자국어로 번역, 출판되어 보급됨으로써 황제와 동등한 교황과 교회의 권위는 점점 추락하게 되었다. 이런 구텐베르크보다 빠른 시기에 금속 활자를 만든 나라는 고려이며, ‘직지’라고 불리는 직지심체요절로 고려 우왕, 1377년에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이다.


 인사동에서 땅을 파던 중 발견된 항아리 속에서 동국정훈식 표기법으로 사용된 금속활자들이 있었다. 역사적 사치가 있는 금속활자가 항아리 속에 있다는 것은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보관 중이었거나, 사용하지 않는 것이기에 따로 모아둔 것으로 추측하지만 우리에게는 그 어느 것보다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의 발견이었다. 금속활자를 처음 발명한 고려왕조보다 더 금속활자에 진심인 조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몽골의 침입으로 모두가 힘들어할 때 불경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려는 염원으로 만든 팔만대장경은 초조대장경을 뛰어넘는 목판인쇄술의 백미이다. 하지만 금속활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뒤틀리거나 썩고 벌레가 먹는 치명적인 약점과 인쇄할 때 나뭇결도 같이 보이는 목판인쇄의 아쉬운 점을 극복하고 오탈 자나 보수가 필요할 때 전체를 교체하는 것이 아닌 그 부분만 교체하는 편리함을 주는 금속활자를 통해 ‘기록의 민족’이라는 토대를 만들었다.


 초원에서 전해진 고조선의 청동 제련 기술이 더욱 발전된 조선시대에는 당시 귀한 구리를 가공하여 섬세한 붓 터치까지 표현하는 다양한 활자체를 개발하는 등 금속활자의 아름다움을 승화시킨 문치주의 시대이기도 하다. 선비로서 성리학적 이념을 생활 모든 곳에서 실현하고자 했던 그들의 행동은 금속활자 속에서도 나타나며 지식이 담겨 있는 책의 편찬과 기록을 뛰어넘어 그 무엇을 금속활자에 숨겨 놓았다. 그것이 금속활자의 진정한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직지’의 발견으로 서양의 인쇄혁명을 이끌어낸 원동력으로 조심스럽게 추정되는 우리의 금속활자 기술은 단순히 최초와 최고라는 수식어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 최초를 넘어 금속활자의 목적을 개인적인 범위에 머무르는 과거의 실수를 거울삼아 우리만의 기술을 세상을 위한, 모두를 위한 기술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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