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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Aug 15. 2023

광복절

광복을 위한 제야의 헌신

 우리 집에는 국기게양대가 없다 보니 자연스럽데 태극기도 없다. 학교에서 철저히 국가관 교육을 받은 아이가 광복절에 태극기를 게양해야 한다고 해서 태극기를 직접 그려서 계양하기로 했다. 새벽녘 장모님의 기지로 게양된 태극기를 보고 기뻐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1945년 8월 15일 일제 치하 속에서 고통받던 조선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해방과 함께 광복의 기쁨으로 기뻐하던 모습이 눈 잎에 그려졌다.


 조선총독부 제9대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마지막 총독으로 부임 후 1년도 안 되는 시기에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 소식을 듣고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그동안 조선 땅에서 자행해 온 악행들에 대한 보복을 걱정하여 당시 민족의 대표 격인 조선총독부의 이인자인 정무총감에게 조선건국위원회 여운형 선생을 만나 조선에 체류하는 일본인의 안전을 부탁했다.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광복의 기쁨을 누리는 사진은 사실 8월 15일이 아닌 하루 뒤 8월 16일의 모습이다.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로 핵무기의 무서움을 경험한 일본의 무조건적인 항복으로 우리나라의 광복은 준비할 여력도 없이 급작스럽게 일어났다. 그동안 중국에서 임시정부를 이끌던 백범 김구 선생님은 마차 귀국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구성된 조선건국위원회는 조선 사람들의 바람보다는 소수 권력층의 뜻대로 해방 이후의 업무를 처리하였다. 우리가 더 힘이 있었더라면 더 좋은 조건에서 우리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당시 대한제국은 세계 최약소국이었다.


 반민족특별위원회의 노력에도 공산세력에 대항하는 대한민국 건국에 힘써야 한다는 논리로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반쪽짜리 광복을 맞이했다. 지금까지도 땅을 치고 아쉬워하는 우리 민족의 역사적 비극인 이유는 조금만 시간이 있었더라면 만주에서 미군과 함께 광복군의 작전이 계획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의 비밀작전이 허사로 돌아갔지만 어쨌든 대한제국은 해방되었다.


 이 날을 위해 수많은 독립투사와 애국지사, 그들을 후원하는 분까지 모두의 노력으로 광복의 기쁨을 누렸고, 지금의 나와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아직 그들의 노력이 보상받지 못한 채 잊혀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단순히 회사에 안 가도 되는 쉬는 날, 학교에 안 가는 날로 기억되지 않고 그분들의 노고를 잊지 않도록 마음에 깊이 새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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