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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Aug 19. 2023

요동 고구려 산성을 가다

자신의 것을 지키고자 했던 고구려인의 방어본능

고구려라는 나라의 이름은 높을 고, 마을 또는 성을 뜻하는 골에서 파생된 구려가 합쳐진 말로 풀이하면 높은 마을, 성에 사는 사람을 말한다. 광활한 북방 영토에 터전을 잡은 고구려인들은 언제 어디서 이민족이 쳐들어올지 몰랐기 때문에 자신의 국명처럼 부락에는 목책을 세우고, 그 부락은 높은 담을 쌓고 크고 작은 성을 만들었다. 이런 고구려인의 방어본능 때문인지 몰라도 고구려는 도읍지였던 국내성을 비롯해 훗날 천도한 평양성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접경이었이었던 요동지역에 수많은 성을 쌓았다.


 성은 축조한 지형에 따라 산에 지어진 산성, 평지에 지어진 평지성, 평지와 산에 걸쳐 지은 평산성 등으로 나뉜다. 광활한 북방의 영토는 평지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산악지형이 많았기에 고구려성들은 대부분 산성이다. 산성의 장점은 지형지물을 이용해서 방어하기 유리하다는 것이다. 물론 높은 산까지 성을 만드는 물자를 나르는 것이 어렵다는 단점도 있지만 한 번 축조한 후로는 산악지형과 함께 방어하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어 적이 쉽게 공격하기 어렵다.


 성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적에게 포위당했을 때도 높은 성벽에서 깃발, 봉화, 연 등을 이용해 외부의 아군과 소통할 수 있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또한 방어가 장기간 이어질 경우를 대비하여 산성 내부에 저수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험악한 산악지형 속 산성 문을 걸어 잠그고 지키고 있으면 어느 누구도 쉽게 침범할 수 없는 철옹성과 같은 흔히 말하는 천혜의 요새였던 고구려 산성이다. 군영지와 같은 군사시설과 성에 살고 있는 백성들을 위한 행정시설인 관청, 취수 시설뿐만 아니라 법당 등 생활에 관련된 시설까지 마련하여 성 자체가 말 그대로 작은 국가였다.


 이런 고구려의 성 중심 방어 시스템을 혜택을 받은 수혜자는 고구려 백성일 수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백제와 신라는 중국의 침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강하고 억센 사람들이었다는 오해를 받고 있는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를 지키는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했다. 고구려 산성은 결코 독자적인 방어만이 아닌 주변의 성과의 연합을 위한 방어선을 구축했으며 이것이 고구려 산성의 가장 큰 장점이자 힘으로 끊임없는 중국의 침략에서 굳건히 막아낼 수 있었던 비결이다.


 고구려성은 대부분 돌을 이용해 석성을 축조했으며 성벽을 쌓아 긴 성을 늘려놓고 병사들을 배치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하나의 ‘대’를 형성했으며 측면에서도 공격할 수 있는 ‘치’라는 독특한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 이런 ‘치’라는 구조는 고구려성이 공격이 아닌 방어의 개념이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성 안팎에 마도라는 마찻길을 만들어서 성안뿐만 아니라 성 밖으로도 신속하고 유기적인 연결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서 성이라는 고립된 형태의 단점을 극복하고자 했다.


 S자형 옹성 구조도 고구려 성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구조인데 이것 역시 공격보다는 방어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산악지형 속 침입하는 적군의 공격 루틴을 단순화하고 이곳으로 집중되는 공성을 적은 힘으로 효과인 방어를 할 수 있는 최적의 방어술이다. 자연 암석에 인공적으로 성을 축조한 고구려인의 축성술은 신기에 가까울 정도로 놀랍다. 당시 제대로 된 장비도 없이 높은 벽을 쌓은 고구려의 과학기술과 아직 오지도 않은 적을 방어하는 지혜에 놀랄 수밖에 없다.


 당태종 이세민도 벌벌 떨게 만든 철옹성과 같던 고구려성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허물어져가고 있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고구려의 후손인 우리는 고구려에 대한 우리의 역사적 관심과 애정은 절대 허물어져가서는 안 된다. 이런 고구려인의 과학과 지혜가 담긴 고구려성은 거의 대부분 우리의 영토가 아닌 북한과 중국에 있기 때문에 보호받지 못하고 훼손되고 있으며 황당하기 그지없게 중국은 고구려가 자신들의 역사라는 동북공정을 하고 있다.


 이런 중국의 만행 앞에서도 우리는 고구려가 우리의 역사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것은 그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며 그것을 우리의 것이라 주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가 아닌  1,300여 년의 시간이 지나도 굳건히 남아 있는 고구려의 성처럼 확고한 역사관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고구려를 반드시 기억하고 지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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