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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ul 10. 2023

반구대 이야기

새김에서 기억으로

인간의 기억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아무리 기억하고 싶어도 자연스럽게 망각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영원한 삶을 염원했던 것만큼 영원히 기억하기를 간절히 바랐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망각의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결과 언어가 없던 때에는 그림으로 기억을 기록했다.  영원히 기억할 수 없는 인간의 뇌처럼 그토록 염원했던 기록도 영원히 기록되지 않고 쓰이고 사라졌지만 인간은 더욱 기록을 갈망하였다. 크고 단단한 것에 새기려고 한 이유도 이런 갈망 때문이라 생각한다.


 언어가 발달되기 이전인 선사시대에는 모든 것이 풍족하지 않았다. 항상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채집과 수렵을 해야 했으며, 특히 수렵은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위험천만할 때도 있었고 항상 사냥에 성공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인간 친화적인 개체는 길들임을 통해 가축화하기도 하였다. 소, 말, 개나 고양이 정도는 가축화하였지만 이들은 농경을 위한 도우미였지 식량의 대상은 아니었다. 또한 함께 생활하던 이들을 재물로 바치는 것을 제외하고 죽이는 일은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언어가 발달되기 전에 그림으로 표현된 존재는 당시 사람들이 본 것을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생전 본 적도 없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당시 생존이 가장 우선순위로 치부되었던 문화적 통념으로 볼 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예술적 활동도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된 후에나 할 수 있을 정도로 선사시대 사람들에게는 배고픔은 생존의 문제였다. 환동해권의 영역에서 살아왔던 그들에게 바다는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공간이자, 미지의 세계이며 동시에 탐구의 세계이기도 했다. 바다에서 조개와 해초류를 채집하고 어류를 사냥하며 배고픔을 해결했지만 생존에 대한 크나큰 욕망은 점점 커져만 갔다.


 책임져야 할 가족이 늘어나면서 더 큰 사냥감을 찾아야만 했고 어느 날 해안가에 죽어 있는 고래의 사체를 보고 더욱 바다를 동경했을 수도 있다. 자신이 몸을 넘어 집보다 더 큰 고래가 주는 고기와 지방, 가죽과 뼈는 항상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던 환동해권 세력에게 풍요로움을 주는 바다의 선물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해신당을 세우고 바다를 동경했고 바다의 동물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당시 그들의 눈에 보였던 수많은 동물들을 바위에 기록했고, 바위에 있는 그들이 항상 인간에게 풍요로움을 가져다주기를 염원하며 바위에 빌었고 아들을 낳기를 바라는 남근석과 동일한 의미의 신앙이 바위에 새겨진 것이다.


 환동해권 속 바다와 민물이 만났던 태화강의 지류인 대곡천은 공룡 발자국이 발견될 정도로 선사시대 이전부터 먹이가 풍부해 사람과 동물이 살기 좋은 풍요로운 지역이었다. 근처 천전리 각석에 남겨진 선사시대의 암각과 신라시대의 명문이 세대에 세대를 더해가며 새겨졌듯이 반구대의 암각화도 특정 개인이 아닌 집단적으로 일회성이 아닌 다회성으로 세대에 거쳐 모두의 염원이자 종족의 생존을 기원하며 바다와 육지의 동물을 그렸을 것이다. 단단한 바위에 새겨진 그들의 염원은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도 흔적을 남겨 영원한 기억을 위한 그들의 노력을 전하며, 영생 이전에 영원토록 기억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바위에 새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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