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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ul 21. 2023

전쟁과 군복의 역사

군복이 수의가 되는 일이 없도록

대한민국 남자에게는 국방의 의무가 있고 신체검사를 받은 후 검사 결과에 따라 현역병, 보충역 등 소정의 기간 동안 신성한 군 복무를 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기피할 수도 있겠지만, 한국 땅에서 살아갈 계획이 있다면 그냥 군 복무를 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청년‘이라고 불렸던 한 유명 가수가 개인적인 사정을 떠나 공개적인 자리에서 군 복무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결과적으로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 사정이 없는 사람은 없기에 자세한 그의 사정은 모르지만 법적 소송까지 하며 아름답지 않은 중년이 된 그의 모습이 안쓰럽다. 이런 표현이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나는 군 복무를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군 복무 중에 만난 20대 청년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전혀 와보지 않았던 곳에 모여 함께 먹고 자며, 훈련하고 2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국가에서 정한 군 복무 시간이 있기 때문에 입대한 순서대로 저대를 했고 자랑스러운 군 복무를 마치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내가 만난 그들은 누구도 원해서 군대에 온 사람은 없었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했고 입대 전보다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육체적으로도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아직도 잊지 못하는 K라는 친구는 작은 키에 초고도비만의 상대로 입대하였지만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며 부단히 노력한 결과 30kg이 넘는 몸무게를 감량하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군대라는 폐쇄되고 계급에 따른 지위 고하가 존재하는 집단 속에서 적응하고 자신을 맞추어 가는 길만이 군대에서 생존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나에게 군대는 아주 익숙하다. 직업군인이셨던 아버지를 보면서 전투모의 빛나는 계급장을 나도 달고 싶었고 군인가족들만 사는 관사와 아파트에서 살면서 군부대 연병장은 일과 시간 이후 나의 운동장이자 놀이터였다.  전시를 위해 만들어 놓은 포상(砲床)에서 술래잡기를 하면서 그 용도로 모르고 지냈던 유년 시절의 기억이 포상이란 공간의 무서움도 잊게 만들어 주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매형도 현역 군인이고 아버지, 매형, 나의 병과도 똑같다. 매형과 나는 군번이 얼마 차이 나지 않아서 사용하던 장비가 비슷하지만 나는 견인포를 사용하는 야전포병이었다. 지금은 해체되고 없어진 부대명을 다시금 떠올리며 포병사격을 위해 그 무거운 화포를 견인해서 방열하던 때가 그립기도 하다.


 나는 현재의 디지털 무늬 전투복이 아닌 속칭 개구리 무늬 전투복을 입었다. 다른 용도의 군복도 있었지만 주로 전투복을 입었고 항상 단정한 차림의 옷매무새를 해야 하는 군인 복장 규정에 따라 행동하였다. 군복은 전시 피아를 구별하는 1차적인 실별을 하며 동시에 전투 상황에서 나를 지켜주는 보호막 역할을 한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군복의 가장 큰 의미는 바로 ‘수의’라는 것이다. 전투 상황에서는 생존과 죽음이 혼재된 공간이기에 평소 철저한 훈련으로 준비된 상태라 하더라도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그래서 전투 당시 입고 있던 군복이 수의가 되며 혹여 실별이 불가능할 경우를 대비해서 군번줄을 착용해야 하는 것이다. 아직도 가지고 있는 군번줄을 볼 때마다 살아서 2개의 군번줄을 보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군인을 보며 ‘군바리’라고 낮춰서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군인은 일종의 국가와 국민을 위한 서비스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장 찬란한 20대 청춘의 시절, 꿈을 뒤로하고 군 복무를 선택한 그들은 그 누구에게도 하대를 받거나 낮춰서 불리면 안 되는 존재이다. 더욱이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국방 서비스의 실천자로서 감사함을 느껴도 부족하다.


 최근 뉴스에 휴가 나온 군인들이 먹은 30만 원 정도의 음식값을 대신 계산해 준 사람이 화재가 되었다. 나는 이 분처럼 할 수는 없지만 군인을 볼 때마다 아무런 사고 없이 들어왔을 때의 모습 그대로 집으로 복귀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이 땅 위에 다시는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한 방위태세를 구축하여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국가 안보에 동참해야 함을 느낀다. 군복이 수의로 사용하는 일이 없도록 나의 자리에서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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