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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Aug 06. 2023

조선 왕들은 왜?

그들도 불완전한 사람이었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중고등학교 한국사 시험의 단골문제인 조선왕들의 선서를 외우기 위해 노랫말까지 만들며 부단히 노력해서 아직도 외우고 있다. 조선 왕들이 재위한 순서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재위 시간 동안 일어난 사건들이 사회에 주는 영향과 그들의 업적이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현재를 사는 나에게는 조선 왕의 재위 순서가 더 기억에 남고 있다. 왕들의 입장에서는 후손들이 자신의 업적을 기억해 주지 않아 서운한 마음이 들 수도 있지만 몇몇 왕을 빼놓고는 제대로 된 왕의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조선 후기로 갈수록 외척의 간섭이 심해지며 허수아비 역할 뿐인 왕들이 많았기에 강력한 왕을 꿈꾼 태종의 입장에서 보면 참 한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연과 사정이 있었다는 점이다. 고려를 대신해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고자 했던 조선왕조는 500년 기간 동안 태조부터 순종까지 총 27명의 왕이 재위했고 유교의 나라답게 적장자승계 원칙으로 왕위를 승계하며 왕조를 이어갔지만 자녀를 낳는 것이 왕이나 평민이나 부모의 마음대로 되는 일은 나이었다. 왕위를 이을 후사가 없어서 고민했던 왕도 있고, 기득권층과 반대파를 중용하는 왕이 즉위할 때는 권력의 추가 급격히 이동하던 때도 있었다. 재상 중심의 정치를 꿈꿨던 정도전, 정몽주 등의 후학들이 사람으로 성장하면서 조선은 붕당정치를 하게 되면서 나라와 백성의 이익보다는 정치의 뜻을 같이하는 집단의 이익을 중시하면서부터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큰 나라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독자적으로 무엇이든 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겉으로는 사대를 하는 척하면서 실리를 추구하는 세종대왕 같은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명과 청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왜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소중화를 꿈꾸던 조선의 희망을 처참히 무너졌고 동북아시아의 소국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찬란한 조선을 꿈꾸며  기틀을 다진 태종이 보면 가슴을 치며 분통하겠지만 국제정세에 무지했고 실리보다는 예와 명분을 추구했기에 조선은 시대적 변화를 받아들이기에는 거부감이 강했다. 역사에 있어 만약이라는 것은 없다지만 조선의 역사에서는 참 아쉬운 점이 너무 많이 있다. 그들의 숭상하던 사대의 예보다 나라와 백성의 이익을 더 중시했다면 많은 부분이 바뀌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조선의 왕들은 조선을 상징하는 존재이자 권력의 최정점에 있던 절대자였지만 그들도 사람이었다. 평민들과 다를 게 없이 감정을 느끼는 존재였지만 원자와 세자 시절부터 왕가의 법도를 익히고 성리학의 예를 배우면서 원초적인 감정 표현보다는 참고 표현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고 침소에서 홀로 울며 감정을 표출했을 것이다. 누가 봐도 조선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였으며 자기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도 그런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군주의 예가 아니었다는 소리를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여색과 술에 빠지는 일이 많았고 항상 독살의 위험에 노출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 자 자신의 색깔을 일부러 노출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예를 목숨보다 중요시 여기던 조선사회와 왕가에서 자식을 너무나도 사랑한 태종은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옴을 알자 고기반찬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 아들, 충녕대군이 걱정되어 자신의 장례 기간 동안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을 지키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기기도 했다. 자신의 뜻에 반대하던 세력을 처가, 사돈까지도 무자비하게 제거했던 태종이었지만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은 일반 백성과 다름이 없었다. 그들도 사람이었고, 감정의 동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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